지난겨울 남해바래길을 갔다 온 이후 그동안 중단했던 공식적인 도보를 어젯밤에서야 다시 재개를 했다. 그동안 크게 바쁘거나 하는 일이 별도로 있었던 것도 아닌데 어떡하다 보니 이렇게 세월이 많이 가서야 오랜만에 카페 도보행사에 참석하게 된 것이다.
우리 일행이 안양 명학역에서 만나 걷기 시작한 시간이 저녁 7시 5분이었으니 그 때만 해도 어둠이 내리기 전이었지만 안양천을 따라 조금 걸으니 금방 날이 어두워 졌다. 그래도 가로등불빛이 있어서 그런대로 걸을 만 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걷고 있어서 어디를 가든 걷는 사람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저녁인데도 아직 더위가 가시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걷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인지 걷기 시작한지 20분도 채 안 되었는데도 금방 얼굴에 땀방울이 맺히고, 등줄기에는 흐르는 땀으로 입고 있는 옷이 촉촉하다. 우리는 안양천을 걷다가 비산동 쯤 와 안양천과 학의천이 만나는 지점에서 안양천을 건너 학의천길로 접어들었다.
봄에는 이 길이 온통 푸르름과 들꽃들로 향기가 가득하더니 그 향기는 온데간데없고, 장마로 길이 패여 나간 자리에 돌멩이들이 솟아올라와 걷는 것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봄에 이 길을 자주 걸으면서 흙길이라 걷기가 편안하고, 걷는 길도 아름다워 ‘걷고 또 걸어도 싫지 않은 길’이라고 칭찬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했는데 이렇게 길 보수가 되지 않아 ‘전국의 아름다운 100대 길’중의 하나인 ‘학의천 길’이 망신을 톡톡히 당했다.
우리는 학의천을 따라 비산동, 관양동을 지나 인덕원 쯤 오니 새로운 일행 네댓 명이 우리 일행과 합류를 했다. 그러다 보니 꽤 줄이 길게 이어졌다. 인덕원에서 백운저수지로 가는 길은 흙길이 없는 대신에 군데군데 공원을 조성해 놓아서 오며가며 쉬었다 갈 수 있는 벤치도 있고, 오색찬란한 분수는 가던 길을 멈추게 했다. 분수대를 조금 지나니 널따란 광장에 수백 명의 사람이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에 맞춰 에어로빅을 하고 있었다. 대단한 춤의 향연이었다. 언제 저렇게 연습을 했는지 모두들 한 몸이 되어 움직이는 듯 했다. 아무리 밤이지만 이렇게 주민이 모두가 하나 되어 운동하는 모습이 정말로 보기가 좋았다.
다시 우리는 부지런히 걸어 백운호수를 끼고 한 바퀴 돌았다. 가페집들의 호화찬란한 불빛, 수많은 음식점을 지나 산모퉁이를 돌아가니 컴컴한 밤하늘에 둘로 쪼갠 반달이 환하게 우리를 비추고 있다. 일주일 후엔 저 달이 보름달이 되고 추석이 된다. 원래 추석은 모든 것이 풍부하여 마음까지도 푸근하고 넉넉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하여라.”는 말이 있다. 반달을 보고 고개를 돌리니 활짝 핀 코스모스가 바람에 흔들려 나를 보고 고개 숙여 수줍게 인사를 하는 듯하다. 걷는 내내 어디를 가든 가을의 전령사인 귀뚜라미 울음소리와 이름 모를 풀벌레 우는 소리는 끊어지지 않고 이어졌다. 같이 걸어준 친구도 좋은 친구지만 소리 내어 반겨주는 풀벌레 또한 고마운 친구였다.
걸은 지가 2시간이 넘고, 거리가 10여km가 넘게 되자 하나 둘씩 힘들어 하는 사람이 나오더니 급기야 포기하려고 하는 일행이 있었다. 그 친구들을 달래어 같이 걸어서 모락산 터널을 지나 계원예대 가기 전 소공원까지 내려와 잠시 휴식을 취하고서 계원예대 교정을 가로질러 내려오니 앞에 롯데마트가 보였다. 우리는 그곳에서 인덕원을 걸쳐 서울 쪽으로 갈 사람들과 아쉬운 작별인사를 해야 했다. 그리고 얼마 안 되는 친구들은 롯데마트 앞에서 좌회전을 하여 군포교도소 앞을 걸쳐 군포구사거리에서 우회전하여 한참을 부지런히 걸으니 금정역이 나왔다.
이렇게 어젯밤은 안양, 의왕, 군포 등 삼개 도시를 걸은 것이다. 그것도 밤 10시 50분까지 약 20km 가까이를 걸었다. 혼자는 도저히 걸을 엄두도 내지 못할 길인데 같이 걸어줄 친구들이 있었기에 그 길을 온전히 다 걸을 수가 있었다. 특히 ‘작은꽃잎’님의 길 안내가 없었다면 더욱 불가능했을 것이다. ‘작은꽃잎’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올리고, 같이 걸어준 친구들에게도 고마웠다는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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