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보

대공원 산림욕장 길을 걷다

강일형(본명:신성호) 2011. 4. 17. 00:01

 

 

 

 

 

 

 

 

 

 

 

 

 

 

 

 

 

 

 

 

 

 

 

 

 

 

 

 

아침을 먹고 나서 마누라한테 과천에 가서 ‘대공원 산림욕장 길이나 걸을까?’ 했더니 그러자고 한다. 그래서 갑자기 옷을 입고 대공원을 갔다. 전철 대공원 역에 내려서 공원으로 가는 길은 사람들로 넘쳐서 발작 뛰기가 쉽지 않았다. 날씨는 얼마나 좋은지 최근 들어 이렇게 화창한 날씨는 보기 드물었다. 너무도 좋은 봄날 주말이다.


아직 대공원에는 벚꽃이 많이 피지 않았다. 일부 핀 것도 있지만 거의가 꽃봉오리를 열지 못하고 닫힌 상태다. 아무래도 다음 주나 돼야 닫힌 봉오리가 열릴 것 같다. 공원 들어가는 입구에는 사람들을 태운 기다란 코끼리열차가 사람을 가득 싣고 달리고 있고, 공중에는 총총히 매달린 곤드라에 사람을 태우고 하늘로 가고 있다.


나와 마누라는 표 끊는 데까지 코끼리열차도 타지 않고 많은 사람들 틈에 끼어 떠밀리듯 그렇게 가고 있었다. 대공원 산림욕장 길을 걸으려면 동물원 표를 끊어서 들어가야 그 길을 걸을 수가 있다. 그것은 잘 못된 것 같다. 동물원 구경을 안 한다고 해도 소용이 없다. 작년 9월 말에 이 길을 걸을 때도 동물원으로 들어가서 산림욕장 길을 걸었었다. 토요일인데도 산림욕장 길은 붐비지 않고 한적해서 좋았다. 간혹 오가는 사람이 있긴 해도 한참 가야 만날 정도니 이 길이 그 정도면 아주 한가한 길 아닌가.


초입에 아카시아나무 길은 지금은 이르지만 아카시아 꽃이 활짝 필 때 걷게 되면 그 짙은 향기에 취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길은 구릉으로 내려가다가 다시 올라가기도 하고 또 산허리를 계속 옆으로 걷기도 한다. 얼음골 숲에 도달하여 정자에 앉아 갖고 간 점심을 마누라와 같이 먹었다. 점심이라야 대공원 들어가는 입구에서 김밥 두 줄을 사서 가져온 것이 전부다. 점심을 먹고 나니 흘린 땀이 식은 탓도 있지만 썰렁하다는 걸 알고 여기가 얼음골이라는 걸 새삼 인식하게 되었다.


얼마를 걸으니 ‘생각하는 숲길’이 나왔다. 거기에는 조병화선생의 ‘낙엽끼리 모여 산다’라는 시가 있고, 이현기선생의 ‘낙화’라는 시도 있어 걷는 이로 하여금 나도 시인인거처럼 많이 생각하며 그 길을 걷게 했다.  거기서 조금 더 갔더니 ‘쉬어가는 숲’이 나왔다. 여기저기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놓아서 지나가는 사람이 부담 없이 쉴 수 있도록 해놓았다. 길은 아름답게 꾸며 놓았다.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이 길은 ‘맨발로 걷는 길’이다. 마누라가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걷자고 하길래 가시 찔리면 안 되니 그냥 걷자고 했다. 이렇게 길마다 여러 명칭이 있었다. 저수지 샛길이 나오고 그리로 빠지지 않고 직진하니 ‘독서하는 숲’이 나왔다. 여기는 앉는 의자에 탁자까지 십수개가 놓여져 있다. 요즘은 계절이 좀 빠른 거 같고, 조금 더 있다가 녹음이 우거지고 기온이 좀 더 오를 때 이곳에 앉아서 책을 읽으면 완전히 신선이 된 기분이 들지 않겠나.


다시 걷기 시작해 맹수사로 빠지는 길이 나오고 거기서 얼마 안가 ‘사귐의 숲’을 지나니 소나무 숲이 나왔다. 크고 작은 소나무들이 빽빽한 능선에 올라서니 소나무 향기가 코부터 시작하여 온몸으로 은은하게 퍼져오는 걸 느낀다. 잠시 그곳에 앉아 마누라와 갖고 온 사과 한쪽씩을 나눠 먹으며 솔향기에 취해 본다. 쉬고 있는 데서 소나무 끝을 올려다 보니 햇살이 눈부시다. 어디서 날라 왔는지 이름 모를 산새의 해맑은 울음소리가 적막을 깬다. 얼마를 쉬다가 소나무가 많은 내리막을 따라 쭉 내려오니 동물원이 있는 한길과 만났다.


산림욕장 길을 걷고 나도 아직 시간이 많이 있으니 마누라가 동물원 온지도 한참 되었으니 동물이나 보고 가자고 한다. 그래서 다시 내려왔던 길을 올라가면서 사슴, 사자, 식물원, 원숭이, 호랑이, 북극곰, 코끼리, 하마, 기린 등 많은 동물들을 보고 왔다. 그래도 봄이 되어 해가 많이 길어졌다. 정오가까이에 나와 여러 곳을 갔다 와도 해가 중천에 있다.


갑자기 집을 나섰지만 오늘은 과천 뒷산을 걸으며 봄을 온몸으로 느꼈고, 산에서 내려와 동물원에 가서는 동물들과 오는 봄을 즐겁게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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