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보

걷고 또 걸어도 싫지 않은 길

강일형(본명:신성호) 2011. 5. 23. 22:49

 

 

 

 

 

 

 

 

 

 

 

 

 

 

 

 

 

 

 

 

 

 

 

 

 

 

 

 

 

 

 

 

 

 

 

 

 

 

 

 

 

 

오늘은 평소보다 저녁을 일찍 먹고 약간 어둠이 찾아올 무렵 집을 나섰다. 학의천과 안양천이 만나는 곳부터 아주 천천히 학의천을 따라 인덕원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어둑어둑해졌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걷고 있었다. 개천 길로 들어서자 흐르는 물소리가 가장 먼저 반겨준다. 걷기 시작해서 얼마 안 되어 개천은 보이지 않고 양쪽으로 울창한 숲 가운데로 지나가는 길만 보이고, 시냇물 흐르는 소리가 작게 들리다가도 얼마 안가 크게 들리고를 반복해서 이어진다.

 

 

언제 저렇게 녹음이 우거졌는지 냇가 쪽으로는 크고 작은 버드나무가 빽빽이 들어섰고, 그 사이로는 잡초와 들꽃들이 환하게 피어 있다. 언덕으로는 느티나무와 은행나무가 총총히 들어서 있어 걷는 이로 하여금 기분을 한껏 돋아준다.

 

 

천천히 걸으면서 사람들의 걷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각양각색이다. 어떤 사람은 뛰는 자세에서 손만 앞뒤로 작게 흔들어대며 걷고 있고, 또 다른 사람은 손을 쭉 펴고 크게 흔드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손을 옆으로 흔들며 부지런히 걸었다. 그런가하면 몸이 안 좋은지 삐딱하게 걷는 사람, 술 한잔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걷는 사람, 아이들과 같이 걷기도 하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아주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걷고 있다. 그런데 컴컴한 밤인데 자전거가 얼마나 많이 그 길을 달리는지 참으로 위험하기 짝이 없다. 그것도 살살 달리는 것도 아니고 어떤 친구는 쌩쌩 거리며 달리는 걸 보며 자전거 통행이 허용된다고 해도 도를 넘는 것 같다.

 

 

가면서 군데군데 쉬어가는 자리를 만들어 놓았다. 널따란 돌로 의자를 만들어 몇 사람이 같이 앉아서 편안하게 얘기를 나누며 쉴 수 있는 공간도 있고, 이쪽에서 개울을 가로질러 저쪽 길로 갈 수 있는 징검다리도 여러 곳에 만들어 놓아서 아무 때고 건널 수가 있다. 냇가 왼쪽 길은 포장을 해놓았고, 오른쪽 길은 그냥 흙길이다. 그래서 도보를 하는 데는 포장길 보다 흙길이 걷기도 좋고 발도 편한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포장길을 선호한다. 나는 인덕원까지는 포장길로 걸어갔다가 올 때는 징검다리를 건너서 반대편에 흙길로 왔다. 그 길은 사람들도 드문드문 다니고 크로바 군락지를 지날 때는 짙지 않은 크로바 꽃향기가 은은하게 코끝에 스며들어 기분이 좋았다.

 

 

올 때는 갈 때보다 오가는 사람이 없다보니 빨리 걸었다. 잡초와 나무로 우거진 길을 막 지나서 시냇물 가로 눈을 돌리니 백로 한 마리가 .목을 길게 빼서 먹이를 잡고 있다. 그 모습을 한참을 보다가 일어나 얼마 걷지 않았을 때 시골에서나 들을 수 있는 맹꽁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가까이 가니 울음소리는 그치고 조용했다. 그래서 몇 발짝을 떼어 보았더니 다시 울음소리가 들렸다. 도심 한가운데서 이렇게 맹꽁이 우는 소리를 듣다니 신기하고 대단한 변화 아닌가. 이런걸 보니 생태계가 많이 복원된 것 같아서 천만 다행이다 싶다. 낮에 걸을 땐 물가에 노니는 물고기와 크고 작은 새소리가 시름을 덜어준다면 밤에는 이름 모를 풀벌레 소리와 맹꽁이 울음이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이 길을 집에서 인덕원까지 갔다가 오면 약 10km 가까이 된다. 봄, 가을, 겨울에는 이 길을 낮에 많이 걷지만 여름철에는 더워서 낮보다는 밤에 주로 많이 걷는다. 오늘도 올해 들어 처음 밤에 걸어 보았지만 덥지도 않으면서 등허리에 촉촉하게 땀이 나는 것이 기분이 좋았다. 이렇게 이 길은 계절에 상관없이 아무 때나 걷고 또 걸어도 싫증이 안 나고 늘 기분 좋게 걷는다. 나에겐 친구 같은 길이다.

 

 

학의천 모습은 낮에 찍은 걸로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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