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따라 아침부터 비가 억수같이 내렸다. 지난 4월 말쯤 군에 가서 훈련을 받던 조카가 훈련을 끝내고, 군의 배려로 오늘 면회를 하는 날인데 어머니가 밖에 비가 내리는 걸 보시고, 혹시 비 때문에 면회를 못 가는 건 아닐까 걱정이 돼서 새벽 5시에 전화를 하셨다. “얘, 에미야, 오늘 가는 거냐? 비가 저렇게 오는 대두.....” ‘그럼요, 가야죠.’ 며느리의 간단하고 명료한 대답이 끝나자마자 어머니는 ‘알았다. 벌써 다 준비하고 있다.’고 하시는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좀 떨어져 있는데도 다 들렸다. 그 말씀을 들으니 어제 밤 손자 때문에 잠 한숨 못 주무신 건 아닌지 속으로 걱정이 됐다.
어머니는 그 손자에 대한 사랑이 유별났다. 물론 어려서부터 줄곧 같이 생활하면서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은 것도 있겠지만 아들 일곱과 손자 다섯이 군대를 다 갔다가 왔고, 이번에 마지막으로 20년 가까이 곁에 있던 손자가 군대를 가니 더 애틋하고, 가슴이 많이 아프셨던 것 같다. 2살 때부터 그 애를 키웠으니 아들 못지않게 정도 들었을 것이다. 지난 해 그 손자가 대학에 들어가 1년간 떨어져 있을 때만해도 이토록 애달아하시지 않았는데 그 조카아이가 군대를 가고부터는 어머니가 많이 적적해 하시고, 불안해 하셨다. 그러니 오늘 같은 날을 얼마나 학수고대 하셨겠는가. 오늘 어머니한테 들은 얘기지만, 손자가 쓰던 빈방에 들어가 그 애가 쓰던 물건들을 만져보기도 하고, 그 애가 너무도 그리워서 입던 옷에서 그 애의 체취를 맡기까지 하셨다고 한다. 얼마나 대단한 손자사랑이신가?
그런 할머니, 큰 아버지와 큰 어머니, 고모 등 이렇게 같이 그 애 면회를 논산으로 갔다. 출근시간이 가까워지고, 비가 내려서인지 어머니를 모시러 가는 길도, 누님을 모시러 가는 길도 만만치 않았다. 원래 가던 길이 하도 차가 밀려 우회를 해도 신통치 않았다. 이리저리 가서 두 분을 모시고, 부지런히 일반도로를 달려서 고속도로에 들어가니 출근시간도 지나서 이제는 잘 달릴 것으로 기대를 했지만 거기도 마찬가지로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그렇게 질질거리고 가던 것이 안성을 다가서 풀렸지만 도로에서 지체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9시 남짓하면 도착할 걸로 생각하고 출발한 것이 논산에 도착해 보니 11시 반이 다 되었다. 원래 좀 일찍 도착해서 조카아이의 늠름하고 씩씩한 열병식도 보고, 가슴과 모자에 빛나는 이등병 계급장도 달아주어야 하는데 이렇게 한나절만치 도착했으니 낭패 아닌가.
그런데도 하늘은 나의 이런 절망에 가까운 염원을 저버리지 않았다. 몇날 며칠을 연습한 열병식은 비로 취소되고, 가족이 연병장에서 달아주기로 한 이등병 계급장도 식당에서 식사할 때 각자 달아주게 된 것이다. 옛말에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격언이 90세가 넘으신 훈련병의 할머니를 모시고 가는 나를 두고 하는 얘기라고 스스로 생각하니 기분이 그런대로 싫지는 않았다. 진짜 하늘도 나뿐만 아니라 늦게 오는 가족들을 많이 배려해주는 듯 했다. 모든 옥외 행사가 비로 취소가 되었지만, 하늘은 천천히 개이기 시작하더니 햇볕이 보였다.
그러고 나서, 불과 10여분도 안되어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키가 미끈하고, 늠름한 모습의 장병들이 우리들 앞에 나타났다. 저 속에 내 조카도 있겠지 하고 두리번거리며 찾아보았지만 비슷비슷하여 도저히 찾기가 쉽지 않았다. 면회가 본격적으로 허용되어 그 애를 앞부터 찾으며 중간 정도 갔을 때 조카아이가 보였다. 'O O 야, 잘 있었구나!‘하면서 그 애 손을 잡고 끌어당겨 안았더니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이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오래 전이기는 해도 내 작은 아이 군대에 있을 때 면회 갔었지만 이런 감정은 느끼지 못했다. 물론 그 때만 해도 훈련소에서 가족과의 면회는 할 수 없었다. 자대배치 받고 면회를 갔었다. 또 다른 하나는 그 때만 해도 내가 조금이라도 젊을 때 면회를 갔던데 반해 지금은 8-9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으니 나이가 그만큼 더 먹은 것도 한 몫을 한 것 같다. 나도 38년 전 봄에 여기서 훈련을 받았다. 조카아이 때문에 여기를 왔지만 감회가 새롭다.
그 애를 데리고, 할머니 있는 데로 가서 그렇게 보고 싶어 하고 그리워하던 할머니를 뵙게 했다. 훈련병답지 않게 뽀얀 얼굴과 늠름한 손자모습에 한결 마음이 놓였는지 부둥켜안고 우시지나 않을까 걱정했는데 잘 참아 주셨다. 조카애 가슴과 모자에 빛나는 이등병 계급장을 큰아버지인 내가 달아 주었다. 그리고 그 애 고모와 큰엄마가 준비해 간 밥상을 펴놓고 점심 식사를 하고, 후식과 음료를 마시며 3시간 넘게 같이 좋은 시간을 보냈다.
집을 홀연히 떠나서 군에 온지 한 달 남짓 되었는데도 모든 것이 많이 달라진 조카를 보니 이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전에는 말도 잘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말도 잘하고, 풍채도 딱 보기 좋을 만큼 잘 다듬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정신력도 강해 보여 조카아이의 변화된 모습이 참으로 대견스럽고 믿음직스럽다. 아무쪼록 건강하게 그리고 무탈하게 병영생활 잘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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