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기행

수원 화성행궁을 가다

강일형(본명:신성호) 2024. 6. 1. 01:37

 

어제는 마누라가 집에서 쉰다고 하여 수원에 있는 화성행궁을 가서 행궁을 한 바퀴 둘러보고 행궁 성곽길을 따라 걸은 얘기를 하려고 한다. 오전 11시가 다 되어 집 앞에서 수원 가는 버스를 탔는데 화성행궁 근처인 장안문까지는 채 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북문에서 화성행궁까지는 버스로 두 정거장이고, 걸어간다고 해도 5, 6분이면 충분할 것으로 보지만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행궁으로 가는 버스가 바로 오는 바람에 우리는 환승을 하니 금방 도착하였다.

 

수원에 있는 화성행궁은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정조로 825번지에 있는 조선시대의 행궁이자 화성유수부의 관아로 수원 팔달산 동쪽 기슭에 있으며 대한민국의 사적 제478호로 지정되어 있다. 화성행궁은 관아뿐만 아니고 정조가 아버지 사도 세자의 묘인 현륭원에 참배하러 오면 머물 수 있게 행궁으로 지어졌다.  정조는 1789년에 배봉산(현 시립대 뒷산)에 있던 사도세자의 묘를 지금의 화성으로 이장을 하고서,  이듬해인  1790년 2월부터 1800년 1월까지 무려 13차례에 걸쳐 현륭원을 찾았고 찾을 때마다 이곳 행궁에서 묵었다. 1795년에는 어머니 혜경궁  홍 씨  회갑연을 화성행궁에서 치렀고, 여기에 맞춰 전각을 새로이 짓고 이름도 바꿔 가며 1796년까지 총 576칸 규모로 확장하여 행궁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정조는 훗날 세자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으로  이곳 화성행궁에 머물기를 바랐지만, 1800년 8월에 47세의 나이로 죽는 바람에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

 

화성행궁이 처음 훼손되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가 아닌 대한제국 시절부터였다. 1905년 수원공립소학교(현 신풍초등)가 우화관에 자리를 잡았고, 1907년에는 북군영을 헐고 수원경찰서 건물이 들어왔으며 1910년 국권을 빼앗긴 9월에는 화령전에 의료기관인 수원자혜의원(현 경기도의료원 수원병원)이 개원하였고, 경기도 관찰부가 다시 경성으로 옮겨 가면서 수원자혜의원이 화령전에서 봉수당으로 이전하였으며, 낙남헌을 개조하여 수원군청으로 사용되는 등 일부는 헐리고 또 다른 일부는 개조되고 실제로 신풍루, 좌익문, 중앙문, 유여택, 봉수당 등 몇 개의 건물만 남게 되었다가 이 마저도 1923년 수원자혜의원이 병원 건물을 대대적으로 확장하면서 수원군청으로 쓰던 낙남헌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헐렸다.

 

화성행궁 복원 사업은 훼손된 지 63년 만인 1989년에 화성행궁 추진위원회가 구성되면서 1992년 도립병원이 정자동으로

이전하였고, 북군영 자리에 있던 수원중부경찰서가 1998년에 장안구 정자동으로 옮겨가면서 1999년부터 1단계 복원작업이 시작되었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면서 상당히 많은 건물이 훼손되었지만, '화성성역의 궤'(일종의 설계도)가 남아 있는 덕분에 2003년 7월에 봉수당, 득중정, 궁녀와 군인의 숙소 등 482칸을 복원하여 2007년 6월에 사적 478호로 지정되었다. 2단계 복원사업은 1단계에서 복원하지 못한 우화관과 별주 등의 복원사업인데 신풍초등학교를 2013년도에 광교 신도시로 내보내고 본래 자리에 있던 학생들이 졸업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2019년 2월에 학교를 완전히 폐교하고 건물을 철거하여 우화관을 복원한 후 2024년 4월 24일에 수원시는 개관식을 열고 일반인에 공개하였다.

 

얼마 전에 와서 성곽길을 돌 때만해도 행궁 건물을 보지 못했는데 이번에 마누라 하고 같이 가서 행궁을 돌아보니 언제 행궁을 지었는지 번듯한 옛날 집들이 돋보인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뻔 한 화성행궁이 새롭다. 세자였지만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불운한 생을 마친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못다 한 효를 다하려고 하는 정조대왕의 숨결을 느끼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행궁을 돌아 나와 우측으로 얼마 안 가 주차장이 나오고, 주차장 옆으로 나있는 길을 따라 팔달산 쪽으로 올라가면 화성장대(서장대)가 나온다. 동서남북으로 수원 시내가 한눈에 다 들어온다. 시원하면서도 놀라운 시내 경치를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성밖으로 나와 성벽 외곽길을 따라 걸었다.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고, 20m 이상 되는 참나무들이 넓은 잎을 펴서 그늘을 만들어 줘 걷기가 좋다. 바깥 성곽을 따라 한참을 걷다가 서문 쪽으로 다시 들어와 안 쪽 성벽 끝으로 나있는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장안문이 나왔다.

 

이렇게 마누라와 함께 어느 때는 나무 그늘 속에서, 어느 때는 땡볕에서 얘기하며 걷다 보니 수원의 화성과 행궁 여행을 마칠 시간이 되었다. 오늘은 생각지도 못한 역사 여행을 수원에 가서 하였다.

 

▣참고한 글:다음;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