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기행

「역사기행」서울 은평에 진관사(津寬寺)를 가다

강일형(본명:신성호) 2019. 11. 16. 01:44



새벽부터 내리던 비는 오전 10시 쯤 멈추는가 싶더니 우리가 서울 은평구에 있는 역사한옥박물관을 둘러보고 나올 때 되어 한여름에 내리는 비처럼 다시 세차게 내렸다.


박물관에서 본 것은 여러 가지 많은 것을 봤지만 그 중에서도 산대놀이에서 사용하던 ‘탈’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오래도록 우리 민족의 애환과 같이한 ‘탈’인데도 요즘에 쉽게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안타가웠다. 근래 들어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은 해학적인 연극이나 영화 같은데서 탈을 쓰고 나와 웃기거나 민속춤을 추는 것을 볼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싶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도 한옥마을을 한 바퀴 돌다보니 축축하고 썰렁하여 한옥 찻집에 가서 차를 마시었는데 2층으로 올라가면 천상병 시인의 ‘강물’과 ‘새’ 시구(詩句)가 벽에 보이고, 중광스님의 ‘나는 걸레’라는 시도 벽 한쪽을 장식하고 있다. 안쪽으로 들어가니 이외수 소설가의 큼직한 사진이 여기가 명성이 있는 찻집이라는 걸 넌지시 알려 주는 듯했다. 2층까지 올라가 돌아본 후 차를 마시려고 1층으로 내려와 맨바닥에 앉으니 방바닥이 따뜻했다. 비오는 날이라 그런지 따뜻한 방바닥이 좋았다. 그냥 이렇게 앉아 얘기만 듣고 있어도 운치가 있어 보였다. 그렇다고 여기서 마냥 눌러 앉아 있을 만큼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한옥마을에서 나와 진관사 가는 길은 그다지 멀지 않았다. 천천히 걸었는데도 10분 남짓 걸린 듯하다. 절은 보통 절보다는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9년 3월 벨기에의 마틸다 여왕이 이 절에 왔다갈 정도니 상당히 유명한 절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도 이렇게 뒤늦게 진관사를 찾게 되어 송구한 마음이 들었다.


우선 이 진관사에 얽힌 얘기를 해보자. 진관사는 원래 신라 진덕왕 때 원효가 창건하여 신혈사라고 불리었다. 그러다가 고려 8대 임금인 현종이 진관대사를 위하여 이름을 진관사로 바꾸었는데 그 이유는 이렇다. 고려 5대 임금인 경종이 죽자 젊은 왕비(헌애왕후:천추태후)는 왕태후가 되었다. 목종이 후사가 없어 태조왕건의 직손인 대량원군을 왕위계승자로 정해 놓고 있었지만, 왕태후는 파계승 김치양과 정을 나눠 둘 사이에 낳은 사생아를 왕위에 올리기 위해 대량원군을 죽이려고 숭경사에 가두었다. 그러나 사정이 여의치 않자 진관스님 혼자 도를 닦고 있는 삼각산 신혈사로 옮기게 했다. 이 사실을 눈치 챈 진관은 본존불을 안치한 수미단 밑에 지하 굴을 파서 열두 살인 대량원군을 숨겨서 왕태후가 보낸 자객의 화를 면하게 했다. 3년 뒤 목종이 죽고 대량원군이 현종으로 왕위에 올랐다. 1011년 현종은 진관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신혈사 자리에 대가람을 세우고 대사의 이름을 따서 진관사라 하였다. 그 후 1090년 선종임금이 진관사를 찾아 오백나한재를 베풀었고, 1099년 숙종이, 1110년는 예종도 이 절을 찾아 시주하였다. 그리고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는 1397년 수륙사를 설치하고 여러 번 행차하여 수륙재를 지냈다. 그리고 불교를 배척한 태종도 1413년 이 절에서 성령대군을 위해 수륙재(水陸齋)를 열고 향과 제교서(祭敎書)를 내리고 매년 1월 또는 2월 15일에 수륙재를 열었다. 1463년(세조9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1470년 성종 때 중건하고 철종임금 때 중수하였는데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나한전 외에 절 대부분이 소실되었다가 1964년부터 최진관 비구니가 당우를 차례로 재건하여 지금에 이른다. 이 절에서 눈여겨봐야할 것은 대웅전에 봉안된 본존불인데 그 이유는 고려 현종을 구해준 불상으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오늘 비가 오지 않고 날씨가 좋았으면 진관사를 둘러보고 거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삼천사까지 돌아볼 예정이었으나 날씨가 좋지 않은 관계로 삼천사는 보지 못하고 내려온 것이 못내 아쉽다. 그런데도 11월의 역사기행을 가을이 끝나가는 늦가을에 수도권의 산사에 가서 마지막 단풍을 보고 천년고찰에 얽힌 얘기를 알게 되었다는 것에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점심식사는 송추가마골 은평점에 가서 갈비탕으로 했는데 축축하고 썰렁한 날씨에는 그보다 더 훌륭한 식사는 없어 보였다. 거기에 듬뿍 들어간 갈비살은 아침부터 점심때까지 돌아다녀 시장 끼를 달래주는데 충분했으며 반주로 마신 막걸리 한 잔은 하루를 여유 있고 넉넉하게 해주는 듯 했다. 이렇게 맛있는 식사를 스폰서해주신 박상훈 회장님께 고맙다는 말씀을 전하고, 오늘 이 역사기행을 위해서 사전답사도 하시고, 탐방계획, 해설사대동 등 많은 노력과 고생을 하신 김재화 회장님께는 너무 감사하여 송구한 마음까지 든다. 내 주위에 참으로 훌륭한 우성회의 역사기행팀원들이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