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처남 내외들과 2박3일의 봄 여행

강일형(본명:신성호) 2024. 5. 8. 22:11

 

올봄은 그 어느 해 봄보다 크게는 아니지만, 상당한 의미가 있는 봄을 보내고 있다. 그 이유는 여느 해 봄에는 봄이 다 가도록 여행이라는 것을 생각만 하고 지내든지, 아니면 생각조차도 갖지 못하고 지낼 때가 많았다. 뿐만 아니라 젊었을 때는 살아가기가 바빠서 여행이라는 것을 아예 잊고 살아야 했다. 그런데 올봄에는 한 번도 가기 어려운 봄 여행을 무려 3번이나 갔다 오는 행운을 누렸다. 첫 번째는 마누라와 함께 남서유럽인 스페인·포르투갈·모로코 쪽으로 십여 일 해외여행을 다녀왔고, 두 번째로는 지난달에 여러 형제·자매들과 23일 일정으로 수안보 여행을 하였으며, 마지막으로 5월 들어서는 처남 내외들과 전남 구례, 경남 하동·산청·함양 등의 관광지를 찾아서 23일 동안 돌아봤다. 그래서 이번에는 처남 내외들과 봄 여행을 전라도와 경상도를 넘나들며 갔다 온 얘기를 하려고 한다.

 

평소 때 4시간 남짓이면 우리가 만나기로 한 부부식당이 있는 전남 구례읍사무소 근처까지 갈 수 있는 시간인데 54, 5, 6일이 3일간 연휴이다 보니 새벽 이른 시간에 집을 나섰는데도 얼마 가지 않아 차가 밀리기 시작했다. 이미 차가 많이 밀릴 것이라고 미리 방송에도 나와서 어느 정도 짐작은 했지만, 이렇게 명절 때처럼 지방도나 고속도로 어디를 가도 밀리는 차들만 보고 있을 줄을 몰랐다. 할 수 없이 밀리는 대로 따라가다 보니 예상 도착 시간을 훌쩍 넘겨 구례읍사무소 앞마당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리니 500년 묵은 왕버들과 350년 된 팽나무가 가장 먼저 반겨줬고, 옆에 있는 부부식당으로 들어가니 경주, 울산에서 올라온 큰처남 내외와 막내처남 내외가 이미 도착하여 기다리고 있다가 반갑게 맞아줬다. 하남에서 내려오는 처남 내외는 우리보다 좀 더 늦게 도착하여 5남매의 부부가 한자리에 모여 앉아 점심을 먹었다. 다들 이른 시간이라 아침을 먹지 않고 집을 나서다 보니 차에서 주전부리로 입맛을 다시기는 했어도 시장도 했을 것이고, 우리는 안에서 기다리고 있지만, 밖에서 수십 명이 줄을 서서 자기 차례가 올 때를 기다리는 것을 보니까 이 집 음식이 무엇인지, 또한 맛은 어떻길래 저 많은 사람들이 밖에서 저렇게 기다리고 있는지, 궁금하던 차에 밑반찬이 나오더니 얼마 안 있어 푸짐하고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다슬기 생채 무침이 나왔다. 나오는 대로 입맛을 봤다. 반찬도 정결하고 맛도 그런대로 있었다. 다만 맵다는 것이 좋은 음식을 먹으면서도 젓가락이 가는 것을 주저하게 하였다. 밥도 다슬기무침에 비벼도 먹고 또한 이 집의 특색 있는 주메뉴가 수제비 요리라서 수제비국도 떠먹었다. 다슬기 안주로 막걸리도 한 잔씩 나눠 마셨는데 그 맛이 일품이었다.

 

구례에 와서 첫 일정으로 점심을 먹고서는 식당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사성암으로 관광 길에 나섰다. 시내에서 사성암 주차장까지는 차로 10분 정도 걸린 것 같은데, 사성암 주차장에다 차를 세워놓고 마을버스로 환승하여 꼬부랑 산길을 약 5-6분 타고 올라가 버스 종점에 내려서 가파른 언덕길을 10분 가까이 걸어 올라가면 급경사 지역에 절이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 절이 화엄사의 말사로 화엄사를 창건한 연기가 544년에 오산(鼇山)에 절을 세우고 오산사로 불렀다가 신라의 원효와 도선, 고려의 진각국사 혜심이 이 절에서 수도하였다고 하여 이 네 명의 스님을 기려 사성암(四聖庵)으로 고쳐 불렀다. 1630(인조 8)에 중건하였고, 1939년에 이용산에 의해 중창되어 지금에 이른다. 절의 규모는 크지 않으면서도 둘러볼수록 참 경이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저 밑으로 멀리 보이는 섬진강은 구례 읍내를 가로질러 흐르는 모습이 그림처럼 아름답고 평화롭다. 그런 데다가 산신령께 예불을 올리는 산왕전 오른쪽 기둥 옆쪽의 바위에는 부처님 옆모습을 그대로 조각해 놓은 것처럼 바위에 저절로 생긴 부처님 얼굴이 숨겨져 있다. 그 모습은 잘 보면 보이고 그렇지 않으면 못 보고 지나칠 수도 있다. 여기 구례에 와서 그 어디에서도 이처럼 경관이 수려한 절을 만날 수가 없었는데 여기서 이렇게 만나게 되어 가슴이 벅차다. 게다가 숨겨진 부처님 얼굴까지 보고 가니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이제라도 사성암에 와서 직접 보고 가게 되어서 참으로 다행한 일이라 생각한다.

 

구례에 와서 두 번째 관광지는 쌍산재(雙山齋)이다. 쌍산재는 사람 간, 형제간의 관계를 중시하였던 쌍산(雙山) 선생의 개인 고택이다. 후손들이 부지에 남겨진 크고 작은 19채의 한옥과 정원을 일반인에 개방하여 이곳에 깃들어 있는 꼿꼿한 선비의 정신과 삶을 엿볼 수 있게 한 곳이 바로 구례에 있는 쌍산재라고 하겠다.

 

다음 행선지로는 아주 오래전 이기는 해도 두어 번 들렀던 전라남도 구례군 마산면에 있는 화엄사를 그냥 지나갈 수가 없다.

이 절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이며 지리산 국립공원 안에 있다. 화엄사는 삼국시대 때 인도에서 건너온 승려 연기(緣起)가 창건하고 선덕여왕 12(677)에 자장이 증축하였으며, 문무왕(677) 때 의상대사가 각황전(覺皇殿)을 짓고, 헌강왕 1년에 도선에 의해 증축되었다가 임진왜란 때 화재로 피해를 입어 인조 8(1630) 벽암선사가 6년에 걸쳐 재건하여 지금에 이른다. 화엄사 안에는 국보와 보물이 다수가 있는데 그중에서 각황전이 국보 67호이고, 각황전 앞에 있는 사사자 3층 석탑이 국보 35호이며, 각황전 앞 석등이 국보 12호로 지정되었다. 거기에 영산회괘불탱도가 국보 301호로 지정되어 화엄사에 국보급 보물이 4점이 있다.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로는 동오층석탑, 서오층석탑 및 대웅전 등 다수가 보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천연기념물로는 올벚나무(38)와 홍매화(485)가 있다.


 

 

화엄사에서 지방도로 4-50분을 달려서 남원에 있는 켄싱턴리조트에 도착하여 콘도 두 개를 얻어 여장을 풀고, 남원 시내로 저녁 식사를 하러 나갔다. 식사하면서 반주도 한 잔씩 나눠 마시고 택시를 불러 다 함께 타고 나오자고 하니까 다들 걸어간다고 하여 한 대만 불러 몇 명만 타고 나오고 나머지는 개천을 따라 걸어들 왔다. 택시를 타고 와서 리조트 앞에 내리니 개천가에서 마침 분수쇼를 하고 있었다. 이렇게 아주 다채롭게 분수를 이용하여 조명을 비춰서 벌리는 쇼는 근래에는 보지 못하고 이십여 년 전에 미국의 라스베이거스에 가서 각 호텔마다 공짜로 특색이 있는 쇼를 하는데 거기서 분수쇼를 보고, 이번에 남원에 와서 호화 찬란한 분수쇼를 또 보는 것 같다. 여름밤 같았으면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하여 많은 사람들이 소리 지르며 더 열광하지 않았을까 싶다.

 

아침에 눈을 뜨니 비가 내리는 듯하다. 많은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서 우산은 준비했어도 지난 3월 말에 스페인을 가서 매일 오는 비를 맞고 여행을 하다 보니 감기에 걸려 큰 고생했던 경험이 있어 비를 맞아가며 여행하는 것이 썩 내키지는 않았어도 단체 따라 움직여야 하니 리조트에서 보이는 다리를 건너 조반을 먹으러 바깥으로 나갔다. 남원에서 조반을 먹고는 거의 2시간 가까이 달려서 하동의 청학동에 있는 삼성궁에 도착하였다. 바람도 많이 불고 비는 줄기차게 내렸다. 계곡물은 불어나서 소리 내어 흐르고 있고, 경사가 있는 데서는 분수처럼 물이 쏟아져 내려오기도 했다. 원래 유럽 여행에서는 성당 투어를 많이 하는 반면에 우리나라에서는 절이 있는 곳을 많이 여행하는 편이다. 우리도 어제는 절을 찾아 많이 갔다면은 오늘은 사람의 능력이 어디까지인가를 시험해 놓은 경남 하동군 청암면에 있는 삼성궁을 가서 불가사의한 돌탑과 돌담 쌓은 것들을 구경하였다. 해발 850m에 자리 잡은 배달성전 삼성궁은 한풀선사 강민주가 1983년에 그의 제자들과 같이 고조선의 소도를 복원하여 민족의 성조인 환인, 환웅, 단군을 모신 배달민족성전을 만들기 위해 1500개의 돌탑과 돌담을 쌓아 놓은 것이 주위와 잘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고 있다. 비가 오는데도 우산을 쓰고 곳곳을 둘러보았는데 감탄이 저절로 나왔으며 사람의 능력이 어디까지인가를 시험에 들게 하였다. 청학동에 와서 대단한 것을 보고 가게 되어 여행의 즐거움이 배가 되었다.

 

청학동에서 약 한 시간을 달려서 산청에 있는 수선사에 도착하였다. 이 절은 보잘것없는 작은 절이지만, 그 주변의 환경과 절이 잘 어우러져 많은 사람들이 찾기도 하고, 또한 여러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는 곳이기도 하다. 즉 절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그리 크지 않은 연못이 있고, 연못 위로는 나무로 만든 다리를 놓아 걸을 수도 있으며 오늘같이 비가 내리는 날이면 찻집에 앉아 차를 마시며 연못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기도 하고 세어볼 수도 있다. 그러다가 비가 그치면 절이 있는 곳까지 걸어 올라가서 부처님과 눈 맞춤도 할 수가 있고, 때가 되어 배가 고프면 좀 비싸기는 해도 시원한 냉면으로 요기를 할 수도 있다. 특히 오늘처럼 비가 내리는 날에 오는 것이 더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는 계속 내리는데도 여행은 계속되었다. 우리가 산청에 온 이유는 동의보감촌 한방자연휴양림에 숙소를 정해놓은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는 산청에 있는 동의보감촌을 제대로 둘러보기 위함이다. 수선사를 관광하고 동의보감촌에 와서는 산 위쪽으로 올라가 커다란 풍차가 돌고 있는 풍차카페로 들어가 한방쌍화차와 수제버거를 먹으면서 휴식을 취했다. 하동에서 비를 맞아가며 무리한 삼성궁 관광을 했기 때문에 좀 쉬어갈 필요가 있는 데다가 오늘 저녁 식사 예약이 식당 사정으로 인해 오후 4시에 동의보감촌의 동의약선관에 잡혀 있어서 다소 여유 있는 오후 시간을 보냈다. 늦은 점심 겸 이른 저녁으로 나오는 반찬은 약재로 만든 것이어서 맛보다는 건강을 먼저 생각한 수라한상이었다. 건배도 국화주와 솔잎주로 격에 맞춰 열 명이 다 함께 건배했다. 근사한 저녁 식사를 먹고 나서 한방자연휴양림으로 들어와서 즐겁고 편안한 저녁 시간을 보냈다.

 

이튿날 아침이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보니 비는 그쳤지만, 날씨는 흐린 듯하다. 아침을 먹고는 계곡 쪽으로 나 있는 출렁다리를 걷기 위해 나갔는데 들어가는 곳이 잠겨 있었다. 안전을 위해서 안전요원이 있는 오전 9시에 오픈한다고 하니 시간이 아직 남아 있어서  여기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산청구형(仇衡) 왕릉을 먼저 가서 보고 오려고 방향을 바꿨다. 구형왕릉까지는 동의보감촌에서 5분도 채 안 걸린 것 같다. 구형왕릉은 왕산의 기슭에 있는 돌무덤이었다. 신라의 김유신 장군의 증조할아버지이자 금관 가야국의 10대 왕이면서 가야의 마지막 왕의 무덤이라고 하는데 아직도 저렇게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돌로 쌓아 놓아서 풍화작용에 잘 적용이 될 뿐만 아니라 이처럼 후손들이 방문하여 관심을 갖고 돌봐주는 것도 일조했을 것으로 본다. 오늘 산청에 와서 김해김 씨 시조 되시는 분을 우연찮게 만나 뵙고 간다. 우리 고령신 씨 시조님은 경북 고령의 만대산에 계시는데 경남 산청이 가야국이었다는 것을 여기에 여행 와서 알게 되었다.

 

다시 동의보감촌으로 이동을 하여 출렁다리를 건너러 갔다. 아까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별로 없더니 다리를 개방하니까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어젯밤에 많은 비가 내려서 까마득히 내려다보이는 계곡에서 들려오는 물소리가 출렁다리를 지나는 우리를 보고 격하게 환영한다는 메시지 같이 들렸다. 여건이 된다면 다리를 건너 산책길을 따라 더 걸었으면 싶었는데,

우리는 다리를 건너서 우측으로 마가목 몇 그루 있는 데까지만 가보고 출렁다리를 되돌아 나와서 동의보감촌으로 방향을 잡았다. 한의학박물관으로 들어가려면 입장권을 끊어야 한다. 들어가 보면 약초 전초를 건조하여 사진으로 찍어 약초 명을 써놓은 것도 있고, 또 병명을 먼저 선정해 놓고 이런 약초가 그 질병의 치료에 좋다고 설명한 것도 있었다. 시간이 많지는 않아 여기서 더 시간을 보낼 수가 없어서 부지런히 돌아보고, 약초관으로 가다가 약초테마공원은 지나가는 길에 슬쩍 보고는 테마공원 우측으로 나있는 언덕배기를 올라가서 산청약초관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여러 약재초와 약재목들이 있었는데 살아있는 것들이어서 실감이 나지만 너무 웃자라서 팻말의 약초명이 보이지 않는 것들이 많아서 아쉬움이 남았다. 언제 여건이 되면 평일 날 산 쪽에다 한방자연휴양림에 숙소를 정해놓고 충분한 시간을 갖고 약초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제는 같이 여행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점심식사는 함양으로 이동하여 '예다믄’ 한정식집에 가서 먹었는데 차를 대놓고 식당 안쪽으로 들어가니 여러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지만, 우리는 미리 예약을 해놓은 덕분에 안쪽 룸에 자리를 맞춰놓아서 우리끼리만 단출하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먹어보니 음식 맛도 있었고, 맛이 있다고 음식량도 부족한 것이 아니어서 풍족하게 잘 먹었다는 생각이 든다.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나서는 걸어서 상림공원으로 도보여행을 시작하였다. 함양에 있는 상림공원은 신라의 진성여왕 시절에 함양 태수로 발령받은 최치원 선생과의 관련성이 깊다. 옛날에는 지금의 위천수가 함양의 중앙을 흐르고 있어 홍수 피해가 심하였다. 그래서 최치원 선생이 둑을 쌓아 강물을 지금의 위치로 돌리고, 둑에다가 나무를 심어 오늘까지 이어지는 숲을 조성하였다. 전에는 상림과 하림으로 나누어 조성하였지만, 하림은 취락이 형성되면서 훼손되고 옛날의 숲을 보존하는 것은 상림만이 남아 있다. 상림의 아름다움은 봄에는 신록이고, 여름은 녹음이요, 가을에는 붉은 단풍이, 겨울에는 설경으로 사시사철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숲 속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최치원 선생이 돌아가신 지가 천년이 넘었는데도 선생에 대한 고마움이 숲을 걷는 내내 들었다. 좀 더 걸어 올라가다 보면 건강을 위해서 맨발로 걷는 사람도 만나고, 위쪽 경기지역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사람주나무, 나도밤나무 및 개서어나무도 만나며, 한 바퀴 돌고 내려오다 좌측으로 고개를 돌리면 공원 잔디밭에 있는 무늬캐키버들도 만난다. 이렇게 경남 함양에 와서 점심 식사도 맛있게 먹고, 최치원 선생이 조성한 상림공원 숲도 걸어서 건강을 챙겼으니 이만한 행복이 어디 있겠는가. 물론 크게 생각하면 최치원 선생의 덕분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여태껏 여기를 몰랐으니 이를 알려준 막내처남 내외가 더 큰 공을 세웠다고 보겠다.

 

이렇게 경주 출신 5남매의 봄 여행은 모두 끝이 났다. 일기도 고르지 못한데 나이 먹어서 여행한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았지만, 아무 탈 없이 여행을 마친 것도 고마운 일이고, 더 나이 먹어 내 힘으로 걷지 못할 때는 불러줘도 못 가니 부지런히 불러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번 여행을 위해 많은 준비를 해주신 막내처남 내외께 깊은 감사를 드리고, 여행이 거듭될수록 장족의 발전을 하는 우리 5남매의 모임이 오직 막내한테 달린 것도 사실이어서 다음 모임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5남매! 곱하기 2는 열 명, 건강하게 잘 있다가 또 보자고요.”

 

▣참고한 글: 다음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