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오래 전의 친구를 찾아 청주에 가다

강일형(본명:신성호) 2024. 3. 6. 23:08

지금은 비가 오지 않지만 오늘도 봄비가 또 내린다고 한다. 요즘 들어 부쩍 눈도 자주 오고 비도 자주 내리는 것 같다.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같이 모임을 하고 있는 대선배님께서 지난 설 전부터 오랫동안 보지 못한 후배가 하나 있는데 언제 시간이 되면 같이 만나러 가자고 한다. 그 선배께서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필자하고도 오래전에는 막역한 사이였지만 청주에 내려가서 살았기 때문에 sns를 통하여 가끔 연락을 주고받긴 했어도 실제로 만나보지 못한 지가 20년이 좀 넘었을 것으로 본다. 선배님의 제안에 선뜻 그렇게 하자고 해놓고는 서로의 시간을 조율하다가 마침 어제가 3월 5일이 날짜가 잡혀 청주에 가서 그 친구를 만나고 와서 그 얘기를 하고 있다.

 

안양에서는 청주대 쪽으로 가는  버스가 없어서 서울 남부버스터미널로 가서 청주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집을 나설 때가 아침 출근 시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인 8시 40분이었는데 차가 곳곳이 다 밀렸다. 출근 시간 때 어딜 나서 보지 않은 지가 오래라서 이 정도로 심각한 지는 미쳐 짐작하지 못했다. 10시 20분 버스를 예매해 놓아서 혹시 버스를 놓치는 것 아닐까 조마조마했지만 그래도 남부터미널에 출발 10여분 전에 도착하여 한숨 돌리고 청주를 같이 가기로 한 선배님을 만나서 함께 버스에 올랐다.

 

우리를 태운 우등버스는 터미널을 빠져나와 고속도로에 들어오자마자 버스전용차선으로 바꿔 타고는 막힘없이 제 속도를 다 내었다. 경부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천안 IC를 지나 얼마를 가지 않아 청주 오창 쪽으로 나있는 고속도로로 길을 바꿔 탔다. 청주를 여러 번 수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다녔어도 이 길은 처음 가 보는 것 같다. 길을 바꾸고 얼마 가지 않아서 빗방울이 떨어져 달리는 버스 앞 창에 부딪치고 윈도 브러시가 가끔씩 작동되는가 싶더니 오창의 북부터미널에 도착하였다. 거기서는 오래 정차하지 않고 사람들만 하차시키고 바로 출발하였다. 그리고 10여 분 더 달려 성모병원을 조금 지나서 정차하여 우리 일행은 거기서 내렸다. 비가 내리니 큼직한 우산을 쓰고 한 손에는 빈 우산을 들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친구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 준다. 고희가 훨씬 넘었는데도 얼굴에 주름도 별로 없고 건강해 보였다. 사이클을 자주 타면서 체력도 보강하고 나름대로 건강관리를 빈틈없이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도 이렇게 보니까 그동안 잘 지내고 있었던 것은 맞는 것 같다.

 

우리가 버스에서 내렸던 장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주차장에 차를 주차해 놓았다고 하여 같이 걸으면서 오늘 점심을 먹을 식당은 산성에다가 예약해 놓았으니 드라이브할 겸 한 바퀴 돌자고 한다. 이렇게 청주에 와서 오랜 친구인 현암 선생과의 반나절 여행이 시작되었다. 승용차를 타고 시냇길을 빠져나와 외곽길을 타는가 싶더니 사잇길 옆으로 명암방죽이 보이고 산속길로 접어들어 얼마를 가니까 도로를 넓혀서 한창 포장하고 있는 곳이 나왔다. 그곳에서 조금 더 올라갔더니 산성 마을이 보이고 식당도 더러 보였다. 좌측으로 연못보다는 크고 방죽보다는 적은 저수지가 있는데 그 옆에다 주차를 해놓고는 걸어서 미리 예약해 놓았다는 식당을 찾아 걸어 올라가니 '송학정'이라는 허름한 기와집 식당이 나왔다. 처음 오는 식당인데도 크게 낯설지 않고 정감이 간다. 비는 봄비라서 그런지 많이도 오지 않고 조금 더 오다가 덜 오고 그치지 않고 꾸준히 내렸다. 이런 날은 파전에 막걸리 한 잔이 저절로 생각나게 한다. 날씨 분위기에 맞게 본음식이 들어오기 전에 여러 밑반찬이 죽 들어오는 것 중에서 마침 파전이 눈에 띄었다. 그래서 막걸리를 달라고 하니 병막걸리를 줄지 알았는데 큼직한 뚝배기에 가득 찬 술위로 술을 풀 수 있는 바가지를 하나 띄워 놓았다.

출출하고 목이 마르던 차에 두세 잔을 연거푸 마셨더니 아무리 막걸리지만 취기가 올랐다. 파전으로 안주를 하면서도 십여 가지 되는 반찬을 골고루 다 먹어 보면서 맛을 봤다. 반찬이 하나같이 정결하면서도 우리가 어렸을 때 먹었던 반찬과 비슷한 것들이어서 맛도 맛이지만 더 정겨웠다. 게다가 대충 잘라서 가져온 것 같은 생두부는 담백하면서도 옛날 손으로 만든 손두부 맛이 나서 젓가락이 자꾸 그리로 갔다. 본 음식인 오리백숙이 나오기 전에 벌써 배가 불렀다. 반주를 꽤 여러 잔 했다. 현암 선생은 운전을 해야 해서 마시지 못하고, 같이 내려온 선배님께서는 두 잔 하시더니 그만 마신다고 하여 거의 필자가 다 마실 수밖에 없었다. 술을 마시면서 많은 얘기를 나눴다. 옛날 동료들의 안부부터 시작하여 그때 있었던 일까지 여러 얘기들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한창 얘기꽃을 피웠다. 오리백숙과 죽으로 든든하게 점심을 먹고서는 올라갈 차 시간이 두 시간 가까이 남았으니 친구의 사무실을 들렀다가 가도 충분하다고 하여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암의 사무실로 이동하면서 곡주도 한 잔 했고 해서 필자가 운행중인 차 안에서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관자재보살~~" 이렇게 '반야심경' 첫머리를 운을 떼니 거침없이 끝까지 다 암송을 하는 것을 보고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르지 않았나 그런 생각을 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사무실 앞의 상가 건물에 도착하였다. 건물 입구에서 우리를 가장 먼저 반갑게 맞이해 주는 것은 바로 '현암의 사주이야기'라고 써놓은 간판이었다. 사무실에 들어가니 좌측으로는 역술인회원증부터 시작하여 역학상담사 자격증, 학술위원증 등 여러 자격증들이 현암의 철학에 대한 깊이를 입증해주고 있었다. 우측에 있는 현암의 방으로 들어가니 책상 옆으로 9층 석탑 형태의 그림을 그려놓고 그 위에 금강경을 한문과 한글로 잔잔하게 써놓은 불경이 방문객의 정신을 압도하는 것 같았다. 현암 선생은 옛날에 같은 직장을 다닐 때만 해도 평범하고 보통의 직장인이었다. 다만 그 당시에도 한문 공부를 많이 했고, 필체도 좋았으며 사람이 총명하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경북 북부지역이 고향이다 보니 정신적으로 유교사상에 영향을 많이 받았을 거고, 성리학으로 학문세계를 넓히지 않았을까 싶다. 원래 성리학의 특징은 공자·맹자의 선진유학을 형이상학적으로 정당화하는데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고, 인간은 누구나 우주의 보편타당한 법칙을 부여받아서 본질적으로 인간성을 신뢰한다고 했다. 이런 바탕에 이론적 근거를 두고 공부하다 보니 더 심취한 것으로 보인다. 현암 선생이 오래전에 회사를 퇴직하고 자기가 평소에 관심 있던 분야에 공부를 더 하여 사람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예견할 수 있는 사주명리학, 관상학, 심리학, 작명학 등을 통하여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학문인 철학을 심도 있게 연구하고, 인접 학문에까지 폭넓게 공부하였다는 사실에 놀랐고, 이 부문에서는 높이 평가할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한테도 칭송을 받을만하다.

 

참, 오랜만에 만난 옛 친구가 이 정도로 훌륭한 철학자가 될 줄을 몰랐다. 이런 친구가 나와 가깝게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젊었을 때 만났던 오래 전의 친구가 이번에 우리를 청주로 초대하여 청주산성까지 드라이브도 시켜주고, 맛난 음식뿐만 아니라 서울 올라오는 차표까지 끊어주시는 등 융성한 대접을 받고 보니 부끄럽기까지 하다. 아무튼 "현암 친구, 여러 가지로 고맙소. 건강하시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