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영화 '파묘'를 마누라와 같이 보다

강일형(본명:신성호) 2024. 3. 4. 00:17

수일 전 영화 파묘(破墓)가 개봉 4일 만에 관객 2백만을 돌파했다고 하여 마누라와 함께 인덕원 역옆에 있는 롯데시네마에 가서 파묘를 관람하였다. 이 영화는 우리가 어렸을 때만 해도 사람이 죽으면 요새처럼 화장이라는 것이 거의 없었고 매장을 했었는데 매장을 하기 전에 지관을 불러 산세·지세·수세를 보고 나침판을 놓고 방향을 맞춰서 묘를 썼다. 묘를 써놓고도 집안에 우환이 있다거나 비명횡사하는 일이 있다고 하면 이 영화에서처럼 파묘를 하여 이장을 하였다.

 

여기 '파묘' 영화에서는 친일파 후손이 미국에 이민 가서 잘 살고 있는데 자손이 괜히 아프게 되고 다 죽어 가는 것을 보고 조상 산소가 잘못 들어서 그런 것이라는 무당 말을 듣고 풍수사(지관)를 불러 그런 가능성을 재확인한 후 거액을 주고 파묘를 결정한다. 일제가 산세나 지세가 좋은 곳에 조선의 맥을 끊기 위해 쇠말뚝을 박아 놓았던 그 자리에 '오니'라는 일본 요괴가 살고 있었는데 그런 줄도 모르고 거기에 산소를 쓰고 나서 후손들의 비극이 일어나는 것을 다룬 영화이다. 그 조상은 친일파이면서 대단한 가문이라 묏자리도 좋은 곳을 잡아 봉분이나 비석도 큼직하게 세울 수 있었으나 번듯하고 떳떳하게 쓰게 되면 도굴이나 훼손을 걱정해서 봉분도 낮고 비석도 작을 뿐만 아니라 글씨도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일부러 허름하게 쓴 묘였다. 

 

그러면 이참에 영화에서 일제의 쇠말뚝 얘기가 나왔으니 그 얘기를 더 해보자. 일제가 한국의 혼과 정서가 남아 있고 역사적으로 이름이 있는 지명들을 바꾼 것은 정신적으로 명산·명지에 쇠말뚝을 박은 것과 같은 선상에서 볼 수 있다. 이런 것들이 다 한국인들의 기를 꺾어 미래를 도모하지 못하게 하는 한 방편이었다는 것이 1930년 2월에 조선총독부의 문건인 '광주에서 학생투쟁사건의 진상과 조선 내 학교들에 미치는 영향'에서 잘 나타나있다. 내지인과 조선인 학생 싸움에서 발단돼 전국으로 확산된 광주학생운동에 관한 조선대 정근하 교수의 연구자료를 보면 광주를 대표하는 무등산(無等山)을 머리가 없는 무두(無頭)산으로 이곳에서 우두머리가 나오지 못하게 날조하고, 광주에서 학생독립운동의 모체였던 학생조직 성진회(醒進會)를 비린내가 퍼져 나는 모임인 성진회(腥進會)로 표기하는 등 새로운 형태의 풍수침략을 강행하였다고 한다.

 

그뿐이겠는가. 일제는 쇠말뚝을 박고 지명을 바꾸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전국 여러 곳에 신사들을 통해서 한국의 기운을 억누르려고 했다. 이를 위해 파묘의 '오니'보다 훨씬 강력하다고 생각되는 신들을 조선땅에 끌어들였다. 그러다가 해방이 되자 조선총독부는 '조선 신궁을 비롯한 전국 신궁·신사에서 승신식을 거행한다'고 하여 한국에 있는 일본 신을 하늘로 올려 보내는 의식을 거행했던 것이다. 이는 해방의 열기로 한국인들이 신궁과 신사를 공격할 수 있어서 신들을 미리 철수시켜야 한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보면 일제가 한국을 통치하기 위해 자국의 신들을 조선으로 불러들여 조선인의 정신을 혼란하게 하고 한국을 억압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으로 이용하며 식민통치를 하였다는 증거이다.

 

파묘는 그냥 조상의 묘를 잘못 써 죽어가는 자손을 살리려고 벌리는 단순한 이장을 위한 파묘가 아닐 것이라고 본다. 떳떳하지 않고 뭔가 숨기려고만 하는 한일관계가 좀 더 긍정적이고 발전적으로 변화하기를 바라는 보통국민의 마음을 대신 얘기하는 것은 아닌지 그런 생각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