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운이 좋은 날 같다. 점심을 먹고 뒷동산에 갔더니 올라가는 길옆으로 산수유가 노랗게 피어 있다. 산에서 피는 봄꽃으로는 올해 가장 먼저 본 꽃이 산수유다. 물론 제주에 갔을 때 많은 봄꽃과 나비도 봤지만, 올 해 산에서 피는 건 처음 본다. 지난겨울 유난히도 추워서 봄이 올 것 같지 않더니 언제 봄이 왔는지 올해도 어김없이 봄꽃을 피우고 있다.
내일 모레가 4월이고 보면 예년 같으면 산수유는 물론이고 개나리, 진달래 등 봄에 일찍 피는 꽃들은 다 피었을 시기이다. 늦추위가 있었고, 지난 겨울 혹독한 추위가 장기간 지속된 탓으로 꽃 소식이 늦어진 것이다. 여자도 아닌 남자가 봄꽃 하나 핀 것 같고 무슨 호들갑을 떤다고 하면 크게 할말은 없어도 여러 봄꽃이 여기저기 많이 피었을 때보다 오늘처럼 다른 꽃들은 피려고 마음도 먹지 않고 있을 때 이렇게 노랗게 피어있는 산수유를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기분도 좋다. 이젠 정말로 봄이 내 곁에 와 있다는 걸 느낀다.
부지런히 산에 갔다 내려오는 길에 유심히 살펴보았지만, 그 쪽은 응달이라서 아직 꽃구경하기가 이른 듯 했다. 양달과 응달이 식물한테는 큰 차이가 있다는 걸 오늘 새삼 느꼈다.
집에 와서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으니 때 이른 저녁상이 나왔다. “어디 가냐?”고 마누라한테 물으니 영화구경 가자고 한다. 얼떨결에 따라나서서 ‘그대를 사랑 합니다’라는 영화를 봤다. 내용은 두 노인네가 있는데 송재호님은 아들, 딸 시집장가 보내서 두 노인네만 남게 되었는데 할머니가 병들어 죽게 될 입장이 되니 혼자 못 산다면서 같이 자살을 한다. 한편 이순재님은 할머니를 일찍 사별하고 재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살아오다가 폐지 줍는 할머니를 만나 서로 좋아하게 되는데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인지 헤어진다. 헤어지고 나서 할아버지가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다.
이 영화에서 암시하는 건 두 가지인 것 같다. 첫째는 부부가 건강하게 백년해로해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나이가 먹고 늙게 되면 서로에게 의지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보는 관점에 따라 견해는 달리할 수도 있지만, 조만간에 다가올 우리의 미래 같아서 마음이 찡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착잡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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