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20년의 봄은 코로나가 데리고 갔다

강일형(본명:신성호) 2020. 4. 8. 08:22





지난겨울은 여느 해와 달리 유난히도 춥지 않아서 우리같이 돈 없고 나이 먹은 사람들이 겨울나기가 그런대로 좋았다. 춥지 않게 겨울을 보낸 것이 심통이 났는지 70평생을 살면서 한 번도 보지 못한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이 온 세상으로 퍼져 이렇게 계절이 바뀌어 날씨도 따뜻해지고, 여기저기 봄꽃들이 만발하여 꽃구경하라고 불러대는 데도 꼼짝없이 집에서 오는 봄을 맞이하고 있다. 기껏해야 저녁나절이 다되어 집을 나와 안양천을 따라 양명고앞을 지나 대교 밑으로 해서 석수동 충훈부 들어가는 입구까지 이틀에 한 번 걸어 갔다 오는 것이 유일한 외출이고 즐거움이다.


지난 3월 서구라파 쪽으로 십 여일 여행계획을 세웠다가 가을로 연기하고 여태껏 집에만 있는 것이 그나마 애국하는 길이라고 생각해서 아예 나들이는 생각지도 않고 있었는데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마누라가 의왕에 있는 백운호수로 바람을 쐬러 가자고 한다. 그래서 오전이 다갈 무렵에 몇 달 만에 핸들을 잡고 백운호수로 갔다.


백운호수를 온 지가 3-4년은 족히 된 듯했다. 전에 볼 수 없었던 호수가 쪽으로 데크길을 잘 만들어 놓았다. 몇 년 전에 이곳을 지나 백운산을 갈 때도 보지 못했던 수면위의 호수탐방로가 언제 개통되어 의왕시민들뿐만 아니라 안양, 과천, 군포 등 주변 여러 시민들의 건강을 지켜주고 있다. 우리는 입구부터 천천히 걸었다. 좌측으로 커다란 물고기들이 여기저기서 어서 오라고 가장 먼저 반겨주었다. 오전이라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아서 주변을 돌아보며 꽃구경해도 걷는 데는 아무런 불편함이 없었다. 데크길이 수면에서 좀 높게 있어 걷는 내내 시원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연실 콧노래가 나오기도 한다. 수년 전에 화천에 가서 산소길을 걸었는데 그곳은 수면 가까이에 데크길을 만들은 데다가 걸을 때 약간의 쿠션이 있어 수면을 보고 느끼는 스릴과 발짝을 뗄 때마다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 들었던 기억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있었던 터에 이 길을 걸으니 늘 안양천을 걷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훌륭한 명품 도보길이었다. 도심 가까이에 이런 데가 있다는 것이 놀랍다. 마누라하고 천천히 걸어서 처음에 시작한 장소까지 돌아 왔는데 채 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오랜만에 아주 편안하고 멋진 호수 둘레길을 걸었다. 이런 좋은 길을 만들어 주신 의왕시장님을 비롯한 관계공무원들께 고맙다는 인사말을 드린다.


점심시간이 다 되어 바로 옆에 있는 메밀국수 집으로 들어갔다. 옆에가 호수라서 경치도 좋고, 또한 막국수가 양은 적은 듯했지만 맛은 있었다. 더구나 점심을 먹을 때쯤 의왕 백운호수 식당에서 오래 전에 같은 부서에서 근무했던 직장친구를 우연히 만나게 되어 엄청 반가웠다. 게다가 그 친구가 점심값까지 내주고 가서 미안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고맙기도 했다. “손 사장, 고맙소. 덕분에 점심 잘 먹었소.”


오늘은 코로나를 따라 가는 봄을 붙잡아 놓고 코로나는 먼저 보내고 봄은 잠시 쉬었다가 가면 안 되겠냐고 통 사정을 하여 2020년의 봄을 의왕에 있는 백운호수에 와서 잠시 조우했다. 올봄은 멀리가 아닌, 집 가까이에서 오는 봄을 맞이했고, 또 그렇게 떠나보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계절은 다시 돌아올 테니 내년 봄에는 올봄처럼 코로나로 인해 마음 졸이지 않고 편안하게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