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태껏 살아온 나의 삶에 대해서 크게 불평했다거나 불만을 가져본 적은 거의 없었던 걸로 안다. 그런데 올해 들어서 종전에는 좀처럼 생각지도 않았던 그런 생각들이 조금씩 들더니 요즘 들어서는 부쩍 더 들기 시작했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외부활동에 지나치게 영향을 받은 탓도 전혀 없다고는 볼 수 없어도 그 이유보다는 나의 건강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올 정초부터 어지럼증이 생겨서 한동안 고생을 했는데 어지럼증이 뜸해지니 몸 여기저기가 쑤시고 아프기 시작했다. 그래서 병원 여러 곳을 다니면서 많은 검사를 했어도 속 시원한 답을 듣지 못했다. 이런 것이 다 나이가 들었다는 신호로 봐야 하는가. 지난 해까지만해도 멀쩡하다가 이렇게 갑자기 부르지도 않은 불청객이 불쑥 찾아와서 당황스러웠었는데 이제는 통증이 자리잡고 앉아 시도 때도 없이 짓쑤시고 괴롭힌다. 이런 불청객을 내쫓으려고 병원도 가보고, 운동도 더 열심히 하고, 산에 가서 맑은 공기도 마시면서 이것저것 별짓을 다해도 못 나간다고 아주 대차게 버틴다. 어떡해야 하는가. 많이 싫어도 사는 동안은 같이 가야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집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다가 어제는 오랜 고향 친구의 마누라가 암으로 세상을 달리했다고 해서 일산의 보험공단에서 운영하는 일산병원장례식장으로 문상을 갔다가 왔다. 한참만에 하는 외출이어서 모든 것이 서투른 데다가 많은 것을 편한 대로 살아와서 격식을 갖춰 조문을 가야 하는데도 운동화 신고 갔었다. 지난 3년 전부터 암으로 고생한다는 얘기를 들었어도 그만저만하다고 해서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갑자기 세상을 버리니 가족들이 많이 놀랐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 친구는 중등학교 선생으로 오래도록 봉직을 했고, 딸만 둘이었는데 모두 잘 키웠다. 고인이 먼길을 떠나기 전에 남기신 말씀이 "내가 죽어 조문을 오신 모든 분들에게는 부의금을 받지 말고, 대접을 잘해드려라."라고 했다면서 부의금을 억지로 주려다가 못 주고 왔다. 이 세상을 떠나면서까지 남을 배려하는 고인의 모습을 실제로 보는 것 같아서 더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1월에 몸이 안 좋을 때 친한 고등학교 친구가 유명을 달리했는데도 문상을 못 가고 인편에 부조만 한 것이 항상 마음에 걸렸는데 건강이 다소 회복되어 이번에는 이렇게 문상을 갔다 오게 되어 다행이다 싶다. 지난 10월에는 우리 집 기둥이 시었던 큰 형수님을 멀리 떠나보내고 가슴이 많이 아팠었고, 2018년 12월 말에는 사랑하는 어머니를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먼길로 떠나보내야 했다. 이렇게 내 주위에 가까운 가족들과 지인들이 자꾸 떠나는 걸 보면 나도 적잖게 나이는 먹은 듯하다.
고희(古稀)이면 그렇게 많은 나이는 아닌데도 작년보다 걸음걸이가 불편한 것은 사실이다. 여지껏 길지 않은 세월을 살아오면서 늘 쉽게 편안하게 살아왔는데도 요즘에 세상 사는 것이 쉽지만 않은 것 같다. 나이 먹고 고향에 내려가 산에 가서 나무나 가꿔야겠다고 생각하며 지난 2월 말에 시작한 산림기사 시험이 코로나 때문에 세 번씩이나 연기되다가 더는 연기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되었는지 이번 6월 6일 현충일날 본다고 해서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비록 1차 시험이긴 해도 떨어지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고, 2차 주관식 시험과 실기까지 대비해서 충분한 학습량을 늘려왔으니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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