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형수님이 56년 전에 우리 고령 신 씨들이 많이 사는 충북 종암의 신 씨 집안으로 시집오셔서 슬하에 아들 하나와 딸 넷을 두셨고, 손녀 둘과 외손자, 외손녀 등 여러 자손을 남기고 지난 10월 1일에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나셨다.
형수님이 우리 집으로 시집오시던 196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너나나나 다 어렵게 살던 시절인데다가 줄줄이 어린 시동생들과 시누이가 있었는데도 늘 밝은 모습으로 시동생들을 돌보고 시부모 공경하며 어려운 살림을 잘 꾸려나가셨다. 그런데다가 외지에서 사시다가 고향에 돌아와서 농토는 남들보다 더 많았어도 농사일이 서투른 시부모를 도와서 힘들고 고단한 농사일도 마다않고 농가의 안팎일을 도맡아하시기도 했다. 필자가 초등학교 4학년 때로 기억한다. 몸이 몹시 아파서 학교를 못갈 형편이었는데 그걸 안쓰럽게 생각하시던 형수가 2km가 넘는 학교까지 등에 업고 갔던 기억도 뚜렷하다. 그뿐이겠는가. 없는 살림에도 늘 어린 시동생과 시누이를 챙기시는데 소홀하지 않으셨고,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기면 이웃뿐만 아니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남들에게도 많이 베푸셨다. 그렇게 하시던 나의 맏형수를 다시는 만나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파오면서 금방 눈시울이 젖는다.
큰형수님이 고령 신 씨 집안에 시집오셔서 너무도 고생을 많이 하시는 것이 늘 가슴 아파하면서도 별로 도움도 못 드리고 여태껏 살아온 것이 마음에 걸린다. 이렇게 형수님을 떠나보내고 나서 그래도 형수께서 우리들 곁에 있어 주었을 때가 참, 행복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형수님, 정말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보고 싶습니다. 이제는 이 세상에서 고단하고 몸이 아파 고통 받았던 모든 것들을 다 내려놓으시고 저 세상에 가셔서는 편안하게 잠드소서.”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원순 서울시장을 식당에서 만나다 (0) | 2019.12.06 |
---|---|
3대(代)가 비산동 여자수산에 가서 저녁을 먹다 (0) | 2019.10.20 |
초등친구들과 하계단합대회를 하다 (0) | 2019.08.07 |
어머니와의 때 이른 이별이.... (0) | 2019.01.17 |
사랑하는 어머니께서 영면하시다 (0) | 2018.1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