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기행

강감찬 장군의 생가인 낙성대를 가다

강일형(본명:신성호) 2018. 3. 23. 16:49

  




이번 역사기행은 서울 사당역에서 그리 멀지않은 낙성대(강감찬 장군이 태어날 때 별이 떨어진 장소)로 갔다. 관악구청에서 소개한 역사해설가를 대동하고 낙성대공원, 안국사를 둘러보고 안국사 뒷산으로 나있는 관악산 둘레길을 돌고 와서 오늘 있었던 얘기를 해볼까 한다.


강감찬 장군은 서기 948년에 태어나서 1031년에 만 83세의 일기(一期)로 생을 마쳤다. 장군은 원래 무관이기보다는 문관으로 벼슬길에 올랐다. 고려 성종(서기 983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임헌복시(任憲覆試) 갑과에 장원급제한 뒤 관직에 올라 예부시랑, 국자제주, 한림학사, 승지, 중추원사, 기부상서 등을 역임했고, 1018년에는 서경유수와 내사시랑평장사를 거쳐 말년에는 문하시중(지금의 국무총리)에 오르기도 했다.


서기 1010년(현종1년) 거란 성종이 ‘강조의 정변’을 구실삼아 고려를 침공하자 강조를 행영도통사(行營都統使)로 삼아 30만 군을 거느리고 통주(평북 선천)에 나가 막게 했으나 크게 패했다. 이에 놀란 조정대신들이 항복을 주장했으나 강감찬 장군은 이를 반대하고 왕을 나주로 피신하게 한 후, 양규가 곽주에서 거란 군을 무찌르고 하공진의 외교적인 노력으로 항복을 면했다.


8년 후 1018년 거란의 소배압이 고려의 현종이 친히 조회(朝會)를 하지 않는 것과 강동 6성을 돌려주지 않는 것을 구실로 삼아 10만 대군을 이끌고 또 다시 고려를 침략했다. 이때 서북면 행영도통사로 있던 강감찬은 상원수가 되어 부원수 강민첨과 같이 여러 곳에서 거란 군을 격파했다. 이 전투에서 거란 군 10만 명 중 살아간 자가 수천에 불과했다고 하니 얼마나 참패를 당했는 지를 유추할 수가 있다. 바로 이 전투가 귀주대첩이다. 귀주대첩은 고구려의 지장(智將)인 을지문덕장군의 ‘살수대첩’, 그리고 이순신 장군의 ‘한산대첩’과 더불어 한국전사의 3대 대첩중의 하나이다.


강감찬 장군의 묘소는 충북 청주시 옥산면 국사리에 있다.


오늘은 감감찬 장군이 태어난 곳에 가서 장군의 높은 기상을 온몸으로 느껴보고, 내려오는 길에 점심식사를 역사해설가가 소개해준 식당에 가서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낙성대역 4번 출구에서 조금 더 가다가 좌회전하면 장안의 명물빵집인 ‘쟝블랑제리 팥빵·맘모스빵’가게가 있다. 여유있게 왔는데도 벌써 많은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 있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사려고 하는 빵은 맘모스빵인데 지금 줄을 선다고 해도 우리까지 참리가 돌아온다는 것이 만무해서 팥빵을 사들고 조금 전에 집에 와서 오늘 하루 있었던 얘기를 해봤다.


오늘 하루도 잘 보냈고, 행복한 하루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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