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큰 형수님과 같이 안양 선진병원으로 어머니를 보러가다

강일형(본명:신성호) 2017. 12. 25. 21:19




나의 어머니가 안양 선진병원으로 오신지가 작년 9월 초에 오셨으니 1년하고도 수개월이 흘렀다. 그 전에는 메트로병원에 오래도록 계셨는데 다시 갑자기 경기(驚氣)가 있고, 호흡곤란이 발생하여 샘병원 중환자실에서 근 한 달 가까이 계시다가 다소 몸 상태가 호전되어 선진요양병원으로 오셔서 지금까지 계신다.


어머니 슬하에는 9남매를 두셨는데 어머니께서 장수하시다 보니 두 아들과 막내며느리를 앞세우셨다. 그런데다가 큰형수님이 작년 8월에 폐암말기 판정을 충북대병원에서 받으시고 나서 둘째딸과 검사를 받고 오시다가 문병을 갔던 우리와 복도에서 마주쳤는데 형수를 보자마자 눈물이 핑 돌았다. 그런 내 모습을 보던 형수가 연실 두 손을 번갈아 가면서 눈물을 훔치는 것을 보니 너무도 가슴이 아팠다.


큰 형수가 우리 집으로 스무 살에 시집오셔서 어린 시동생과 시누이 마음도 잘 헤아려주셨고, 또 시부모 공경하면서도 늘상 얼굴이 밝으셨다. 그런 형수가 작년 12월을 못 넘기실 거라고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서는 눈이 깜깜해지고, 현기증이 날 정도로 온몸에 힘이 빠지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삼촌, 나 솔직히 3년만 더 살았으면 좋겠어! 삼촌이 한 번 더 살길을 찾아봐요.” 저렇게 형수가 간절히 원하시니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이 딱 두 가지였다. 아무런 치료를 하지 않고 12월까지 사시든지, 아니면 폐암의 치료제로 어느 정도 맞을 수도 있고, 또 사람에 따라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는 영국의 제약회사인 아스트라제네카사에서 개발하여 일본에서 임상실험 중인 '이레사'약을 투여하든지, 선택의 폭은 별로 없었다. 그 당시만 해도 국내에 있는 한미약품에서 폐암에 좋다는 의약품을 개발해서 임상실험을 하고 있다고 했어도 벨기에 제약회사와 기술제휴를 했다가 취소를 하는 해프닝이 있다 보니 검증이 안 된 것을 쓰는 것보다 일본에서 임상 중인 ‘이레사’약을 투여하는 것이 낫겠다 싶어 일단 작년 8월말부터 투여를 했다. 그 약이 몸에 맞았는지 2016년 12월을 못 넘긴다는 형수가 벌써 1년 4개월을 버티고 계신다. 그 때 당시 주먹만 한 암 덩어리가 활동을 멈추고 부위가 상당히 줄어들었다고 하신다. 1년 동안 임상실험기간에는 돈도 들은 것이 별로 없고, 1년이 훨씬 지난 요즘에는 돈이 조금 더 든다고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때 그래도 판단을 잘 했던 것으로 본다. 앞으로 3년뿐이겠는가.10년은 무난하게 버티실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런 형수께서 어제 충북 미원에서 안양에 있는 선진요양병원까지 오셔서 어머니를 문병하고 당일로 내려가셨다. 큰형수가 저렇게나마 건강을 회복하셔서 다행이고, 어머니가 이처럼 수년간 콧줄로 식사를 하시면서도 내 곁에 있어서 너무도 좋다.


오늘도 어머니를 안양 선진병원에 가서 들여다보고 며칠 전 모친상을 당한 박달동에 사는 친구하고 저녁을 같이 하면서 소주도 꽤 여러 잔을 하고 와서 이렇게 며칠 전부터 오늘까지 있었던 얘기를 해봤다.


겨울밤이라 밤공기가 너무도 차다. 남서쪽 하늘을 바라보니 오리온별자리가 보이고 가운데 삼태성이 선명하다. 하늘을 보고, 땅을 보며 오늘도 하루를 잘 보냈고, 앞으로 나의 남은 생을 건강하게 살다가 마치기를 바란다면 그게 지나친 욕심일까.



4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