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정동진에 가서 부채길을 걷고 협곡열차를 타다

강일형(본명:신성호) 2017. 10. 30. 11:24






누군가가 ‘여행은 마약과 같다’고 했다. 처음에는 마약이나 여행을 호기심으로 시작하지만, 한두 번 접하다 보면 유혹에 빠지기 때문에 여행도 마약처럼 해본 사람이 한다. 여행은 비용이 들고 때로는 고단할 때도 있지만 보고, 듣고, 느껴지는 감정을 통하여 여행의 즐거움을 얻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번에는 동해안의 정동진에 가서 부채길을 걷고 나서 협곡열차를 타고 단풍구경을 한 얘기를 하려고 한다.


우리를 태운 관광버스가 시내를 빠져나와 서울-양양 간 고속도로에 접어들어 차창 밖을 내다보니 들녘에는 가을걷이가 농부의 일손을 바쁘게 하고, 산에는 어느새 울긋불긋 단풍 옷으로 갈아입고 우리를 반겨준다. 한참동안 그렇게 차창 밖 이쪽저쪽을 둘러보다보니 홍천휴게소에 도착했다. 비록 버스이긴 해도 아침부터 강원도에 와서 단풍과의 첫인사를 나눈 후 다시 차에 올라 산이 높아지고 빠끔하게 길만 뚫려있는 계곡으로 달리던 버스는 이내 터널 속으로 들어가 긴 터널, 짧은 터널 여러 개를 지나고 나서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양양 읍내가 나왔다. 양양에서 강릉을 거쳐 정동진까지는 얼마 안 걸렸다.


정동진은 오래 전이기는 하지만 아이들하고 오기도 하고, 마누라와 같이 와서 하룻밤을 묵기도 했다. 그뿐이겠는가. 가을이 깊어가는 이맘 때 처갓집 식구들과 같이 와서 관광열차를 타고 해안 투어도 했었다. 그리고 최근에 카페동호회원들과 같이 ‘강릉 바우길’중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9구간 ‘헌화로 산책길’을 정동진역에서 출발하여 모래시계, 마을 뒷산, 심곡항, 헌화로, 금진항, 옥계해수욕장을 경유하여 옥계시장까지 도보투어를 한 적도 있다. 이처럼 나와 정동진과의 인연은 다른 어느 곳보다 깊다.


정동진의 부채길은 약 200여만 년 전에 단층이 생성되어 있는 자연적인 해안단구에 강릉시에서 데크길을 만들어 사람이 걷기 편하게 인위적으로 만든 해안로이다. 천연기념물 437호로 지정될 만큼 바다와 괴암이 어우러져 걷는 내내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고, 끝없이 펼쳐지는 맑고 푸른 동해바다를 한없이 바라다 볼 수가 있다. 가슴이 뻥 뚫리는 듯 시원함은 여기 동해가 아니고는 좀처럼 느낄 수가 없다. 이 길은 작년에 50년 만에 처음 개방했고, 부채길이라고 불러지게 된 것이 부채바위와 여인의 화상과 관련해 전해 내려오는 얘기가 있어서라기보다 이 길이 놓인 지형이 바다를 향해 부채를 펼쳐놓은 모양과 닮았다고 해서 그렇게 불러졌다고 한다. 부채길의 시작 또는 끝나는 지점이 썬쿠르즈호텔에서 시작하면 심곡항에서 끝나고, 심곡항에서 시작하면 썬쿠르즈에서 끝나는데 거리는 약 3km(2.9km)가까이 된다. 대체로 평이한 데크길인데도 가끔 오르막내리막 길을 만나기 때문에 편안한 운동화를 싣는 것이 좋다. 시간은 천천히 걸어도 1시간이면 충분하다. 작년 가을 일시적으로 개방했다가 중단하고 재정비한 후 금년 여름에 재개방했는데 입장료를 어른은 3천원, 학생과 군경은 2,500원, 어린이는 2천원이다. 단체 30인 이상은 각각 500원이 할인되고, 65세 노인은 무료이다. 출입 가능시간은 하절기는 09시부터 17시 30분까지이고, 동절기는 09시부터 16시 30분까지이며 동·하절기 공히 출입마감 1시간 전까지 입장권을 구매할 수가 있다. 

 

우리는 부채길을 걷고 나서 정동진역 앞에서 순두부찌개로 점심식사를 맛있게 마친 후, 오후 1시 반에 출발하는 협곡열차를 타기까지는 다소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다. 그래서 정동진역 앞 해변을 걸을까 생각하고 있을 때 강릉으로 가는 무궁화호 열차가 들어왔다. 기차여행을 해본지가 오래라서 열차에서 내리는 승객들을 부럽다는 듯이 쳐다 보다가 사람들이 얼추 다 내릴 때쯤 철도를 건너 해안가 쪽으로 가니 ‘고현정소나무’라고 하는 소나무 밑에 가서 마치 탤런트라도 된 듯 사진을 찍고 모두들 좋아한다. 벤치에 앉아 밀려왔다 부서지는 파도와 철썩거리는 파도소리를 듣고 있으니 정동진에 온 것이 실감이 났다.불과 얼마 전에 왔을 때는 정동진역 앞으로 길게 백사장이 이어졌었는데 지금은 하얀 모래는 온데간데 없고, 침식을 막는 시멘트 방파제가 모래를 대신하고 있다. 동해안의 침식이 말이 아님을 실제로 눈으로 보고 알게 되었다.


조금 전 정동진역에 들어왔던 기차는 강릉을 갔다 오는지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아 정동진역으로 돌아왔다. 이 기차는 전기로 움직이는 전동열차가 아니고 디젤연료로 달리는 정통기차이다. 정동진에서 묵호, 동해, 영주, 안동을 거쳐 부산까지 가는 정기노선의 무궁화 기차이다. 우리가 가는 정동진에서 분천역까지는 하루에 관광열차가 6회 정도 다닌다고 하는데 우리는 관광열차나 바다열차가 아니고, 일반인들이 정해진 시간에 탈 수 있는 무궁화 열차를 탔다. 처음에는 무궁화호라서 조그만 간이역은 그냥 통과하는 줄 알았는데 방 한 칸 정도 되는 ‘양원역’에서도 섰다가 갔다. 양원역은 대한민국의 철도역사 중에 가장 작은 역이고,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만들었다는 민자역이다. 정동진에서 산타마을이 있는 분천역까지는 2시간 남짓 걸린다고 했지만, 상행 열차가 연착되어 오후 4시가 훨씬 넘은 시간에 도착했다. 정동진을 출발할 때는 바닷가로 달리던 기차가 동백산역으로 갈 때는 차창너머로 곱게 물든 단풍을 쉽게 볼 수가 있었다. 산속을 달리던 열차는 묵호, 동해를 거치면서 도시 한복판으로 들어와 도농(都農)간의 가을 풍경을 한꺼번에 볼 수 있었다. 동해에서는 상행열차를 먼저 보내기위해서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그래서 차창 밖으로 서있는 기차들을 보니 석탄, 시멘트 등을 주로 실은 화물열차가 눈에 많이 띄었다. 동해시가 강원도 남부지역에서는 큰 도시라고 하지만 강원도는 강원도였다. 열차가 다시 움직여 강원도 내륙남부지방인 삼척, 도계를 지날 때는 제대로 된 단풍구경을 할 수 있었다. 계곡 물가 쪽으로 붉게 물든 단풍나무는 마치 처녀들이 빨간 치마를 입고 있는 것처럼 곱고 곱다 못해 눈이 부실 정도다. “와! 와, 우~”탄성을 지르던 승객들이 도계역을 지나 열차가 긴 터널을 들어가 빠져나오는 10여 분 동안은 모두들 조용했다. 터널을 빠져나와 철암, 승부, 석포, 양원, 분천역까지 그 지역이 보통사람들은 평생을 살면서도 좀처럼 가기도 어렵고, 쉽게도 볼 수도 없는 강원도 남부지역과 경북 북부지역의 첩첩산중의 오지였다. 산과 깊은 계곡만 있고, 하늘은 손바닥만 하게 보인다. 산마다 활엽수는 연황색 단풍으로 물들어 있는가하면 사이사이 나무 밑으로 붉고 짙게 물든 아기단풍이 구색을 맞춰 계절이 가을의 한가운데 와있다고 알려주고 있었다. 단풍이 절정이라는 말은 산 정상 10%는 단풍이 지고, 산 밑에 10%는 아직 단풍이 들지 않았을 때 산 중간부분의 80%가 단풍이 들었을 때 절정이라고 한다. 우리가 열차를 타고 가는 곳이 지대가 높은 곳이라 정말 명품 단풍을 이 협곡열차를 타고 가면서 보았다. 우리나라에서 첩첩산중 깊은 산골짜기에 이렇게 기차가 다니고, 역이 있어 사람이 타고, 마을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경이롭지 않은가. 우리의 목적지인 분천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열차에서 내렸다. 산타마을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역을 빠져나가자 마치 산타의 고장 스칸디아 반도라도 온 듯 산타 상징물과 조형물이 늘비하다. 주위에는 눈썰매장도 있어서 아이들하고 같이 겨울에 오면 정말 동화마을에 온 것처럼 동심으로 돌아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명품 여행으로 기억될 것으로 본다.


우리는 시간이 없어 분천장터와 먹거리 구경은 못한 것이 많이 아쉬웠지만, 협곡열차를 타고 강원도 남부지역과 경북 북부지역의 오지를 여행했다는 것이 그 어느 여행보다 잘 했다는 생각이 들고, 이 여행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마음에 간직하고 싶다. 언젠가 시간이 된다면 눈이 많이 왔을 때 다시 한 번 협곡열차를 타고 그곳을 가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4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