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 가뭄이 극심하다. 비다운 비가 언제 왔는지조차도 기억이 잘 나질 않는 걸 보면 가뭄피해가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할 수가 있다. 농작물부터 사람이 마시는 물까지 피해규모가 확대되고 있어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가뭄으로 온 나라가 어려운데 어디로 놀러간다는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것은 알고 있어도 지난 3월 모임에서 결정된 사항이라 연기하거나 취소하기가 쉽지 않아서 지난 달 말에 1박 2일 일정으로 재경 충북 미원중학교 15회 친구들과 원산도를 갔다가 왔다.
충남 대천 앞에 있는 원산도는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갔다. 겨울을 뺀 봄, 여름, 가을에 가서 나물도 뜯고, 하절기에는 해수욕도 하고, 조개도 줍고, 낚시도 하며 많은 추억을 갖고 있었는데 2017년 여름에는 중학교 친구들과 같이 와 우정을 나누고 추억을 쌓고 있다.
원산도는 충남에서 안면도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섬이며 인구는 약 1,200여 명이 살고 있다. 주로 어업 및 농업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으나 최근 들어 관광객의 증가로 숙박 및 식당 등 서비스업으로 확대되고 있다.
우리 일행은 대천항구에 오전 11시 쯤 도착하여 13시 반에 출발하는 배표를 사놓고서 항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횟집으로 걸어가 점심식사를 했다. 대천에 와 첫 번째로 먹는 식사인데 식당에서 기르는 개와 고양이가 밥 먹는 상 밑에 들어와 우리를 괴롭혀서 주인한테 못 오게 치워달라고 하여 안 보이는가 싶더니 얼마 안 있어 이번에는 쥐새끼들이 여기저기 헤집고 다니기 시작했다. 사람을 보고도 잘 도망도 안 가고 쫓으면 구석으로 잠시 피했다가 또 다시 나타나는 배짱이 두둑한 쥐새끼들이다. 밤도 아니고 대낮에 식당을 활보하는 쥐들을 과연 어떻게 봐야 하는가. 그래서 할 수 없이 먹던 음식을 싸달라고 해서 식당을 나와 원산도 가는 배에 몸을 실었다.
원산도를 2014년도 6월에 갔다 왔으니 꼭 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 전까지만 해도 매년 원산도를 갔었는데 이번에는 세월이 이렇게 지나 중학교 친구들과 같이 가게 되었다. 3년이라는 세월이 타고 가는 배와 원산도를 낯설게 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배도 그 배이고, 배 뒤를 따라 다니는 갈매기는 그때 그 갈매기가 아니겠지만 낯설지는 않았다. 원산도가 보이고 가까워지자 충북 미원의 내 고향에 온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 우리는 오봉산해수욕장이 내려다보이는 ‘송림산장’에 여장을 풀었다. 여장을 풀고서 대천에서 점심식사를 하던 중에 쥐새끼 때문에 먹지 못한 점심을 마저 하고나서 바닷가로 나갔다.
낚시를 하는 사람들은 낚시도구를 들고 나가고, 그렇지 않은 친구들은 개불을 잡기위해 1m 가까이 되는 꼬챙이와 삽을 준비해서 백사장으로 나갔다. 시원스럽게 펼쳐지는 백사장은 오리(2km)여서 갔다 오려면 십리길이 된다. 우리가 원래는 지난 주 토요일에 왔다가 일요일에 갈 예정이었는데 다들 놀면서 복잡한 주말보다는 평일이 더 낫지 않겠느냐고 해서 며칠 늦춰서 왔더니 조금 때라서 물이 많이 빠져나가지 않으니 개불도 잡히지 않고 낚시도 조그만 놀래미 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원산도에 와서 해산물을 채취하려거나 낚시를 제대로 하려면 물때를 잘 맞춰서 오는 것도 여행의 즐거움을 더 높일 수 있다. 원산도의 오봉산해수욕장은 은백색의 모래로 널리 잘 알려져 있다. 이 모래에는 병유리나 도자기를 만드는 규사성분이 많이 들어 있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모래로 유리를 만들어서 여기 모래가 유명해졌다.
비록 해산물 실적은 저조했지만, 원산도 여행의 즐거움은 거기서 끝이 아니다. 저녁나절에 신발을 벗고 2km의 백사장을 걸어보면 금방 시인이 되고, 소설가가 되고, 영화의 한 장면에서나 볼 수 있는 배우도 된다. 그 뿐이겠는가. 바다 저 멀리로부터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은 한낮에 흘린 땀을 식혀주고, 오봉산 아름드리 소나무 밭을 휘감아 바닷가로 되돌아 나올 때 은은한 솔향기를 가져다준다. 푸른 바다가 있고, 백사장이 있고, 푸른 해송이 있고....그리고 친구가 있어 좋다. 더 뭐가 필요하겠는가. 하지만 여행은 보고, 느끼는 것 외에 먹는 즐거움을 빼놓고는 성공적인 여행이라고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점심식사로 회를 먹었다면 연거푸 해산물 요리를 먹는 것보다는 닭볶음탕(도리)이 좋지 않을까 싶었다. 언젠가 송림산장에 와서 닭볶음탕을 먹어본 적이 있는데 그 맛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있었다. 우리의 저녁식사는 닭볶음탕이다. 감자와 묵은지를 넣고 약간 매운맛을 가미한 볶음탕, 섬에 가서 먹으니 더 맛있었다. 저녁식사를 하면서 마시던 반주는 식사가 끝나고 자리를 옮겨 숙소에 가서도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밤늦도록 나누던 술잔과 말소리가 잦아드니 철썩거리는 파도소리가 들렸다. 원산도의 밤은 철썩거리는 파도소리와 같이 더 깊어만 갔다.
이튿날 아침이 되었다. 아침식사 전에 오봉산을 한 바퀴 돌고 내려와 조반을 먹을 예정이었으나 해무가 있어서 산에 올라가도 좋은 경치를 조망할 수가 없어서 등산하지 않고, 가볍게 바닷가를 산책하고 조반을 먹었다. 된장을 풀어 끓인 아욱국인데 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도 두 그릇을 먹었다.
조반을 먹고 나서는 송림산장의 김 사장님께서 시간이 되어 우리의 여행을 빛나게 했다. 여태까지 여러 번 원산도 여행을 왔었는데도 바빠서 가보지 못했던 곳을 처음 안내했다. 잘 알려진 원산도해수욕장과 또 한 곳은 해당화군락지로 유명한 곳인데도 개발이 안 된 이름 없는 해수욕장이다. 원산도해수욕장은 전에는 개장을 하여 영업을 하다가 얼마 전부터 폐쇄되어 현재까지 내려오고 있다. 오봉산해수욕장보다 더 넓고 커서 입지적인 조건이 더 좋은데도 저렇게 방치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해당화 군락지는 차가 해안까지 들어가지 못하고 산 입구에 대놓고 산을 걸어 올라가야하는 불편함이 있어도 꽃이 한창 피는 5월부터 6월초·중순까지는 장관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꽃이 거의 지고 한두 송이만이 피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원산도 여행은 아무나 다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나도 이처럼 원산도에 친구가 있어 원산도 여행을 처음에 왔고, 세월이 흘러 나의 중학교 친구들과 같이 왔듯이 아무런 연고가 없이는 올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김 사장, 자네 덕분에 원산도 여행 잘 하고 가네. 고마우이. 진숙이 엄마! 밥 맛있게 해줘서 고맙고, 잘 쉬었다 갑니다.” 그리고 “나의 중학친구들아, 건강하시게. 그래야 또 여행을 같이 하지 않겠나! 수고들 하셨네. 특히 김 회장, 오고가고 운전하느라고 고생 많으셨네. 여러 가지로 고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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