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백두산 천지(天池)를 가다

강일형(본명:신성호) 2018. 8. 24. 21:53


백두산은 산세가 장엄하고 자원이 풍부하여 일찍이 한민족의 발상지로, 또 개국의 터전으로 숭배되어 왔던 우리민족의 영산(靈山)이다. 민족의 역사와 더불어 수난을 같이한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고, 천지를 비롯한 절경이 많은데다가 독특한 생태적 환경과 풍부한 삼림자원이 있어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주목받고 있다. 백두산의 명칭은 정상부분에 흰색 돌이 마치 흰머리와 같다고 하여 백두(白頭)산이라고 불리어졌다고 하며, 중국에서도 이런 연유로 장백(長白)산이라고 한다. 백두산의 여러 봉우리 중에서 높이가 2,750m인 장군봉이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중국의 지린(吉林)성 안투현과 북한의 양강도 삼지연군이 국경을 마주하고 있으며 백두산 정상 중심부에는 천지가 있다. 천지는 약 천여 년 전(946년 화산대폭발 후 1702년 소 폭발 이후 휴화산 상태)에 화산 폭발에 의해 생긴 칼데라 호수로서 2,500m가 넘는 장군봉(2,750m), 망천루, 백운봉, 청석봉 등 16개 봉우리에 둘러 싸여있다.


천지는 해발 2,194m에 있는데 면적은 약 9.2㎢이고, 둘레가 14.4㎞이다. 수심은 가장 깊은 곳이 384m가 되고, 천지의 평균 수심이 213.3m라고 하는 걸 봐서는 육지에 있는 호수와 비교가 안 될 만큼 깊다. 백두산 천지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고, 수심도 가장 깊다. 백두산 주위에는 유황과 탄산온천이 많고 다양한 약초가 서식하고 있어서 인류의 건강을 지켜주기도 한다.


이런 백두산을 북한을 거쳐 올라갔으면 더 좋았을 텐데 사정이 여의치 않아 중국을 통하여 올라가게 되었다. 십여 년 전에 직접 개성도 가보고, 금강산도 가 보았던 필자로서는 백두산에 올라가 푸른 천지를 바라보니 감회가 많이 새로웠다. 3년 전에 한국에서 가장 높은 산인 제주도의 한라산 백록담을 올라갔다 왔는데 나이를 더 먹어 근력이 떨어지게 되면 일고여덟 시간을 걸어서 올라가는 백록담까지의 산행을 여건이 허락된다고 해도 체력이 받쳐주질 못하여 올라갈 수가 없다. 그 때만해도 한라산 백록담을 가보지 못하고 생이 끝나게 되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어서 온 가족이 같이 제주도 여행을 갔다가 가족과의 소중한 시간을 뒤로 미루고 한라산 백록담을 올라 갔다가 왔었다. 그 후로 3년이 다 되어 남·북한에서 가장 높은 산이고, 세계에서 가장 높고, 깊고, 넓은 화구호가 있는 백두산을 올라갔다.


이번 여행은 백두산을 올라가서 산수의 높고 깊은 기상과 정기를 받아 통일조국의 꿈을 가슴에 담고 온 얘기를 해볼까 한다.




백두산을 가기 위해서는 북한을 거쳐 올라가든지, 아니면 중국을 통하여 올라가야 한다. 우리는 여러 가지 방법 중의 하나로 지린(吉林)성 창춘(長春)까지는 비행기로 이동하고, 장춘에서 백두산이 멀지않은  이도백하(二道白河)까지 버스로 이동을 했다. 시간은 인천공항에서 장춘까지는 비행기로 시간 반 정도 걸렸고, 장춘에서 이도백하까지 일고여덟 시간을 지루하게 가야했다. 그래도 버스를 타고 올라가면서 중국의 동북부 지방에 사람 사는 모습들을 두루두루 볼 수 있다는 것에 위안을 받았다. 주로 농사는 밭농사로서 옥수수가 90%이상이었고 논농사는 아주 가끔 가다가 눈에 띄었다. 사람들이 사는 마을은 띄엄띄엄 있었고, 집에는 어느 집을 막론하고 담이 없어서인지 다소 썰렁하게 보였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는 버스를 타고 몇 시간을 달려야 하나, 둘씩 보인다. 우리는 네댓 시간을 달려서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 장군의 숨결이 느껴지는 돈화시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중국에 와서 처음 먹는 중화요리인데 양도 푸짐하고 시장해서인지 맛있게 먹었다. 중국여행은 북경, 상해, 장가계 여행에 이어 이번이 네 번째로 하는 여행이라 중국음식이 크게 낯설지 않았다.


중국 동북부지역은 기후는 춥고 토지는 척박하여 대체로 사람들이 살기가 힘들고 고생을 많이 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 와보니 산과 들이 짙푸른 초록으로 덮여있다. 나지막한 산에는 나무도 울창하고, 넓게 펼쳐진 들은 곡창지대였다. 길림성은 우리 동포들이 많이 사는 자치구이고, 또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 등 우리 선조들이 주요생활터전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세월이 지나 중국 땅이 되었어도 떠나지 않고 여기 사는 우리 민족들이 삶의 터전을 지키며 그나마 자치를 하고 있다는 것에 위안을 하고 여기에 살고 있는 동포들에게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


아침에 집을 나온 지 무려 14시간이 다 되어 이도백하의 장백산관광호텔에 도착했다. 호텔은 꽤 큼직했으나 숙박환경은 그리 깔끔한 편은 아니었다. 여름철이고 성수기라서 바빴는지 베개와 이부자리를 제때 교체를 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아서 이불과 베개에서 시큼한 땀 냄새가 투숙객의 마음을 언짢게 했다.  우리만 그런가하고 같이 온 일행에게 물어보니 거기도 여기도 다 그렇다고 했다. 원래 이불이나 베개가 새로이 꺼내 쓸 때 뽀송뽀송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바로 장춘에서 하룻밤을 묵었던 호텔과 비교가 되었다. 먹는 것은 그렇다고 해도 우선 잠자리부터 개선해야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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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새벽이 되었다. 창밖을 내다보니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아, 날씨가 협조를 하지 않는구나!” 이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 백두산을 찾는 수많은 사람들이 오는 사람마다 백두산 천지를 다보고 간다면 너무도 좋겠지만, 불행하게도 1년 365일 중에 약 50일 정도만 천지를 볼 수가 있다고 하니 우리도 그 중에 하나라고 하면 마음에 상처를 덜 받지 않을까 싶다. 다만 구름에 덮여있다가도 순간적으로 천지를 보여주기도 한다고 하니 그런 요행을 기대하는 수밖에 없었다. 설사 오늘 백두산 천지를 보지 못한다고 해도 크게 낙담할 필요는 없다. 오늘은 북파코스로 백두산을 올라가는 날이고, 내일은 서파코스로 백두산을 올라가게끔 미리 하나투어여행사에서 특별하게 내놓은 백두산 산행상품을 찾아 왔기 때문에 비가와도 안심이 되었다.


중국에서 백두산을 올라가려면 북파, 서파, 남파 등 세곳을 통하여 올라갈 수가 있는데 통상 1일 관광객을 북파에서는 일만 오천 명, 서파에서 3만 명, 남파에서는 5천 명이 최대수용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라고 한다. 우리는 아침을 먹고 승합버스에 올라 7시 반에 이도백하를 출발하여 백두산으로 향했다. 시내를 빠져나와 완만한 오르막을 달렸다. 차창 밖으로 노란 가로화가 우리를 맞이했다. 날씨는 장춘부터 오는 내내 선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너무도 더웠기 때문에 꼭 한가을의 날씨처럼 느껴졌다. 우리를 태운 버스는 채 한 시간이 걸리지 않아 백두산 중간부분에 도착하여 백두산 북파 정상으로 올라가는 미니버스로 환승했다. 급행료 50불을 준 덕분에 길게 줄을 서지 않고 바로 마이크로 버스를 탈 수가 있었다. 이 작은 버스들이 모두 400대라고 하는데 아주 부지런히 자주 다녔다. 속도도 꽤 내서 시속 4-50km는 족히 넘어 보였다. 길이 꼬부랑길인데도 속도는 늦추는가 싶더니 그냥 내달렸다. 길옆으로 난간대가 일그러져 있는 것이 눈에 많이 띄어 차들이 박아서 저렇게 된 것이냐고 가이드 선생한테 물어보니 버스가 받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동절기에 눈이 와서 눈 치우는 차가 눈 치우다가 그렇게 찌그러트렸다고 했다. 백두산 초입에는 소나무, 주목, 자작나무 등 여러 수목이 눈에 띄지만 올라갈수록 소나무는 보이지 않고, 주로 굵은 자작나무와 주목이 섞여 있다. 2천 미터가 넘게 되면 나무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고 회백색 화산 석과 잔잔한 들풀과 들꽃들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정상부분까지는 중간에 미니버스로 환승하여 3-40분 걸렸다.


버스에서 내리니 세찬 바람에 비가 내렸다. 우산을 쓸 수 없을 만큼 강한 비바람이다. 준비한 비옷으로 갈아입고 관광객들을 따라 천지를 보려고 10분 정도 걸어서 높은 천문봉 정상으로 올랐지만 운무에 가려 천지는 볼 수 없었다. 다시 걸어 내려와 천지 가까이 있는 곳까지 내려왔어도 천지는 쉽게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운무가 걷힐 때가 있다는 얘기를 들어서 한참을 기다렸는데도 모습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제는 손까지 시렸다. 큰 아쉬움을 남긴 채 북파로 올라온 백두산을 하산했다.


백두산 북파코스에서 버스를 타고 내려오다 장백폭포에 들렀다. 장백폭포는 물줄기가 용트림하는 것 같다고 해서 일명 ‘비룡폭포’라고도 불린다. 주차장에서 장백폭포로 올라가다보면 많은 온천들이 보글보글 더운 물에 물 끓는 것 마냥 큰물방울과 작은 물방울이 섞여서 올라오는 유황온천을 만난다. 온천의 속 물 온도가 섭씨 8-90도가 되고, 겉 온도가 섭씨 42도가 된다고 하여 물속에다 손을 집어 넣어보니 따끈따끈한 것이 금방 피로가 풀리는 듯 했다.



온천을 지나 맑은 시냇물이 소리 내어 흐르는 개천 길을 따라 좀 더 올라가면 60여m의 절벽에서 요란스럽게 소리 내어 떨어지는 흰 물줄기의 장백폭포를 보게 된다. 이 폭포는 영하 40℃에도 얼지 않아 1년 내내 사시사철 항상 흰 물줄기를 볼 수가 있다. 천문봉에 올라가서 천지를 보지 못한 아쉬움을 다소나마 장백폭포의 시원스레 떨어지는 흰 물줄기를 보고 달랬다. 이 물은 길림성을 거쳐 서해로 빠지는 쑹화강(松花江) 상류이다. 백두산에서는 3개의 큰 강의 발원지가 있는데 백두산에서 북동쪽으로 흘러서 동해로 나가는 두만강과 남서쪽으로 흘러서 서해와 연결되는 압록강 등 쑹화강과 더불어 3대강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장백폭포에서 내려오다 보면 얼마를 걷지 않아 ‘소천지’를 보게 되는 데 이 연못은 작지만 백두산 천지와 모양이 많이 닮았다고 해서 소천지라고 불린다. 소천지에는 물이 들어오는 입구는 있는데 나가는 출구가 없어 일 년 내내 물이 마르지를 않는다고 한다. 거기서는 또 도교사당도 눈여겨볼만 하다.


점심식사를 마치고는 크고 작은 폭포에 맑은 연못과 개울이 있는 녹연담을 관람했다. 입구에 엄청난 물이 쏟아지는 큰 폭포수가 있는가하면 4개의 폭포수가 크지 않으면서도 한꺼번에 수심이 26m가 되는 연못으로 떨어지는 멋진 모습을 볼 수가 있다. 비는 오락가락하다가 멈췄다. 녹연담 들어가는 입구에 설치된 온도계의 기온은 18.5℃를 알려주고 있다. 백두산 정상에서보다는 기온이 많이 올라갔는데도 썰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을 먹고 바로 호텔로 가지 않고 마누라하고 같이 바로 옆 근처에 있는 아름다운 적송이 있고, 호수가 있는 공원으로 산책을 했다. 일반적인 소도시의 공원인데도 관광지라서 조각물, 편의시설 등 볼거리가 있었다. 그들의 문화와 평소의 생활모습을 엿보는데 다소 도움이 됐다. 다만 공원 한 가운데서 스피커를 틀어놓고 음악 반주에 맞춰 노래연습을 하는 모습은 그리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또 하루가 시작되는 새벽이 되었다. 어제 백두산 북파코스로 정상에 올랐다가 천지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나자마자 창문을 열고 날씨부터 보았다. 날씨가 좋다. 햇볕도 보인다. 이 정도이면 백두산 천지를 보는데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아침을 든든히 먹고 어제보다 한 시간 정도 빨리 호텔을 나왔다. 이도백하에서 백두산 서파코스에 셔틀버스 타는 데까지는 시간 반 가까이 걸렸다. 다시 셔틀버스로 환승하여 37호 경계비가 있는 주차장으로 가기위해서는 대형버스를 타고 4-50분을 올라가야 한다. 차창 너머로 자작나무와 주목만이 눈에 들어오다가 그 마저도 보이지 않고 회색의 화산 석과 땅바닥에 붙어서 간신히 생명을 유지하는 들풀과 들꽃들이 여기저기 보일 때쯤 주차장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는 자력으로 계단을 따라 백두산 정상까지 올라가야 한다. 심장이 약한 사람들은 약을 받기위해 줄을 섰지만 조금이라도 빨리 백두산 천지를 보기 위해서 나는 바로 계단을 밟기 시작했다. 계단은 다섯 계단을 지날 때마다 숫자로 표시해 놓아서 얼마가 남았는지를 알 수가 있다. 계단은 총 1,442개이고 시간은 30분 가까이 걸렸다. 많은 사람들이 힘겹게 계단을 걸어 오르면서도 모두 다  얼굴이 밝다. 힘이 달리거나 병약자는 가마를 타고 올라오는데 체중에 따라 4-500위안을 지불한다.


1,442개의 계단에 올라서자 북적거리는 사람들 틈으로 푸른 백두산 천지가 눈에 들어왔다. 어제에 이어 두 번만의 성공이다. 확률 50%라면 나에게도 운이 따라준 것이다.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면 오늘도 허탕을 치고 힘없이 온 길을 어제처럼 또 내려갔을 것이다. 신이 있다면 신께 감사하다는 말을 꼭 하고 싶을  정도로 기분이 좋다. 내려가려고 하다가 또 돌아보고, 다시 돌아봐도 쉽게 눈길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천지를 둥그렇게 감싸고 있는 저 여러 봉우리들이 마치 손바닥을 모아서 아주 조심스럽게 천지 물을 받쳐 들은 듯 편안하고 고요한 모습이다. 때묻지 않고 깨끗한 백두산 천지의  평온한 저 모습을 마음속에 담아서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다. 훗날 언제가 될 지는 몰라도 통일조국에서 아니 통일이 되지 않더라도 남북한이 서로 왕래가 되어 마음대로 백두산을 가게 된다면 북한을 거쳐 다시 백두산 천지를 꼭 가보기를 소망한다.



높은 백두산과 깊은 천지의 정기를 온몸에 한껏 받아 내려오는 발길은 한결 가벼웠다. 백두산 천지에서 바로 흘러 나오는 물에 손을 씻어보니 한여름인데도 손이 시릴 정도로 차갑다. 여유가 있어서인지 올라갈 때 보지 못했던 들꽃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이렇게 꿈에만 그리던 백두산 천지를 직접 가서 보고 사진으로 찍은 것으로도 모자라 마음속에 담아왔으니 다른 어느 나라를 여행한 것보다 아주 잘한 여행으로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 가슴에 남고, 머리에 기억될 것이다.


이번 여행을 위해 예산에서 오신 여러 어르신들을 비롯해 멀리서 따님과 같이 오신 모녀분 등 여러 여행 동지들이 있어서 즐겁고 의미 있는 여행을 했다고 본다. 그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아울러 홍국 가이드선생께도 수고하셨다는 말과 고맙다는 인사말을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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