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한다고 하면 남녀노소를 가릴 것 없이 마음을 설레게 하는 것은 같다. 이렇게 나이를 먹었는데도 여행을 한다고 하니 여행을 가기 전 며칠 전부터 잠이 잘 오지 않을 정도로 마음이 설레고 들떴다. 그러고 보면 마누라하고 같이 여행을 한 것도 한참이 되었다. 오래전이기는 해도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은 마누라하고 관광버스를 타고 국내여행을 했었는데 이렇게 세월이 가서 다시 버스로 남도(南島)여행을 해본다.
여행은 외국여행도 그렇지만 국내여행도 부지런해야 다닌다. 새벽 5시 전에 기상해서 씻고 서울역에 가서 버스를 타려면 서둘러야했다. 아침 시간은 놀러가는 사람이나 출근하는 사람이나 바쁜 건 똑 같지 않나 싶다. 잠실에 가서 타도되는데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위해서 서울역으로 갔다. 서울역에서는 꽤 여러 사람들이 탔어도 자리는 넉넉했다. 잠실에서는 부부 한 팀만이 타는 것 같았다. 국내버스투어를 할 때 여러 관광사를 이용해서 다녔지만, 이번에 우리가 가는 남도여행은 ‘올에이’여행사로 갔다. ‘올에이’는 처음 이용하는데도 버스에서 먹는 조반을 찰밥으로 반찬도 제대로 갖춰서 내놓았다. 원래 아침은 밥맛이 없고 입안이 껄끄러워서 먹긴 먹어도 맛으로 먹지 않는데 아주 맛있게 먹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훌륭한 한 끼의 식사였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달리는 버스 차창가로 밖을 내다보니 언제 세월이 갔는지 벼들이 벌써 다 피고 간간이 고개를 숙인 벼들도 눈에 띄었다. 남쪽으로 내려가니 수수에 망을 씌워 새들이 수수를 따먹지 못하게 한 모습도 보였다. 이렇게 계절이 바뀌고 세월이 간다는 것은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봄이 되어 꽃이 피고, 여름이 되니 무덥다. 무더위 속에 식물이 자라서 계절이 가을의 문턱이라는 입추가 되니 열매를 맺거나 맺을 준비를 하는 식물들이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을 넉넉하게 해준다.
서울을 출발한 지 5시간이 다 되어서야 사천에 있는 백천사에 도착했다. 백천사는 신라 문무왕 때 의선대사가 창건하여 소실되었다가 그 후 증·개축을 하여 지금에 이른다. 백천사에는 우보살(牛菩薩)이라는 소가 있는데 원래 소가 울면 ‘음매’하고 울어야 되지만 이 소는 어찌된 셈인지 우는 소리가 꼭 “통,통,통” 목탁 두드리는 소리를 낸다고 하여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암소를 보기위해 백천사로 구름처럼 관람객이 몰려들었다는 얘기가 있다. 실제 이 암소의 울음소리를 직접 들어봤는데 목탁 두드리는 소리와 흡사했다. 백천사에서 또 눈여겨볼 만한 것은 동으로 된 부처가 법당에 있는 것이 아니고, 밖에 있다는 것이다. 법당 안에는 동양 최대의 와불이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 다른 절에 비해 특이하다. 한 바퀴 돌아 나올 때 우측에는 납골당을 대단히 크게 신축하고 있었고, 좌측으로는 잘 가꾸어진 잔디 위로 가족 납골묘가 질서정연하게 자리를 잡고 있어서 보기가 좋았다.
점심식사를 먹고서는 창선-삼천포 대교를 건너 남해로 이동했다. 이 창선대교는 3개의 섬을 크고 작은 다리로 연결하여 삼천포와 남해를 이어주는 주요통로이기도 하다. 그런데다가 다리를 아치 형태로 아름답게 꾸며놓아서 보는 이로 하여금 즐거움을 주는가하면 멀리까지 입소문이 나서 이제는 명물이 되어 남해와 삼천포에서 자랑거리가 되었다. 특히 야간에 보면 여러 조명시설에 전깃불이 들어와 딴 나라에 온 착각이 들 정도다. 전 세계의 다리 중에 가장 아름답다는 호주 시드니에 있는 ‘하버브릿지’에 못지않게 창선대교도 어둠속에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남해는 2011년 12월에 카페 동호회원들하고 가서 이틀 동안 숙식을 같이 하며 남해 바래길을 걸어서 공룡발자국도 보고, 고사리 밭 가운데로 나있는 샛길과 파란 마늘 밭 옆 소로를 따라 걸어 몽돌해변 길을 거쳐 암수바위가 있는 다랭이 마을까지 여기저기를 걸으며 남해의 정취를 느껴 보았다. 그러고 나서 꼭 6년이 지나 여름휴가라기보다 여행을 남도(南島)에 와서 마누라와 같이 보내고 있다. 남도 여행 중에 백미(白眉)라고 하는 남해의 ‘보리암’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보리암은 신라 신문왕 3년에 원효가 초당을 짓고 수도하면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한 후 산 이름을 보광산이라고 하고 절 이름을 보광사라 하였다. 그 후 이성계가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하고 조선을 창업한 것을 감사하게 여겨 금산으로 개명하였다. 조선 현종 1년에 보광사를 보리암으로 절 이름을 바꿔 지금에 이른다. 보리암을 가기 위해서는 남해 금산방향으로 삼천포대교에서 출발하여 차로 30여분 걸려 보리암 올라가는 주차장에 도착한다. 다시 주차장에서 보리암 입구까지 오가는 셔틀버스로 바꿔 타야한다. 거리는 4km이지만 요금은 2천원이다. 걸리는 시간은 10분 안팎이다. 셔틀버스에 내려서도 오르막길을 10여분 걸으면 보리암과 금산 정상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여기서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보리암이고, 우측 길로 10분 가까이 바위와 대나무 숲길을 걸어 올라가면 681m의 남해 금산 정상이 있다. 남해 보리암은 해수관음성지인 양양낙산사, 강화보문사, 여수향일암과 더불어 우리나라 4대 해수관음성지 중 으뜸으로 꼽을 만큼 경관이 수려하다. 절 뒤쪽으로는 능선을 따라 큼직한 바위들이 치솟아 앉아 있어 절을 보호해주는 느낌과 미륵 등 뒤에 있는 능선의 바위가 마치 미륵에게 힘과 기를 불어넣는 듯하여 안정감과 편안함이 충만해 보였다. 날씨가 좋았다면 보리암에서 바다와 마을로 이어지는 좋은 경치를 내려다볼 수 있었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아쉽다.
보리암 주차장에서 자동차로 30여분 이동하여 ‘독일마을’에 도착했다. 독일마을은 우리가 못 살던 시대에 형과 누나들이 서독으로 간호사로, 광부로 돈벌러갔던 분들이다. 이 분들이 나이 들어 내 나라, 내 부모형제를 그리워하는 것을 보고 남해군청에서 고국으로 돌아와 살게끔 터를 잡아줘 이렇게 아름다운 서구풍의 마을이 형성된 것이다. 이 분들이 있었기에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초석이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분들께 고마운 마음은 늘 갖고 있었으나 이렇게 뒤늦게 독일마을에 와서 고마운 마음을 전하게 되었다. 오래 전 어렸을 때 우리 동네에서도 나보다 나이가 세 살 많은 누님친구가 파독 간호사로 가기도 해서 붉은 지붕을 내려보면서 그 누님 생각을 했다.
이 여행은 원래 ‘맛 여행’으로 올에이 여행사에서 특별하게 내놓은 대표적 여행상품이다. 점심을 시내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한적한 시골집 같은데 가서 돌솥 밥을 먹었다. 반찬 하나하나에 정성을 쏟아 부은 흔적이 엿보였다. 저녁식사는 해산물요리이다. 독일마을에서 나오다 얼마 가지 않아 우측으로 2층 식당인 ‘한국관’이 나온다. 필자도 이집은 처음 갔는데도 도저히 칭찬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맛집으로 올려놓아도 조금도 손색이 없을뿐더러 갑남을녀 어느 누구와 같이 간다고 해도 잘 먹었다는 말이 저절로 나올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특히 식사 전 유자 막걸리로 목을 축이니 그 시원함과 달달함이 입맛을 돋우었다. 아이템은 전복세트요리인데 회도 나오고, 초밥도 있고, 전복죽 등 다양한 음식을 접할 수가 있다. 여행은 먹는 즐거움이 있어야 여행의 즐거움이 배가 된다.
밤이 되었다. 굵은 빗방울이 떨어진다. 육지 쪽으로는 많은 비가 내려 그동안 있었던 가뭄이 해결되었는데 여기 남해는 가뭄이 끝이 나지 않았다. 저수지 저수율이 20%도 안 될 만큼 바닥을 훤히 드러내놓고 있다. 욕심이지만 우리가 여행하는 동안에는 날씨가 좋았으면 했는데 여기에 와 보니 우리의 기대가 얼마나 잘 못된 것인지 금방 알 수 있었다. 삼천포-창선대교의 멋진 밤풍경을 보지 못하더라도 비는 더 내려야 했다. 비 내리는 밤! 하늘에서 별을 보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별을 볼 수 없다. 하늘에서 보이지 않는 별을 찾는 것보다 “아예 별을 따자.” 별을 따서 나와 나의 마누라가 나누어 가지면 그 또한 여행이 가져다준 최고의 선물이고 축복이지 않겠는가. 삼천포의 밤은 내리는 빗소리와 함께 깊어만 갔다.
‘여행은 부지런해야 다닌다’는 얘기를 앞에서 했다. 04시 40분에 콜전화가 울렸다.
아침식사를 위해서 백반집을 찾아가는데 비가 계속 내려서인지 옆에다 놔두고 찾지 못하고 큰 버스를 끌고 작은 뒷길을 계속 맴돌았다. 두 바퀴 반을 돌고서야 간신히 찾아서 삼천포에서의 아침식사를 했다. 맛집을 개발해야하는 여행사의 입장에서 보면 새로운 고객의 창출과 기존고객의 유치를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서 뭐라고 하지는 않겠으나 여행사측에서 좀더 준비된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렵게 찾은 식당에서 시원하게 끓인 황태국으로 숙취를 달래고, 짭잘한 반찬이 금세 밥 한 공기를 비웠다. 남해의 맛 기행은 끝이 없이 이어졌다.
사량도를 가기위해 삼천포항으로 이동했다. 삼천포에서 사량도까지는 약 40분 걸리고 뱃삯은 5천원이다. 사랑도의 면적은 26.784㎢이고, 인구는 약 2천여 명이 살고 있다. 사량도는 상도, 하도, 수우도 등 3개 섬으로 이루어졌으며 상도와 하도를 연결하는 다리가 놓여져 배로 왕래했던 불편함을 해소했다. 사량도의 상도는 대체로 등산이나 트레킹코스로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 반면에 하도는 낚시꾼들이 많이 찾는다. 남도(南島) 중에서 사량도를 주말에는 5천 명 정도가 찾는다고 하니 아름다운 섬으로 소문이 나기도 했지만, 실제로 가볼만 한 섬임에는 틀림없다.
사량도에서의 등산코스로는 100대 명산이 포함되어 있는 지리망산이 들어가야할 것이다. 사량도 선착장을 출발하여 옥녀봉(303m)▶불모산(400m)▶지리망산(398m)▶돈지마을로 내려오면 총 7.6km 거리이고, 시간적으로는 약 4시간 반이 소요된다. 사량도에 오면 누구나 옥녀봉으로 해서 구름다리를 건너 지리망산이 있는 정상을 갔다 오길 바란다. 그렇지만 모든 것이 늘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삼천포에서 사량도를 가는 동안에 비 때문에 옥녀봉으로 가는 등산이 취소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삼천포항을 출발할 때만해도 잠시 멈췄던 비가 삼천포화력발전소 앞을 지날 때 빗방울이 떨어지더니 이내 강한 바람과 함께 많은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사량도에 도착해서는 빗 때문에 등산은 엄두도 못 냈다. 우리는 옥녀봉 트레킹코스를 포기하고 상도와 하도를 버스로 투어하는데 만족해야 했다. 비가 잠시 뜸할 때 사량면사무소 앞에서 상도와 하도를 잇는 다리 위에 운무에 덮인 풍경을 배경으로 사진 한 장 남긴 것이 전부였다.
사량도는 분명히 많은 사람들이 찾는 아름다운 섬이다. 아름다운 섬인데도 우리는 사량도의 겉모습만 보고 가게 되어 짙은 아쉬움이 남았다. 사량도에서 아쉬움을 뒤로 한 채 고성의 공룡박물관으로 이동했다. 공룡박물관은 경남 고성군 하이면 자란만로 618에 있다. 지금은 생물로서 볼 수 없는 동물을 화석으로 남아 있는 것을 복원하여 거의 비슷한 모형으로 만들어 진열해 놓았다. 아이들이 보면 호기심을 해소하고, 이 세상에서 없어진 공룡에 대한 상상력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내 손자들이 조금 더 커서 여행할 기회가 되어 여기를 온다면 많이 좋아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여행은 하지 않는 것보다 하는 것이 낫다. 여행을 통하여 견문을 넓히고, 지식을 쌓고, 휴식을 취한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때로는 고단함과 비용이 든다. 그래도 다리에 힘이 있을 때 부지런히 다녀야 되지 않겠는가.
우리의 여행을 위해 불철주야 고생하신 기사님과 박식한 여행지식으로 유창하게 여행안내를 해주신 가이드 선생께도 고맙다는 인사말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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