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행복한 사람’을 불렀던 조동진 가수가 이 세상을 떠났다. 그 가수가 3년 전에 마누라를 앞세워 보냈고, 본인도 앞서 간 마누라를 뒤따라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먼 길을 떠났다.
우리와 동시대를 살아갔는데도 때로는 낯설기도 했다. 나이는 나보다 서너 살 위지만 ‘행복한 사람’을 부를 때만해도 그 누구도 그를 알지 못했다. 고 조동진 가수는 자기보다 앞서 간 선배한테는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 잘 몰라도 후배는 극진히 챙겼던 것 같다. 왜냐하면 본인이 죽고 나서 많은 후배들이 구름처럼 몰려든 걸 보면 그 사람이 살아생전에 어떻게 살았는가를 가늠할 수가 있다. 이런 말이 있다. “사람이 죽으면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가 죽으면 가죽을 남긴다.”고 한 이 말은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은 느낄 수가 없고, 죽어서야 남들이 평가를 해주고 알아주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든다.
그리고 고인이 제주도에 가서 살 때도 외롭게 살았던 것 같다. 그건 마누라를 나이가 70이 가까워서 먼저 떠나보내야 했으니 오죽 마음이 쓰렸겠는가. 그걸 꾹 참고 감내하려니 몹쓸 병이 걸렸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마누라가 죽고 나서 누구하고 대화할 사람도 없고, 그렇다고 젊었을 때처럼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도 아니고....지난한 시간을 혼자 보냈을 것이다. 그래서 그 가수가 더 가엽고 안타깝게 느껴진다. 아무튼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우리 인간은 언젠가는 다들 죽는다. 그래서 죽는 거가 크게 무서워하거나 아쉬움이 많이는 없다. 다만, 살아있는 동안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기를 바라지만, 그게 사람의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어서 고민이다.
사람이 죽으면 또한 새 생명이 태어난다. 이렇게 인류의 역사가 반복되고 있다. 우리가 나이가 먹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 커가는 손자들을 통하여 느낀다. 손자가 있기 전까지만 해도 내가 나이 들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오늘은 만 세 살이 안 된 나의 손자를 데리고, 어린이 놀이터로 해서 편의점을 거쳐 비산 이마트점 앞에 있는 라바 타는 곳을 경유하여 세차하는데를 들렀다가 안양천의 물고기와 오리들, 그리고 비둘기들이 공존하는 냇가로 이동하여 물고기 밥을 주고 조금 전에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 보니 분당 사는 나의 작은 아들과 작은 며느리가 와 있었고, 큰아들은 손자를 데리러 조금 전에 왔다고 한다.
이런 것이 사람 사는 것이 아닌가. 쉬는 날 나의 식솔들이 내 집으로 와서 머리를 맞대고 밥을 먹는 것이 사람 사는 모습이라고 본다. 이런 것들이 나이 먹어가면서 느껴보는 행복이지 않겠는가.
지난 한 주, 고 조동진 가수의 별세로 인해 우울했던 마음이 오늘 아들, 손자들을 통하여 삶의 즐거움을 누렸다. 감사한 마음으로 주말 밤을 보내고 있다. 아름다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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