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새벽 4시를 막 넘긴 시간에 내 핸드폰으로 전화벨이 울리었다. 한 시간 전에 갑자기 제수씨가 운명을 했다는 부산 사는 막내아우의 다급하면서도 힘없는 목소리였다. 며칠 전 병원 측으로부터 퇴원을 해도 된다는 얘기를 듣고 집안에서 환자를 돌보기 위해 각종 의료기구를 들여다 놓은 상태에서 갑자기 운명을 하다 보니 동생은 물론이고 제수씨 친정 동생들도 꽤나 놀란 모양이었다.
그래서 우리 내외와 나의 두 아들은 김포에 가서 비행기로 내려갔고, 오후가 되자 속속 우리 식구들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젊은 친구들이야 직장을 다니다 보니 다들 바빠서 저녁 늦게까지 있다가 올라가고 우리 내외는 오늘 장례를 다 치루고, 절에다가 납골로 봉안하는 것까지 보고 조금 전에 올라와서 지금 막 저녁식사를 했다.
제수씨는 오래 전부터 당뇨로 고생을 했었는데 2년 전에 '소뇌위축증'이라는 희귀병 진단을 받아 투병 중에 왼쪽 다리를 절단하는 등 병마와 사투를 했었다. 지난해 봄에는 늘 가까이서 돌봐주시던 친정어머니를 여의더니 불운이 겹쳐서 올봄에는 맏딸인 제수씨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아주 먼 길을 떠나갔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힘들게 어머니를 도와 어린 동생들을 남부럽지 않게 키우느라고 많은 고생을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러다보니 자신을 돌보는 데는 소홀했을 거로 본다. 좀 더 건강을 챙겼어야 했다. 60세도 못 살고 세상을 버리는 제수씨도 불쌍하지만 동생은 그렇다 쳐도 한명인 아들 하나를 결혼도 안 시키고 그렇게 서둘러 그 길을 떠났어야 했는지 묻고 싶기도 하다.
넉넉하지 못한 고령신씨 집안으로 시집와 제수씨도 고생을 했으면서도 늘 밝은 모습으로 동생을 아껴주고, 시댁을 생각해주는 제수씨의 따뜻한 모습을 다시는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 그런가하면 가족을 잃은 슬픔이 컸을텐데 차분하게 장례를 준비하고 격식과 예의를 갖춰 문상객들을 맞이하는 동생의 처갓집 식구들, 특히 병직이 외삼촌과 이모들의 헌신적인 돌봐 주심이 없었다면 장례를 치루느라고 애를 먹거나 여러 가지로 어려웠을 텐데 사돈들 덕분에 큰 문제 없이 장례를 마쳤다. 너무도 고마웠다.
"비록 이 세상에서는 아프고 고단한 삶을 사셨더라도 부디 저 세상에 가셔서는 아프지 마시고, 건강하게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시숙(媤叔)이 제수(弟嫂)씨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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