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제주를 가다

강일형(본명:신성호) 2011. 3. 21. 11:11

 

 

 

 

 

 

 

 

 

 

 

 

 

 

 

 

 

 

 

 

 

 

 

 

 

 

 

 

 

우리가 김포에서 아침 7시 55분에 제주로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려면 안양에서 적어도 6시에 집을 나서야 김포에 도착해서 한숨 돌린 후 짐도 부치고 티켓팅도 서둘지 않고 할 수가 있다. 친구가 전철을 타고 가자고 해서 전철을 탔는데 평일인데도 무슨 사람들이 그리 많은지 앉을 자리가 없다. 꼬박 서서 가다가 신길에서 공항 가는 전철을 바꿔 탔더니 다소 자리도 있고, 그리고 편안하게 친구하고 얘기도 하면서 갈 수 있었다.


우리를 태운 비행기는 7시 55분 정각에 출발을 했다. 활주로에 가서 대기하는 시간이 다소 있었지만, 하늘에만 오르면 제주까지 불과 3-40분이면 날아가지 않는가. 제주 국제공항에 도착하니 9시 10분전쯤 되었다. 공항을 빠져나오니 중문가는 리무진 버스가 바로 대기하고 있었다. 중문까지는 한참을 달렸다. 바다도 보고 또 제주의 돌담도 보면서 40분은 족히 간듯하다. 버스에서 내리니 바로 앞이 풍림리조트였다. 들어가자마자 여장을 풀고 호텔 앞부터 걷기 시작했다.


그 길이 제주 올레길 7코스 중간부분이다. 풍림리조트 앞개울에는 제주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개울물이 제법 많이 흘러내리고 있었고, 수령이 10여년 남짓 되어 보이는 소나무가 우리가 걷는 길가로 꽉 채워져 있어서 우선 보기가 좋았다. 올레길을 얼마 걷지 않아 바다로 이어지는데 가는 날이 장날인지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강한 바람이 불어온다. 앞으로 나가기조차 힘들 지경이다. 아무리 바람, 여자, 돌이 많다는 삼다도라고 하지만 이렇게 혹독한 시련을 줘야 하는지 첫날부터 단단히 신고를 하는 듯 했다. 그래도 해안가 따라 노랗게 피어있는 유채꽃밭, 제주 어디를 가도 쉽게 볼 수 있는 붉게 핀 동백꽃, 하얀가하면 그렇지도 않은 연분홍의 매화꽃, 길가엔 노란 민들레 등 봄이 한창인 것을 여기저기서 보고 느꼈다.


우리는 해변을 따라 걷다가 마침 간이식당을 만나 제주 막걸리로 목을 축이고, 잔치국수로 요기를 했다. 아침을 먹지 못하고  나온 탓에 시장하던 참이었다. 막걸리 한잔과 잔치국수 한 그릇으로 허기를 달랜 후 바람과 돌이 많은 바닷가를 또 걷기 시작했다. 강정포구를 걸쳐 월평포구에 도달하니 작은 배 몇 척이 물위에 떠 있다. 거길 지나 언덕을 올라서니 왼쪽으로는 시원하게 멀리까지 내려다볼 수 있는 절벽의 바다가 펼쳐지고 오른 쪽 가까이는 노란 유채꽃 밭이, 유채꽃밭 너머로 소 몇 마리가 평화로이 풀을 뜯는 모습도 보이고, 그리 멀지 않아 보이는 한라산 정상부근에는  아직도 많은 눈으로 하얗게 뒤덮여 있다.


월평포구는 올레길 8코스가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다. 이 코스는 제주 올레코스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할 만큼 여기저기 볼 데가 많다. 전형적인 바닷길이지만 숨을 몰아쉬며 동산을 올라가는 산길도 있는가하면 냇가로 이어지는 개천 길도 있어 산, 바다, 내 등 여러 길을 걸어볼 수 있는 곳이 8코스이기도 하다.


경치가 좋은 언덕 모퉁이를 돌아서 조금 더 걸으니 굿당길이 나오는데 내려가는 길도 안 좋은데다가 음침해서 비가 내린다면 기분이 묘해질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가보니 굿당은 없었고, 큰 느티나무가 있었는데 그 나무에 울긋불긋 천을 묶어 놓은 걸 보니 거기서 무당이 굿을 하는 곳으로 짐작된다.


포장길을 따라 걷다보니 약천사가 길 오른쪽으로 눈에 들어왔다. 멀리서 봐도 절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가 있다. 약천사의 대적광전은 동양 최대일 정도로 큰 절이다. 둘러보고 갔으면 했지만 그렇지를 못했다. 큰 길에서 소로로 들어오니 크지 않은 밀감밭과 진초록의 마늘밭이 지친 우리에게 생기를 준다. 마늘잎이 바람에 흔들릴 정도로 제법 너펄너펄해져서 밑에 잎을 떼어내어 밀가루 반죽에 묻혀 밥할 때 쪄서 먹던 어머니가 해주신 마늘잎반찬이 생각이 났다. 그곳을 지나 20여분 해안길로  걸어 내려가면 크고 작은 용암바위들이 제각각 다른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했는데 여기가 대포포구이다.


대포포구에서 해안길을 따라 1시간 넘게 걷다보니 주상절리  들어가는 입구가 나오고, 2천 원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했다. 수풀길을 따라 들어가 보니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난간대 앞으로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고 멀지 않은 앞 바다에는 해녀들이 물질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바닷가 언덕 쪽으로 용암 기둥들이 큰 것은 큰 것대로 작은 것은 작은 것끼리 무리지어 있다. 바다와 돌기둥, 내가 제주에서 본 것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느꼈고, 이것 하나만으로도 제주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상절리를 머리에 잘 새겨놓은 뒤 위쪽으로 다시 올라오니 식당도 있고, 카페도 보였다. 길 널찍한 공간에는 쉴 수 있도록 의자와 탁자도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우리는 다시 차가 다니는 포장도로를 따라 걷다가 가게에서 밀감과 한라봉을 사서 까먹었다. 강한 바닷바람과 더불어 봄볕은 피부를 거칠게 하고, 젖은 땀이 식을 때쯤이면 으스스해진다. 이럴 때 감기를 예방하고 거친 피부를 달래주려면 충분한 수분 공급과 비타민 섭취는 필수적이다. 그래서 한 보따리 사서 까먹고 여분은 가방에 넣었다.  그렇게 가다 보니 높은 고가차로가 보이고, 오른 쪽 동산에는 붉은 동백꽃이 환하게 핀 가운데로 가파른 계단길이 나왔다. 바로 이 길이 베릿내오름이다. 숨을 헐떡거리며 산 능선을 따라서  얼마를 올라가니  제주 남쪽을 훤히 다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가 나왔다. 우리는 소나무가 울창한 소나무 숲을 빠져나와  베릿내오름을 내려와 고가도로 밑으로 흐르는 개천의 징검다리를 건넜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작은 두더지 한 마리를 봤다. 쌀쌀한 날씨에다 햇볕이 강해서인지 힘이 없어 보였고, 잘 움직이질 못했다.


우리 일행은 해변 둑길에서 바닷길로 내려갔다. 내려 간곳에는 군데군데 아줌마들이 멍게와 해삼을 놓고 팔고 있었다. 해삼 한 마리 잡아 소주 한 잔 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으나 친구들이 소주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그냥 지나쳐야 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듯이 많이 먹어서가 맛이 아니라 출렁거리는 바다와 흰 백사장을 보며 소주 한 잔 기울인다고 생각해보라 축 처진 기분이 올라오지 않겠는가. 걷는 즐거움도 있지만, 먹는 즐거움 또한 무시해선 안된다. 그런 부분이 소홀했다.


거길 지나니 길이가 수백 미터 되는 중문해수욕장이 나왔다. 바람이 강하게 불어올 때는 얼굴에 모래가 날려 따끔따끔했다. 언덕까지도 많은 모래가 쌓여 있는 걸 보면 오늘처럼은 아니더라도 늘 강한 바람은 부는 듯 했다. 모래 색깔은 어떻게 보면 검으면서 희기도 하고 또 붉기도 했다. 발이 빠져 모래사장을 걷는데도 쉽지가 않았다. 중문색달해변을 지나서 하얏트 호텔 언덕 위로 올라서니 바다 멀리까지 시원스레 다 보였다.


하얏트 호텔 앞길을 지나 해안 길로 다시 내려가니 십수미터 되는 절벽 밑으로 길이 나있다. 이 길을 ‘갯깎’이라고 한다. 이 길을 통과해 얼마 안가 해병대길이 나왔다. 해병대 길은 원래 해녀들이 다니던 길을 일반 사람들이 다닐 수 있게 해병대 도움이 있었다고 하여 해병대 길로 통한다. 그렇다고 길이 좋은 것은 아니다. 바위와 돌이 많아서 걷기가 불편할 뿐만 아니라 잠시라도 한 눈 팔다가는 다칠 수도 있는 길이 거기다. 그리고 비가 온다거나 파도가 세게 치면 그 길로 갈 수가 없고 우회를 해야 한다고 한다. 길이 울퉁불퉁하여 한참을 절룩거리며 걷다 보니 날이 저물었다. 색달하수종말 처리장을 지나 열리해안길에서 부득이 도보를 마쳐야 했다.


버스 타는 데까지는 수km를 물어물어 걸어갔다.


이튿날 아침이다. 아침을 먹고는 랜트카 편으로 한라산 등반에 나섰다. 한라산은 1,950m이고, 우리나라에서는 백두산에 이어 두 번째 높은 산이다. 여기는 이렇게 꽃이 피고 봄이 왔는데 한라산 정상은 아직도 흰눈으로 덮여 있다.


차를 빌려서 풍림리조트까지 오는 시간이 걸리다 보니 예상보다 늦은 시간에 출발을 했다. 우리가 성판악 탐방안내소에 도착하여 휴게소에서 김밥 한 줄씩을 사들고 출발한 시간이 12시 10 분전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걷기 시작한 지 채 30분도 안되어 눈이 조금씩 보이더니 이제는 산 전체가 하얗게 눈이 쌓여 있다. 산 정상부분에만 눈이 있는지 알고 아이젠을 갖고 와서도 챙기지 않았더니 큰 낭패가 아닌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온통 더 많은 눈으로 덮여 있다.


우리 일행은 가 보는 데까지 가기로 하고 눈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원래 12시 반전에 진달래대피소를 통과해야 한라산 정상에 올라갈 수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욕심 안 부리고 올라가고 있는 것이다. 산에 올라갈수록 기온은 떨어지고 바람은 세차게 불어댄다. 그런데도 눈 쌓인 산속에서 노닐고 있는 사슴을 몇 번 보았다. 또한 올라가는 내내 들리던 맑은 새소리가 내 귓전에 아직도 들리는 듯 하다.


속밭대피소에 도착하여 쉬면서 우리는 가지고 갔던 김밥을 먹었다. 여기까지 보통사람들은 1시간 20분이면 오는 거리를 천천히 올라온 탓도 있겠지만, 또 눈도 많이 쌓여서 20분 이상 더 걸렸다. 점심을 먹고는 바로 출발했다. 앞만 보고 부지런히 걸었다. 길이 미끄럽다 보니 속도는 나지 않았다. 그렇게 한 시간 가까이 걸으니 백록담 가는 길과 사라오름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왔다.


사라오름으로 가는 길은 절벽같은 길에 사람이 밟고 지나간 발자국이 그대로 얼어붙어 있어 한 발작씩 뗄 때마다 여간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런 길을 10여분 올라가니 축구장만한 호수가 나왔다. 물은 얼음에 덮여 있고, 여기저기 나있는 물구멍에서 숨을 쉬는 듯 작은 물결이 인다. 그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산으로 오르니 서귀포까지 남쪽 바다가 훤히 다 내려다보였다. 여기가 해발 1,324m의 사라오름 전망대이다. 추웠다. 워낙 바람이 세게 불어서 몸 하나도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하산을 서둘렀다.


온 길을 부지런히 걸었다. 눈이 쌓여 있지만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이다 보니 얼을 새가 없었는지 푸석거린다. 그래서 걷기는 그런대로 괜찮았다. 더구나 돌로 된 길인데도 덮인 눈으로 울퉁불퉁한 부분이 눈에 파묻혀 평소보다 내려오는데 훨씬 부담이 덜 되었다. 속도를 많이 냈는지 내려오는 데는 불과 한 시간 남짓 걸려서 성판악에 도착했다.


우리는 백록담에 오르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5.16도로를 타고 성산 일출봉 쪽으로 가다 보면 민속마을이 있는데 거길 들렀다. 평일이고 날씨가 춥고 바람이 많이 불어서인지 어디를 가도 썰렁하다. 해는 지고 저녁때가  되어 여기저기 식당을 기웃거려 보지만 어디 손님들이 있는 집이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손님이 없는 집인데도 들어가 식사를 시켜놓으니 대여섯 명이 더 들어왔다. 제주 흑 돼지 주물럭을 먹었지만 가격만 비싸지 맛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삼일 째를 맞는다. 오늘은 아침을 먹고는 ‘건강과 성박물관’을 들렀다. 전에 제주를 왔을 때 직장동료들과 같이 들렀던 곳과는 차이가 좀 있는 듯 했다. 그곳은 주로 나무로 남자 거시기를 조각해 놓았는가 하면 여기는 주로 돌로 많이 조각해 놓았다. 실내로 들어가서 여기저기 인간의 성문화를 둘러보았다. 성, 거시기! 이렇게만 불러도 기분이 좋고, 설레이게 하는 말 아닌가. 이건 동서고금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고, 그래야 된다. 인류역사가 지속되는 한 성은 늘 인간 가까이서 때로는 즐거움을 주기도 하고, 고통을 주기도 하며 어느 때는 고단함을 주는 등 여러 형태로 다가온다. 둘러본 것 중 ‘첫날밤 훔쳐보기’는 옛날 어렸을 때 형님들 장가갈 때 문종이가 찢어진 걸 생각나게 했다.


올레 16코스는 고내포구에서 시작해 광령 1리까지 18km의 긴 거리를 걸어야 한다.

비릿한 바다냄새와 산과 들에서 불어오는 봄의 꽃향기를 동시에 느껴볼 수 있는 코스이기도 하다. 이미 7,8코스를 걸어봐서 고내에서 출발해 신영을 걸쳐 구엄포구까지 걷는 길이 다소 단조롭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마을이 틀리고, 걷는 길이 다 다르다.


널찍한 소금빌레(밭)가 있는 구엄포구를 지나면 올레길은 바다에서 멀어지고  마을과 들을 걸쳐 산으로 이어진다. 수산봉을 돌다보면 400여년 된 큰 곰솔을 만나게 되는데 이젠 힘이 부치는지 지지대가 보인다. 수산저수지 둑방길을 따라 3-40분 걷게 되면 예원동 복지회관에 다다른다. 도로 공사장을 지나 포장된 도로를 가로지르면 700여년  전 고려의 김통정 장군이 토성에서 바위로 내려뛰니 발자국에 바위가 패여 샘이 되었다는 ‘장수물’이 나오고, 길 양쪽으로 소나무가 빡빡한 작은 산길을 따라 약 2km 정도 올라가면 삼별초가 최후까지 대몽항전을 벌이던 항파두리 항몽유적지가 나온다. 잠시 토성 앞에서 쉬면서 조국을 위해 끝까지 목숨 바친 이름 모를 병사들을 생각해 보았다.


항파두리를 돌아 나와 약간의 내리막길을 지나면 십수 년 된 소나무길인 고성숲길로 이어진다. 솔향기가 그윽한 숲길은 크지 않은 고성천 옆으로 나있는 작은 포장도로와 만나서 조금 걷다가 다시 산길로 이어져 4-50분을 걷다보면 청화마을이 나온다. 여기 집 가까이에는 귤나무가 자주 눈에 뜨이고, 밀감을 따지 않고 그대로 방치한 밀감나무도 꽤 많았다. 마을과 언덕길을 따라 내려가니 크지 않고 화려하지도 않은 향림사 절이 나왔다. 향림사 절을 지나 버스가 다니는 포장도로를 건너 작은 동산으로 이어지는 산길을 올라가서 얼마 가지 않아 광령초등학교 운동장 끝에 예닐곱 되는 애들이 놀고 있는 모습이 보이고, 곧 올레16코스의 종점인 광령1리 사무소가 나왔다.


우리는 제주도에 와서 많은 것을 보며 걸었다. 나는 제주도를 너댓번 와 보았지만 이번처럼 비록 일부분이긴 하더라도 세세히 보지는 못했다. 이번에 제주도에 와서  이렇게 올레길을 통하여 제주도를 다시 인식하게 되어 기쁘다. 다만, 아직도 올레길에 대한 정확한 자료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각 코스의 거리라든가, 출발점과 끝나는 지점이 자료마다 들쭉날쭉 한데 통일되고 일관성이 있는 자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제주에 와서 별 탈 없이 걷고, 오르며, 보고 가게 되어 천만 다행이고 기분 또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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