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먹고는 장거리 여정에 올랐다. 비는 많이 오다가도 적게 내리고 우산을 쓰면 또 거추장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감질나게 비가 온다. 버스를 타고 몇 시간을 달려 온 곳이 벨기에 브뤼셀이다. 벨기에 인구는 약 1,040만 명이고, 수도 브뤼셀에는 약 100만 명이 살고 있다. 입헌군주제국가이고 크기는 우리나라 경상도만 하다고 보면 된다.
브뤼셀 중심에 있는 그랑플라스를 빼놓을 수가 없다. 이 지역의 사회, 문화를 특징짓는 건축물, 특히 유럽 중상주의 도시전성기를 대표할 수 있는 시청사, 왕의 집, 길드하우스 등 고딕과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이 많이 들어서 있다. 광장 바닥에는 돌로 포장이 되어 있어서 도시건물과 잘 조화를 이룬다. 그 외에 들른 곳이 고딕양식의 생미셀대성당과 18세기의 왕궁을 둘러보고 오줌싸게동상이 있는데도 가보았다. 그랑플라스는 1998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 되었다. 거기서 10여분 걷게 되면 브뤼셀 공원이 있다. 옛날의 왕실 사냥터였는데 현재는 공원으로 사용하고 있다. 왕립미술관 뒤 왕궁을 중심으로 넓게 펼쳐져 있다.
우리는 브뤼셀에서 약 90km 떨어진 브뤼헤로 이동했다. 시내 거리 양쪽으로 늘어선 높지 않은 고딕양식의 건물들은 그 어느 도시에서 볼 수 없는 고풍스런 멋을 느끼게 한다. 마치 내가 중세시대로 거슬러 올라와 한 거리를 걷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브뤼헤는 인구 11만 명의 작은 도시이지만 12세기에서 15세기 전성시대에 고딕양식으로 지은 건물들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서 브뤼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브뤼헤에서 가장 중심인 마르크트 광장에 가보면 중앙에 14세기초 벨기에 영웅 얀브레이텔과 피터데코닌크 조각상이 눈에 들어오고, 광장 남쪽에 88m높이의 중세 건축물인 종루가 있다. 13세기에 시공하여 200년을 걸쳐 완성했다고 한다. 그 옆에는 브뤼헤의 시청사가 있다. 내부로 들어가니 브뤼헤의 역사와 중요한 사건을 그려놓은 벽화와 화려한 천장 장식이 돋보인다. 시청 옆에는 그리스도의 성혈을 모셔놓은 바실리크 성당이 있다. 브뤼헤를 대표하는 건축물 중 하나로 손꼽히는 성모마리아교회를 찾아가 보았다. 이 교회는 노트르담교회라고도 하는데 교회박물관으로 더 유명하다. 13세기 중반에 시작하여 15세기 말까지 200여년이 걸려 완성했으며 건축양식은 후기 르네상스부터 프랑스 고딕스타일까지 여러 양식이 혼합되었고, 122m의 첨탑이 자랑스럽게 하늘로 올라가 있다. 교회 안에는 미켈란젤로의 미완성작품인 “성모자상”이 보인다.
브뤼헤는 벨기에 북쪽이고 북해가 멀지 않아서인지 많은 수로가 연결되어 있다. 도시 규모가 작아서 걸어서도 얼마든지 관광을 할 수 있는데도 유람선을 타고 여기저기를 둘러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가 있다.
벨기에의 여행, 참으로 잘 왔다는 생각이 든다. 세계 어느 나라, 어느 도시를 가도 이처럼 4-500여년 된 도시 그대로의 모습을 어떻게 볼 수가 있겠는가. 건물 하나하나가 정성이 들어갔고, 보존상태도 양호하여 마치 중세도시에 타임캡슐을 타고 온 기분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중세도시를 볼 수 있도록 보존을 잘 해준 벨기에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다.
우리는 벨기에를 떠나 물과 풍차의 도시, 튜울립의 나라 네델란드로 가고 있다. 크고 작은 수로가 수백 개가 되고, 네델란드를 구성하고 있는 섬들이 수십여 개가 된다. 전체 인구는 약 1,700만 명 정도 되고, 크기는 한반도의 5분의 1 정도 되는 작은 나라이다. 지형 상 국토의 25%가 바다보다 낮다고 한다.
우리가 가는 암스테르담은 13세기 강 하구를 막아서 사람들이 모여살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약 80만 명이 살고 있다. 도시 4분이 1이 물로 채워진 수도 암스테르담에는 150개가 넘는 운하가 있다. 암스테르담에 도착하여 저녁을 먹고는 중앙역 쇼핑센타에 들러 장을 보면서 암스테르담의 물가를 접해보았다. 그리고 깜깜한 광장으로 이동해 우리가 암스테르담에 와 있다는 것을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었는데 2월 중순을 막 넘어 하순 초입이다 보니 날씨가 추워서 오가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우리는 다시 광장을 떠나 수로를 따라 올라오다가 그리 크지 않은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호텔방은 옆에 수로가 있어서 그런지 눅눅한 것 같고, 방은 얼마나 썰렁한지 입고 있는 옷을 벗기조차 싫을 정도였다. 왜? 그렇게 추웠는지 지금도 궁금하다.
아침을 호텔에서 준비한 식당에서 빵과 우유, 주스 등으로 식사를 하고는 다른 사람들 보다 조금 더 일찍 나와 보니 바로 호텔 주위가 온통 물로 가득하다. 어제 춥고 방이 눅눅한 것이 이 물 때문 이었는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꼭 그것만은 아닌 듯 했다.
운하의 도시, 암스테르담 관광을 나섰다. 어디를 가든지 쉽게 물을 만난다. 물 옆으로는 차도와 인도가 별도로 나있다. 유럽을 여행하면서 제일 많이 본 것이 성당이다. 어느 나라를 가든지 성당은 여행의 필수 코스가 되었고, 여기서도 성당을 빼놓을 수가 없었는지 암스테르담성당을 처음으로 찾았다. 그리고 운하 옆으로 길을 따라 얼마 안가 빈센트 반 고흐 미술관이 나왔다. 네델란드에서 반 고흐, 램브란트, 몬드리안 등 세계적인 화가를 배출했는데 반고흐는 장수를 못하고 37세 나이로 생을 마감하면서도 많은 작품을 남겼다. 동생이 700여점을 보관을 하고 있다가 1973년에 미술관을 지면서 기증하게 되었다.
우리는 다시 버스에 올라서 40여분을 달려서 헤이그에 도착했다. 헤이그는 인구 약 50만 명 되는 정치중심의 도시이다. 헤이그는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와 인연이 깊다. 1907년 이곳에서 만국평화회의가 열릴 때 고종황제의 밀지를 받고 일본침략의 부당성을 알리려 왔다가 영국과 일본이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하자 이준 열사가 자결한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조그만 건물에 기념관을 두어 그 뜻을 기리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국제사법재판소가 근엄한 모습으로 서 있다.
점심은 헤이그에서 5km 정도 떨어진 스헤베닝겐 바닷가 식당에서 시원스레 펼쳐진 북해를 바라보며 점심 식사를 했다. 점심을 먹고는 고운 모래가 깔려있는 해변을 거닐어 보았다. 저 아래 바다 건너는 영국이 있을 거 같고, 북쪽 바다 위쪽으로는 덴마크가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한참을 걸었다. 간간히 바람이 강하게 불어오기도 했지만 그렇게 차갑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우리는 다시 암스테르담으로 들어가다가 풍차가 있는 잔센스칸스로 가서 풍차를 만나 보았다. 크기도 엄청 클 뿐만 아니라 여러 대가 같이 있었다. 옛날에는 풍차가 수백 개가 있었지만, 산업화의 영향으로 풍차대신 기계로 대신하다 보니 이렇게 몇 대만 남아 관광용으로 명맥을 유지한다고 한다. 참, 여기를 오기 전에 풍차마을에서 가까운 치즈공장을 들렀다. 공장에 들어가니 구수한 냄새가 우리를 맞이한다. 공장은 크지 않아서 우유로 치즈를 만드는 공정을 둘러보아도 그리 많은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그런 과정을 거쳐 생산된 완제품이 쌓여 있는걸 보고 직장 후배들이 생각나서 덩어리치즈 열개를 샀더니 얼마나 무겁고 갖고 다니는데 부담을 주는지 아주 애를 먹었다. 풍차와 같이 사진 몇 장 찍으니 바로 어둠이 찾아와 풍차 있는데서 더 지체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다시 시내로 들어와 암스테르담의 아름다운 밤 모습을 바라보며 저녁을 먹었다. 물의 나라 네델란드, 우리의 축구를 전 세계에 널리 알렸던 축구 감독 히딩크선생의 나라에서 이렇게 겨울밤을 보내고 있다.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만을 가보다 (0) | 2011.03.29 |
---|---|
제주를 가다 (0) | 2011.03.21 |
유럽을 가다 1편-독일, 룩셈브르크, 프랑스 (0) | 2011.03.09 |
동남아 4개국을 가다 (0) | 2011.03.05 |
그랜드캐니언을 가다 (0) | 2011.03.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