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후 들어 집을 나설 때는 아주 비장한 각오로 집을 나서야 했다. 왜냐하면 눈이 펑펑 쏟아지고 땅바닥은 젖어 있어 미끄러운 데다가 비옷도 챙겨야 했고, 빗물이 신발에 떨어져 스며들지 않도록 방수용 신발도 신어야 했다. 더구나 저녁이 되어 해가 떨어지고 어둠이 깔리면 더 추워져 광화문광장에서 적어도 대여섯 시간을 보내야 하는 나이든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단단한 각오 없이는 집을 나서는데 쉽지가 않았다. 그래도 늘 혼자 가는 것이 안쓰러웠는지 마누라가 이번 광화문 집회에는 같이 가자고 하니 여간 고마운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실제로 광화문광장에 와 보니 집 나설 때의 걱정은 기우였다. 내리던 눈이 진눈개비로 변하는가 싶더니 이내 그치고, 수십, 수백만의 인파가 빽빽이 모여서 품어낸 열기와 “박근혜는 물러나라”라는 함성의 열풍으로 광화문의 추위도 녹이고, 얼마 떨어지지 않은 청와대도 녹여 버리는 듯했다. 지난 12일과 19일에 이어 오늘까지 이 광화문광장을 세 번씩이나 노구의 몸으로 찾은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해도 해도 너무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지금이 봉건시대도 아니고, 걸어 다니면서 스마트폰으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세상물정을 다 알아볼 수 있는 21세기 대명천지에 살면서 왕조시대에도 없었던 그처럼 해괴한 섭정(攝政)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가 있었느냐는 것이다. 아무리 박 대통령을 좋은 방향으로 이해해주려고 노력해도 도저히 납득이 안 간다. 40년 지기, 50년 지기 다 좋다. 꼭 그런 방법으로 신세진 것을 보은해주어야 했는가. 검찰과 언론에 나온 걸 보면 국정 전반에 걸쳐 손 안댄 것이 없을 정도로 최순실의 손길과 입김이 닿았다. “박 대통령은 대답해 보시오. 아니라고 부정만 하시지 말고요. 뭐에 씌워져 그렇게 했는지...” 평범한 사람으로서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도저히 맨 정신으로 그럴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공과 사도 구분 못하는 대통령도 문제지만, 그를 둘러싼 청와대 비서를 포함한 장관과 총리 등 보좌진도 이번 ‘최순실사건‘과 전혀 무관치 않다. 참모들이 잘못인 줄 알면서도 묵인했던지 아니면 수수방관했는가 하면 심지어 적극 거들어 부추기까지 했다. 거기에는 새누리당도 방패막이가 되어 단단히 한몫했다. 그런데다가 걸핏하면 경제위기·안보 타령하면서 청와대에서는 태반주사, 마늘주사, 백옥주사뿐이겠는가 성기능 개선제(劑)인 ’비아그라와 팔팔‘까지 국민의 세금을 갖고 뭉텅이로 사들여 극소수 그들만의 건강과 미를 추구하며 향락을 즐겼을 것으로 미루어 짐작해 보니 부화가 치민다. 한심한 대통령에 그에 부화뇌동한 참모들! 지금도 물러나서는 안 된다고 말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그렇다고 야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국난극복을 위해서 잘 대처하고 있다고도 볼 수 없다. 국민과 언론이 만들어 놓은 장이니 만큼 야3당은 이 기회를 통하여 실리를 챙기려고 이리저리 눈치만 보지 말고, 지혜를 짜고, 중지를 모아서 단합된 행동으로 국민 기대에 부응하고 역사에 부끄럽지 않을 멋진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야3당이 추천한 책임 총리가 있어야 하고, 그게 여의치 않을 경우 김병준 총리내정자라도 빨리 국회인준절차를 밟아야 한다. 그런 후에 탄핵절차를 밟는 것이 앞으로의 정치 일정에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대통령 탄핵을 위한 공조에서는 야3당은 물론 여당과도 긴밀히 협조해야 되는데 유력 야당의 대표가 큰 전쟁을 앞두고 분열을 조장하고 단합을 저해하는 돌출발언은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다.
우리 국민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이 놀라고 있다. ‘최순실 사건’은 현직 대통령이 관련된 일이어서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는지 사태파악이 쉽지 않은데다가 시간이 갈수록 불거지는 위법사실이 다양하고, 끝이 보이질 않을 정도로 연속적이어서 벌써 한 달째 이 사건이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다. 지금까지 나온 여러 정황만으로도 대통령으로서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만큼 잘못이 크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잘못을 인정하고 스스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날 마음이 조금도 없어 보이니 이게 보통일이 아니다. 검찰에서 박 대통령을 피의자로 보고 수사에 응하라고 해도 그렇게 못하겠다면서 속된 말로 ‘배 째라’는 식이니 이게 대통령이 할 짓이냐. 참으로 실망이 클 뿐만 아니라 한편으로는 서글프다.
광화문광장에 수십·수백만 사람들이 모여서 목이 터지도록 “박근혜는 퇴진하라”고 외쳐대는 민중의 함성을 청와대는 외면해서는 정말 안 된다. 앞으로 이 나라의 기둥이 될 자라나는 아이들한테 꿈과 희망을 주지는 못할망정 이처럼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줘서 되겠는가. 더구나 나쁜 대통령으로서 추한 모습을 보여줘서는 더더욱 안 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제 결단을 해야 한다.
대통령 자신이 법을 지키지 않는데 어떻게 국민들 보고 법을 지키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제 더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 이미 밝혀진 그 정도이면 탄핵의 절차를 밟지 않더라도 스스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서 사인으로서 검찰조사에 응하고, 죄가 있다면 그에 걸맞은 죗값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만 광화문광장의 열기를 식힐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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