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캐니언을 가려면 여기서 직접 가는 비행기 편은 없고, 네바다주의 라스베가스까지 비행기로 이동해 거기서 버스 편이나 랜드카로 웨스트림이냐 사우스림이냐에 따라 4-6시간을 가든지, 아니면 헬기로 간다고 해도 1시간이 넘게 걸린다. 그래도 그게 가장 가깝고 편리하게 가는 방법이지만, 거기로 가는 항공편이 우리나라에서 자주 있는 것이 아니어서 LA까지 가서 거기서 버스로 가는 것이 가장 편리하다.
나는 미 동부를 갔다가 LA로 와서 할리우드, 디즈니랜드, 유니버설스튜디오, 헐링톤라이부러리, 말리부해안, 칼텍대학 등을 돌아보고 2박 3일 일정으로 그랜드캐니언을 갔다.
LA에서 아침 8시쯤 대형리무진을 타고 그랜드캐니언으로 출발했다. 버스에 오르니 한국 사람들도 다수 있고, 미국인들도 눈에 띄었다. 4월 말이면 한국에서는 아주 좋은 계절인데 LA는 좀 덥다고 느껴졌다. 우리가 탄 버스는 시내를 빠져나와 얼마 가지 않아 고속도로로 들어갔다. 10번 고속도로를 타고 얼마안가서 15번 고속도로로 방향을 바꿔 한참을 달리니 서부교통 요충지라는 바스토우가 나오고 거기서 40번 도로로 바꿔 타고 황량한 고속도로를 계속 달렸다. 허허벌판에 도로만 나있고, 양 길가로는 철망을 쳐놓아 동물들이 차에 뛰어들지 못하게 해놓았다. 길옆으로는 넓게 이어진 들판에는 키가 크지 않고, 잔잔한 버드나무 같은 것이 많이 보인다. 이 나무가 사막에 강한 품종이어서 몇 달씩 비가 안와도 생존한다고 하는데 낮에 햇볕이 나면 잎을 오므리고 있다가 밤에 이슬이 내리면 잎을 펴서 자기가 필요한 수분을 보충한다고 하니 얼마나 생명력이 강한 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몇 시간씩 사막을 달리는 데 온통 그 나무가 우리나라의 갈대처럼 깔려 있다. 산은 나무가 없고 시커먼 흙, 바위만 보인다.
벌판 저 멀리로 화물열차가 지나간다. 컨테이너를 싣고 가는 걸 세어보니 약 100개가 되는 듯 했다. 그 중에는 우리나라 한진해운이라고 쓰여 있는 컨테이너도 30여개가 있었다. 이억만리 먼 곳인 미국에 와서 우리나라의 화물을 싣고 가는 열차를 보니 어깨가 으쓱해지고 여간 기분이 좋은 것이 아니다.
우리는 LA를 출발한 지 5시간이 넘어서 도로를 빠져 나와 그리 크지 않은 휴게소 같은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점심은 뷔페식인데 배는 고픈데도 밥맛이 없다. 요즘 계속되는 여행으로 이제 체력이 떨어져서 지치는 게 아닌지 내심 걱정도 된다. 벌써 집을 나온 지도 열흘이 넘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는데 뭐라도 먹고 힘이 있어야 구경도 할 것 같아서 야채 조금하고, 비스켓, 복숭아 쥬스를 갖고 와 한 끼를 때웠다. 여기서 먹지 않으면 저녁은 윌리암 마을에 가서 먹으니 대여섯 시간 후에나 먹게 된다. 그러니 억지로라도 먹어야 했다.
또 우리는 버스에 몸을 싣고 끝없는 허허벌판을 달렸다. 멀리 마을이 보이고, 흐르는 강이 보였다. 바로 여기가 라프린이고, 콜로라도 강이다. 라프린은 단 라프린이라는 사람이 강변에다 호텔을 지면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살게 되었다고 한다. 콜로라도 강은 미국 남서부 로키산맥 서쪽에서 발원하여 대협곡을 걸쳐 멕시코 북서부를 지나 코르테스해(캘리포니아만)로 흐르는 총길이가 2,330km되는 강이다. 라프린에 있는 콜로라도 강은 강폭은 그리 넓지 않으나 강 깊이는 대단히 깊어 큰 배도 다닐 정도라고 한다.
이 강물은 라스베가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후버댐이 있는 데 거기서 언제나 안정적인 물공급이 이루어지다 보니 미 서부가 사막에서 인간들이 살 수 있는 곳으로 변하여 지금은 미국에서 LA가 두 번째 큰 도시가 되었다. 도시 어디를 가든 나무가 있으면 스프링클러가 있고, 이 콜로라도 강물을 이용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우리를 태운 버스는 킹맨을 향하여 부지런히 달리고 있다. 그랜드캐니언이 가까워지는지 산에 나무도 보이고 높은 산 쪽으로는 4월 말인데도 흰 눈이 쌓여 있다. 킹맨에서 잠시 멈춰서 휴식을 취하고 버스에 탔다. 두 시간 이상을 달렸다. 해는 서산에 지는데 아직도 갈 길은 바쁘다. 그러고도 시간 반을 더 가니 윌리암스 마을에 도착했다. LA를 출발한지 거의 12시간이 다 된 것 같다. 우리는 윌리암 마을에서 저녁을 비후스테이크로 저녁 식사를 하고 거기서 얼마 안 되는 호텔로 이동했다. 윌리암 마을에서 그랜드캐니언까지는 4-50분 거리라고 하니 이젠 다 온 거나 다름없다.
이른 아침에 눈을 떴다. 하늘은 맑고 아침 공기는 상쾌하다. 어제 밤, 잠을 푹 자서 그런지 몸도 개운하고, 밥맛 또한 회복했다. 이것저것 가져다가 많이 먹었다. 이제 조금 있으면 그랜드캐니언을 본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뜨고, 설레기 시작했다. 오래전 중·고등학교 다닐 때 국어책에 피천득 선생과 천관우 선생의 수필 '그랜드캐년' 이 갑자기 머리에 떠올랐다. 나는 지금 그랜드캐니언에 불과 몇 십분 후에는 도착한다. 그리 멀지 않은 산 능선이 일자로 평평하게 보인다. 버스가 드디어 그랜드캐니언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니 그 옆으로는 헬기와 경비행기들이 있었다. 20분 정도 휴식을 취하고는 순서대로 경비행기에 탑승하여 그랜드캐니언 상공을 날아올랐다.
그랜드캐니언은 미국 애리조나 주 북서부고원지대가 콜로라도 강에 침식되어 생긴 거대한 협곡이다. 약 20억년전에 생성하여 4,000만년전부터 침식이 진행되어 약 200만 년 전 지금의 이 모습으로 남아 내려오고 있으며 지층이 세월의 무게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길이는 약 446km이고 그 중에 파웰호수부터 미드호수까지 90km가 가장 아름답다. 폭은 좁은 데가 6km이고 넓은 곳은 29km가 된다고 하니 상상하기도 그리 쉽지 않다. 그랜드캐니언은 해발 2,133m에 있으며 1979년에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영국 BBC 방송이 선정한 죽기 전 꼭 가봐야 할 곳 50곳 중 그랜드캐니언이 단연 1위에 올랐던 곳이기도 하다.
우리를 태운 비행기는 계곡을 따라 나지막하게 떠서 많은 걸 보여주려고 했다. 때로는 우리의 간장을 서늘하게도 하고, 자연의 위대함에 경이와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가물가물한 계곡 밑으로 흰 물줄기가 보이고, 그 물줄기 위로 겹겹이 쌓여진 흙에는 세월의 나이를 엿볼 수 있다. 해가 없을 때, 있을 때, 아침이냐, 점심때냐에 따라 흙색깔이 시시때때 다 틀린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아침에 보는 그랜드캐니언이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데 우리는 오전에 이렇게 보고 있다. 한참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소리치고, 감탄하며 정신 나간 사람처럼 그랬다. 인간으로서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자연풍경이 지금 내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말 내가 보고 있는 모든 것들이 사실이고, 미국에 이런 데가 있었단 말인가! 그렇다면 미국인들은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축복받은 사람들이다. 그렇지 않고는 미국말고도 다른 나라에도 나눠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참으로 웅장하고도 아름답다.” 이 말은 아무리 좋고 아름다운 곳을 가보더라도 그랜드캐니언 말고는 함부로 써서는 안 되겠다고 다짐해 본다.
우리는 그랜드캐니언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그 곳을 떠나 대여섯 시간을 달려서 라스베가스로 왔다. 불과 여기가 십수 년 전만 해도 쓸모없는 사막이고, 사람들도 없었던 곳인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넘쳐나니 그랜드캐니언에서는 자연의 위대함을 느끼게 하고, 여기서는 인간의 위대함을 느끼게 한다. 아무리 노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해도 노름을 합법적으로 인정해준 데가 여기가 처음이 아닐까싶다.
라스베가스는 호텔이 많다. 호텔마다 특성에 맞게 공짜 쇼를 한다. 트레져아일랜드의 “보물섬 해적 쇼” 미라지호텔의 “화산쇼” 벨라지오의 “분수쇼” 등 다채롭다. 그리고 호텔에 들어가고 나가고 할 때 언제나 카지노장을 거쳐야 들어오고 나갈 수가 있다. 마찬가지 밥을 먹으러 가는 식당도 카지노장을 걸쳐야 갈 수가 있다보니 시간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그냥 지나칠 수가 없는 곳이 거기다. 나도 저녁에 호텔방에 들어갔다가 다시 내려와 두어 시간 해 봤고, 그 이튿날 아침에 잠깐하여 반 본전을 찾기도 했다. 이렇게 오며가며 사람들을 가만히 놔두지 않게 만들어서 노름을 하게끔 부추긴다.
아침을 먹고 서둘지 않고 천천히 짐을 싸서 호텔을 나섰다. LA까지는 한 나절 이상을 가야 되지만, 중간에 캘리코광산 들르는 것 말고는 별다른 타임이 잡힌 게 없었다. 그래서 시간이 여유로웠다.
캘리코 광산은 은을 채굴하던 광산인데 라스베가스에서 LA쪽으로 가다가 바스토우라는 도시가 나오기 얼마 전에 있다. 캘리코 광산은 광부가 1881년에 40명,1887년에는 1,200까지 늘었다가 1890년에 800명으로 줄고, 1951년에는 10명으로 줄면서 서부개척자들과 흥망성쇠를 같이 했던 광산이다. 지금은 폐광되어 관광지가 되었다.
미국에서 마지막 밤을 LA에서 맞고 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땅덩어리도 참, 크고, 다녀보니 쓸모없는 땅도 많지만, 그랜드캐니언 같이 어마어마하고 유일무이한 자연풍광을 대대손손 물려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럽겠나? 많이 부러웠다.
그랜드캐니언은 인간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자연이 우리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다. 참으로 대단한 걸 보고 가게 되어 정말 기분이 좋다. 언제가 될지 몰라도 기회가 된다면 또 한 번 꼭 들러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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