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생을 공부하기로 마음먹고 주어진 여건에서 매년 조금 씩 공부를 했다. 그러다 보니 20여 년 전에 대학원을 졸업하여 석사학위를 받고 2-3년 쉬다가 또 박사과정에 입학하여 공부를 더 하기도 했다. 회사에 다닐 때여서 힘이 들었던지 공부에 충실하지 못했다. 그래서 요즘에 시간도 있어서 다시 한 번 시작해 보려고 하니 마누라가 그건 받아서 뭐에 써먹으려고 그런 고생을 하냐고 다그친다. 그러고 보니 나도 이순의 나이에 고생을 사서한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크게 하는 일이 없이 주로 여행을 다니면서 시간이 있을 때마다 기행문을 쓰고 있다. 그래서 나중에 책을 만들어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한테 참고가 되고, 조금이라도 길잡이가 되는데 도움이 된다면 보람 있는 일이 아닐까 싶어서 체계나 두서없이 생각대로의 글을 쓰고 있다. 나중에 내가 죽고 없어서도 내가 쓴 글을 읽어 줄 사람이 있다면 아주 행복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나는 책을 많이 읽었다. 젊었을 때는 주로 세계문학을 많이 읽었다. 세계문학 중에 첫 번째 만난 소설책이 폴란드의 유명한 작가인 솅키에비치가 지은 “쿠오바디스”를 일주일 동안에 두 번 읽을 기회가 있었다. 첫 번째 읽을 때는 내용이 뭔지 몰랐고, 두 번째 읽으니 조금은 머리에 남는 것이 있었다. 그 이후로 유명하다는 세계문학은 다 접해 보았다. 그리고 얼마 안 되어 한국문학을 읽게 되었는데 처음 읽게 된 책이 춘원 이광수 선생의 “무정”과 “흙”이다. 지금도 그 소설책에 나오는 주인공 이름을 잊지 않을 정도로 마음에 남아 있다. 그 후 장편부터 단편까지 많은 책을 읽었다.
이렇게 책을 많이 보게 된 것은 양주동 박사의 영향이 컸다. 고 양주동 선생은 동국대 국문학과 교수였지만 영문학자이시며 불문학자이시기도 했다. 선생께서 자기가 한국에서의 국보라고 직접 말씀도 하실 정도로 해박한 지식을 갖고 계신 분이었다. 맹자님의 인생3락에다가 독서의 즐거움을 인생 4락이라고 하실 만큼 독서를 강조하셨다. 그러면 맹자님의 인생 3락을 잠깐 언급해 보면 첫째가 부모형제가 무고함이 일락이고, 둘째가 하늘에 부끄러움이 없는 것이 이락이요.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교육시키는 것이 삼락이라고 했다.
요즘에 나이가 들어서 공부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을 실제로 느낀다. 공부를 하려면 책을 많이 봐야하는데 눈도 침침하고 금방 책을 보아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는데도 시간이 걸리고 떨어진다. 그래서 공부하는 것도 돈 버는 것도 다 때가 있다는 말이 이제야 마음에 와 닿는다. 그것도 이순이 되어서 말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맥을 놓고 있는 것보다는 뭐든지 알려고 배우려고 노력하는 것은 보람 있고,자신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길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뭐라도 해서 실패하는 것이 낫다”라는 D그룹 회장님의 말씀을 생각해본다. 이 말은 실패했더라도 뭐든지 배웠을 테고, 좋은 경험을 했을 것이다. 배운다는 것은 삶의 지혜를 차곡차곡 쌓아나가는 것과 같다. 인간은 누구나 죽을 때까지 배움과의 동행은 계속된다. 사람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을 지 몰라도 배움과 삶과는 뗄내야 뗄 수 없는 필연적인 유착관계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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