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다니던 직장동료의 딸내미가 시집을 간다고 해서 결혼식장에 다녀오다가 집 가까이에 오니 같이 오던 친구가 소주한 잔 더 하자고 한다. 점심 먹으면서 마신 술도 아직 덜 깨고, 또 어딜 가야 하는데도 그걸 뿌리치지 못하고 셋이 소주 두어병을 나눠 마셨다. 그리고 이렇게 집에 들어오자마자 여길 들어와서 글을 올려 본다.
요즘에 또 봄이 왔는지 여기저기서 많이 부른다. 이번 주만 해도 화요일, 금요일, 일요일 이렇게 벌써 세 번째인데 그래도 옛 동료들이기에 어느 때고 연락이 없으면 몰라도 있으면 이렇게 달려간다. 그러다 보니 마누라한테는 좋은 소리 못 듣고 그래도 그렇게 하는 것이 도리이고, 또 그게 싫지 않아서 그렇게 하고 있다.
며칠 전, 전에 다니던 직장 동료들과 산에 가서 찍은 사진도 보고 같이 회의를 갔다가 찍은 사진도 보다보면 벌써 유명을 달리 한 친구들이 너무 많다. 얼마 전 “우리 집엔 동백꽃이 한창이다.” 글을 올렸지만. 그 동백꽃을 내게 준 친구도 아주 오래 전에 죽었다. 내게 준 것은 1991년도에 광주를 출장 갔을 때였다. 사람은 죽고 없는데도 꽃은 매년 피고지기를 반복한다. 그래서 동백꽃이 필 때마다 그 친구를 그리워하고 생각하게 한다.
이렇게 옛 동료들이 보고 싶을 때가 있고, 때로는 생각이 난다. 이건 내가 나이가 먹었다는 증거일까? 아니면 아직 그 친구들 보다는 나이가 젊어서 허세를 부리는 걸까? 아마도 그건 아니고 사람이 사람을 많이 좋아해서 그런다고 보면 될 거다.
갑자기 윤동주 선생의 ‘별 헤는 밤’이 생각난다. “‘가슴 속에 하나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 별 하나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병숙이, 병님이, 완호, 영자, 영애, 금님이, 영남이 등 많은 여자애들(내 초등학교 동창생)이 보고 싶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늘 그랬듯이 ‘누구든 적을 만들지 말자’ 지금까지도 이 말은 나의 모토가 되어 마음 깊숙한데다가 새겨 놓았다. 사회생활,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어떻게 다시 만날지 모른다. 한참 전에는 그 양반이 내 상사가 되었다가 몇 년이 지나니 내가 상사로서 그 분을 모시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누구한테도 마음에 두고, 가슴 아프도록 해서는 안 되지만 가슴 아프게 하고, 눈물이 쑥 빠지게 했더라도 이삼일 내에 풀어주면 된다. 그런데 그걸 못 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나는 그래서 여태까지도 나를 걸쳐간 부하들은 늘 나를 챙겨주려고 하는데 요즘에는 부담이 되어 내가 사는 동네에서 저녁을 먹든 아니면 점심을 먹으면서 소주를 한잔 하게 되면 꼭 내가 밥값을 내고 우리 동네가 아니면 그 친구들이 밥값을 내도록 내버려 둔다.
이런 것들이 사람 사는 냄새가 아닌가 싶다. 요즘에 너무 세상이 각박해져서 너는 너고 나는 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인간으로서 가장 기본적이고 버려서는 안 되는 것이 사람 사는 세상에서 사람냄새를 같이 느껴보는 것이다.
요즘엔 아침에 눈을 뜨면 마누라 얼굴 먼저 보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현직에 있을 때는 일주일에 마누라 얼굴을 한두 번 볼 때도 많았다. 그래도 그렇게 할 때가 좋았던 것 같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어디라도 머리 들고 나갈 때가 있는 사람은 아주 행복한 사람이 아닌가 싶다.
오늘도 전 직장 동료 딸내미 시집가는데 갔다가 와서 여러 가지 시답지도 않은 얘기를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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