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다보면 바쁠 때도 있지만, 어제는 참 바쁘면서도 지독한 하루였다. 아침부터 일이 꼬이더니 그 일이 하루 종일 이어져 밤으로까지 이어졌다.
아침에 전화를 받으니 일이 잘 못되었다면서 꼭 오늘 처리를 해야 한다고 한다. 할수없이 거기를 가서 그 일을 처리해 놓고 광명으로 가서 대전가는 KTX를 탔다. 대전까지는 채 40분이 안 걸렸다. 그런 걸 보면 좋은 세상이다. 예전 같으면 수원 역으로 가던지 아니면 강남고속버스터미날을 가서 버스를 탄다고 해도 2시간 가까이 걸리는데 거기에 1/3정도 밖에 걸리지 않으니 KTX가 생기면서 우리네 생활이 많이 달라진 거다.
대전 가서 점심시간이 다되어 식당에 들어가 메뉴판을 보다가 그나마 그것이 낫겠다고 해서 음식을 시켰더니 하는 말이 오늘 주방장이 안 나와서 그 메뉴는 안 된다고 한다. 기분이 언짢았지만 되돌아 나오려다가 꾹 참고 그러면 뭐가 되냐고 물어보니 몇 가지 얘기를 하길 내 그 중 하나를 시켰다. 나온 음식이 맛이 있을 것이라고는 기대도 안했다. 그냥 의무적으로 먹어야겠고, 아깝다는 생각에 꾸역꾸역 먹었다. 다 먹고 나니 속이 답답하고 체한 듯 했다.
그 후 속이 거북한 상태에서 철도공사에 볼 일을 보러 갔다. 시간은 여유가 있었다. 녹차가 나와 찻잔을 받아놓은 상태다. 차를 마실 그 사이를 못 참고 전화가 왔다. 받아 보니 새벽에 고종사촌 형님이 돌아가셨다고 한다. 원래는 안양을 출발할 때 대전에서 일을 다 보고 나면 청주로 가서 친구가 부친상을 당했는데 문상을 하고 바로 집으로 올라오려고 했었다. 그 연락을 받고 여기저기 형제들한테 알려주다 보니 마음도 몸도 다 바빠졌다. 대전에서 봐야 할 볼 일은 상당히 중요한 일인데 상황이 그렇다 보니 차분하게 제대로 일을 보지 못한 것 같아서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청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탈까 하다가 터미널로 바로 가면 되돌아 나와야 하니까 신탄진 가는 시내버스를 탔더니 이놈의 버스가 대전 시내를 반 바퀴 돌다가 신탄진으로 가는게 아닌가. 그러다 보니 시간을 길에서 다 보내야 했다. 신탄진에서 청주 가는 시내버스로 갈아타고 청주를 오니 저녁나절이었다. 그렇게 돌고 바꿔 타고 왔는데 와서 보니 바로 그 앞에 대전에서 오는 시외버스가 정류장이 있어서 정차하는 것이 보였다. 참, 욕은 못하겠고, 부글부글 끓는 속을 달래면서 참사랑병원에 가서 문상을 했다. 하나 둘씩 친구들이 오는 걸 보고도 더 지체할 시간이 없어서 얼마 안 있어 병원을 나섰다.
고종 사촌이 있는 하나병원은 시외버스터미날 바로 앞에 있다고 해서 그리로 바삐 움직였다. 병원에 도착하니 이미 날은 어두워졌다. 장례식장을 찾으려고 그 큰 병원을 한바퀴 다 돌아도 보이질 않았다. 그래서 지나가는 사람한테 물어보니 여기는 장례식장이 없고 여기서 1.5km 떨어진데 있다고 했다. 마음은 급하고 바쁜데 택시를 잡으려고 해도 빈차가 보이질 않았다. 한참을 기다려 간신히 택시를 타고 장례식장엘 가서 문상을 했다.
문상을 하고서 집에 계시는 고모님을 뵈러 갔다. 연세가 93세인데 정정하시다. 사람이 죽고 사는 걸 어떻게 인력으로 막을 수 있겠는가. 올 해는 큰아들을, 2년 전에는 작은 아들을 앞세웠다.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겠는가? 8-9년 전에 아들 둘을 떠나보낸 우리 어머니 마음을 다시 헤아려 본다.
오늘은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모든 일이 꼬이기만 했다. 무엇하나 속 시원하게 된 것이 없이 하나부터 열까지 다 그랬다. 하루를 가만히 돌이켜 보건데 평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하는 지독한 하루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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