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한라산 백록담을 가다

강일형(본명:신성호) 2015. 10. 10. 21:10

 

 

 

 

제주도는 아주 여러 번을 갈 기회가 있었는데도 어떡하다 보니 한라산 백록담을 한 번도 올라가지 못했다. 최근에 제주도를 갔다 온 것이 2012년도 3월 말쯤 고등학교 친구 내외와 같이 갔다가 백록담을 올라가려고 시도하다가 시간이 늦어 올라가지 못하고 1325m의 사라오름까지만 갔다 온 것이 마지막이었다.

 

이렇게 뜸만 들이던 한라산을 2015108일 드디어 올라갔다. 이번에 우리 가족 모두가 제주도로 여행을 왔다가 이 기회가 아니면 다시는 내게 한라산을 올라갈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것 같아서 가족과의 소중한 시간을 뒤로 하고 한라산 등반에 나섰다.

 

대한민국의 최고봉인 한라산은 제주특별자치도의 중심부에 솟아있으며 해발 1950m의 높이에 정상에는 지름이 약 500m에 이르는 화구호인 백록담(흰 사슴이 물을 먹는 곳)이 있다. 한라산이라는 이름은 산이 높아 정상에 오르면 은하수와 맞닿아 손으로 잡아당길 수 있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 또한 한라산은 1966년에 천연기념물 제 182호로 지정되었고, 1970년도에는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2007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러한 영산(靈山)인 한라산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올라가 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다는 것은 한편으로 부끄럽기도 하거니와 더 세월이 가서 지금보다 근력이 떨어지면 여건이 허락한다고 하더라도 갈 수 없는 곳이 한라산 등반이다. 그래서 이번 한라산 백록담까지의 등반은 나의 인생에 있어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커다란 자랑거리이면서 그런대로 건강하다는 것을 입증한 셈이다.

 

우리가 머물고 있던 곳이 제주의 서남쪽에 있는 산방산 근처의 와이리조트여서 한라산을 올라가는 성판악까지는 너무 멀어서 갈 때는 택시를 불러서 타고 갔다가 올 때는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올 작정이었는데 이른 새벽부터 작은 아들이 태워다주고 또 데리러 와서 등산을 위한 중간이동에는 크게 고생하지 않고 편안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원래는 성판악에서 출발하여 속밭대피소진달래대피소한라산 정상으로 올라갔다가 내려올 때는 관음사 쪽으로 내려오려고 마음먹고 있었지만, 정상에서 관음사로 내려가는 길을 폐쇄하여 놓아서 할 수 없이 갔던 길로 되돌아 내려와야 했다. 성판악에서 속밭대피소까지는 밋밋한 오르막길이 4.1km 이어지는데 시간적으로는 1시간 남짓 걸렸다. 속밭대피소에서 쉬면서 음료수와 초콜렛 한 개를 먹고 다시 걷기 시작하여 샘터를 지나 사라오름 입구까지는 1.7km 거리이고 약 25분 정도 걸렸다. 사라오름입구에서 진달래대피소까지는 1.5km이지만, 계단도 있고 오르막이 심하지는 않아도 경사가 있어서 40분 정도를 걸어야 진달래 대피소에 도착하게 된다. 진달래대피소에는 오전 940분인데도 벌써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붐볐다. 내딴에는 그래도 부지런히 걸어서 올라왔는데도 성판악에서 진달래대피소까지 2시간 반 가까이 걸렸다.

 

진달래대피소를 하절기에는 12시 반까지, 동절기에는 12시까지 통과해야 정상인 한라산백록담을 올라간다. 그렇지 않으면 진달래대피소에서 길을 막고 올려 보내지 않고 되돌아 내려 보내기 때문에 백록담을 등반하려면 이점을 참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진달래대피소에는 여러 등산객들이 밥도 먹고 컵라면을 먹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나는 아침을 먹고 나와서 싸갖고 간 찐빵 한 개를 꺼내어 먹고, 바나나 한 개를 까서 먹었다. 바나나는 땀을 많이 흘린 후 먹으면 이온음료처럼 빠져나간 칼륨과 전해질을 보충해줄 뿐만 아니라 몸의 균형을 잡는데도 도움을 주고 머리가 아프고 어깨가 결리는 데도 좋다고 한다. 그래서 장시간을 걷거나 등산을 할 때는 언제부터인가 바나나를 갖고 다니는 버릇이 있다. 땀이 식으니 으스스 추워지는 것 같아서 바람막이를 입고, 정상까지 남은 2.3km의 계단 길을 또 걷기 시작했다.

 

정상이 가까워지니 속밭대피소를 가기 전부터 등산로 주변으로 펼쳐지던 잔잔한 대나무밭이 진달래대피소를 지나 얼마까지는 계속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다가 없어지고, 구상나무들을 흔하게 볼 수 있는데, 이 구상나무들이 5-60%는 하얗게 말라서 죽어 있다. 한참 전에 티비를 보다 보니 한라산의 구상나무들이 기후변화로 온난화가 되어 생태환경에 적응을 못하고, 구상나무들이 죽어가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눈으로 보니 참으로 안타깝다.

 

긴 계단과 세찬 바람이 한라산정상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좀 더 빨리 백록담을 볼 욕심에서 발길을 재촉하다 보니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잠시 서서 숨을 돌리고 또 걸어 올라갔다. 등산객들이 군데군데 모여 있는 모습을 보니 백록담이 얼추 다 온 듯했다. 1900m라는 표지목이 힘들게 올라오는 나를 반겨주었다. 드디어 한라산의 정상인 1950m에 도착했다. 커다란 분화구 바닥으로는 두 개의 둠벙처럼 고인 물을 볼 수가 있다.

 

민족의 영산 한라산, 때로는 남태평양에서 불어오는 태풍을 이 한라산에서 막아줘서 내륙에 도착할 때는 약해지어 피해를 줄여주는가 하면 일본이나 중국으로 우회시키기도 하여 이 한라산이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높은 산이라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우리나라, 우리민족에게 주는 영향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지대하다. 12세기에 한라산에서 용암이 폭발하여 온산을 뒤덮고 용암이 흘러 마을을 뒤덮어 주민들은 살기위해 동굴로, 아니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던 그 당대를 살아간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고통을 주기도 했지만, 이렇게 천년이 지나 지금은 명()산이요, ()산으로 길이 대대손손 보존해야할 보물이다.

 

한라산을 올라갈 때는 가끔 보이던 외국인들도 내려올 때는 자주 눈에 보였다. 이렇게 나도 한라산을 처음 가보는데 한라산이 이름 있는 산이라는 것을 여길 찾은 외국인들은 다 알고 왔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이제야 한라산을 찾은 자신이 부끄럽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정상에서 내려오다가 진달래대피소를 도착하니 올라가는 길은 올라가지 못하도록 벌써 통제를 하고 있었다. 대피소에서 싸간 김밥을 먹을까 하다가 땀을 많이 흘려서인지 밥맛이 없었다. 그래서 남은 찐빵 한 개를 꺼내어 막 먹으려니 빗방울이 점점 굵어지고 소나기가 소리 내어 시끄럽게 내린다. 우의를 꺼내어 입고 하산을 서둘렀다. 속밭대피소 쯤 내려오니 소나기는 그쳤고, 성판악까지는 지루한 내리막을 한참을 걸어야 했다. 왕복 20km 가까이를 올라갈 때는 4시간 20, 내려올 때는 3시간, 7시간 20분을 걸었는데도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것은 한라산의 정기를 한껏 받아서 그렇지 않았나 싶다.

 

제주까지 여행 와서 아버지의 한라산 등반을 위해 새벽부터 동분서주한 나의 작은 아들이 없었다면 고생도 하고, 힘들었을 텐데 작은아들 덕분에 한라산 백록담까지 올라와 추억에 남고, 영원히 잊지 못할 등반을 하게 되어서 고맙다는 인사말을 남겨본다. “작은아들, 고맙다. 한라산에 가서 높고 깊은 정기를 받아서 작은아들에게 전했으니 올 해 좋은 일 많이 있을 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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