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떠나 어디를 간다거나 여행이라도 한다고 하면 꼭 전날 밤은 잠을 설치게 되어 잠을 편하게 자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특히 나이가 먹을수록 그런 현상이 심해지는 것 같아서 혹시 병적인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되었지만 맨날 그런 것이 아니라서 내버려두기로 했다. 요즘에 딱히 하는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다가 행사 건수가 있는 그날만을 기다리다보니 이렇게 나이가 들었어도 기다림과 설레임에 잠을 설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건강하다는 증거인지도 모른다. 기상 알람을 오전 5시 반에 맞추어 놓았는데도 오전 4시 10분에 일어나 지난밤에 보따리는 다 싸놓아서 크게 하는 일 없이 시간을 보내다가 6시가 조금 넘어서 집을 나섰다. 오늘은 카페동호회원들과 화천의 비수구미길과 파로호의 산소길을 걷기로 했다. 오랜만에 ‘인도행’카페 동호회원들과 같이 걸어본다. 작년 2월 초에 눈이 많이 내렸던 날 청계산둘레길을 걸어본 후 이번이 처음이다.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앞에서 버스 3대에 나눠 타고 출발하여 경춘고속도로에 진입을 했지만 이른 시간인데도 토요일이어서 차가 많이 밀렸다. 가다말다를 반복하면서 가다보니 우리가 걸어야 할 비수구미길이 시작되는 ‘해산령’이라는 커다란 입석이 있는 곳에 도착한 시간이 10시 반이 다 되어서다. 서울을 출발하여 약 3시간 정도 걸린 셈이다. 화천의 비수구미마을은 화천읍 동촌 1리와 2리에 있으며, 3가구에 7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아주 대한민국의 오지 중에 한 곳이다. 2012년 5월부터 2015년 5월까지 자연휴식년제실시로 사람의 출입이 금지되어야 하지만 주민의 생계에 지장을 준다고 하여 사람의 출입을 허용하고 있다. 1986m의 해산터널을 빠져나와 직진하게 되면 평화의 댐으로 가는 아흔아홉구비의 구불구불한 고갯길이 나오고, 우측으로 내려가게 되면 차량은 들어갈 수 없게 철제대문이 막혀있다. 그 옆으로 보면 사람이 다닐 수 있는 쪽문이 있는데 그 문으로 들어가면 비수구미길로 내려가게 된다. 인적이 드문 비수구미길인데도 오늘은 우리 카페동호회원들과 또 다른 산악회에서 온 등산객들과 같이 내려가다 보니 시끌벅적한 것이 여느 임도와 다를 것이 없었다. 다만 환경오염이 없는 맑고 깨끗한 계곡물이 처음부터 비수구미마을을 다 내려오도록 소리 내어 흐르고 있고, 자연원시림과 크고 널찍한 바위들이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과 같이 이어지고 있다. 해산령에서 비수구미마을까지는 약 4km의 계곡길인데 산 중간까지는 좌측으로 계곡이 내려오다가 작은 다리를 건너서면 우측으로 계곡이 이어지기도 한다. 계곡 끝은 파로호 호반과 만나서 하절기에는 가족단위의 낚시는 물론이고 피서지로서도 흠잡을 데가 없다. 더구나 인근에는 평화의 댐, 비목공원, 안보전시관, 해산전망대 등 가볼만한 곳이 여러 곳이 있어 하루나 이틀 묵으면서 여유를 갖고 둘러보면 아주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점심은 비수구미마을에서 산채비빔밥으로 했는데 한꺼번에 150명 가까이 되는 인원이 몰리다보니 혼잡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따뜻한 밥과 국이 있고, 좀처럼 아무데서나 구할 수 없는 여러 종류의 산나물도 화천에 있는 비수구미마을에 와서 맛볼 수가 있었다. 비수구미마을에서 점심을 먹고서는 파로호를 우측에 두고 높고 긴 다리를 건너야 한다. 그런데 이 다리는 비수구미마을에서는 명물이어서 누구나 이 다리를 지날 때는 흔들거리고 출렁거리는 다리여서 한 번씩은 흔들어보기도 하고 경관이 좋아서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사진을 찍지 않고서는 못 배긴다. 그래서 우리도 여기서 폼 한 번 잡아 보았다. 해산령에서 비수구미마을로 내려오는 길이 돌이 깔린 흙길이었다면 다리를 건너고부터는 잘 정비된 데크길이 한참을 이어진다. 우측으로 파란 파라호를 따라 이어지는 데크길은 기분 좋게 1km 남짓 걷다가 없어지고 파로호 둑길과 만나게 된다. 작은 차들이 다닐 수 있는 비포장도로는 울퉁불퉁해도 걷는 데는 아무런 불편함이 없지만 승용차는 조심해야 했다. 이렇게 썰렁한 날씨인데도 낚시를 온 사람들이 텐트를 쳐 놓은 걸 보면 밤낚시를 하지 않나 생각된다. 거기를 지나 호수 둑방길을 2-30분 더 걸어 나오니 우리가 타고 온 버스가 있었다. 비수구미 마을에서 포장길과 만나는 삼거리까지는 약 3km는 넘어 보였다. 해산령을 출발하여 비수구미마을을 경유하여 평화의 댐까지는 약 14km라고 하는데 삼거리 길에서 평화의 댐까지는 6-7km의 거리인데도 시간을 줄이기 위해 다시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고 파로호수를 우측으로 보며 얼마 안가서 좌측으로 높다랗게 쌓은 댐 제방이 나왔다. 무슨 공사를 하는지 제방에도 작업차량이 있고, 수로에도 물은 없고 작업하는 사람들만 보였다. 평화의 댐은 우리에게는 잊을 수 없고 상당히 의미 있는 댐이다. 북한의 물 위협에 대비해서 수도권과 서울을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국민의 성금으로 건설하였기에 그냥 지나가면서 슬쩍 보고갈 수가 없었다. 총사업비 1,700억 원 중에 국민성금 600억 원이 들어갔다고 하는데, 1993년 감사원 감사에서 북한의 물 위협과 남한의 피해예측은 과장된 것이었다고 하니 전두환정부의 대응이 얼마나 허술하고 허무맹랑했었는지 여기 와서 새삼 느껴야 했다. 1987년 2월에 기공을 하여 1년 3개월만인 88년 5월에 완공을 했으니 제대로 된 토목공사가 아니어서 지금은 담수는 거의 없고 댐 높이가 125m로서 국내에서 최고라는 걸 무색하듯 수를 헤아릴 수없이 여기저기 갈라진 댐의 벽을 수리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세계평화를 위해서 노력한 인물들의 조각상과 방문객이 악수를 할 수 있다는 것에 다소 위안을 받았다.
평화의 댐에서 화천읍내로 약 1시간 가량 버스 타고 내려와서 파로호 산소길 100리 중에서 은행나무길 쉼터를 기점으로 하여 미륵바위➜숲으로다리➜원시림숲길➜황포돛대선착장➜화천체육관➜푼푼다리➜강변주차장까지 약 6km를 걸었다. 오전에 걸었던 비수구미길이 단풍이 지고 낙엽으로 다 떨어진 후라서 오지로서 의미는 있지만 볼 것이 없는 썰렁한 길을 걸었다면, 오후에 걷는 파로호 호수가장자리에 나있는 수상데크 길은 오전에 걸었던 것을 마치 보상이라도 하듯 떨어졌던 기분과 체력을 상당히 업 시켜 주었다. 호수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건너가는 ‘숲으로다리’는 바로 물위에 설치를 해놓아서 물위를 걷는 기분이 들 정도이고, 물속을 내려다보면 얼마나 물이 맑은지 물속에 물고기들이 노는 것이 다 보였다. 내 생전 이런 길은 처음 걷는 것이어서 놀랍기도 하거니와 또 발짝을 뗄 때마다 데크길이 조금씩 움직이면서 몸의 충격을 흡수해주어 걸으면 걸을수록 기분이 좋아지는 걸 느꼈다. 길을 걸으면서 행복하다는 걸 좀처럼 느끼기가 쉽지 않은데 이렇게 화천에 와서 ‘파로호산소길’을 걸으면서 마음이 편안해지고 많이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리를 건너 수상데크길은 한참을 물위로 펼쳐지다가 원시림숲길로 이어진다. 원시림숲길이라고 해도 산속길이 아니고 호수가 쪽으로 붙은 강변길이다. 이 길을 걷다보면 갈대밭도 지나고 마을 앞 논밭에서는 가을걷이에 한창인 농부도 만난다. 마을 앞길을 따라 포장된 강변로를 10여분 걷다보면 화천체육관이 좌측에 나오고, 우측으로는 푼푼다리가 호수를 가로질러 놓여 있다. 우리는 체육관 앞에 있는 널찍한 공터에서 몸의 피로를 풀어주는 전신체조를 하는 것으로 오늘의 공식적인 도보행사를 마쳤다. 오늘 버스 3대에 카페동호회 대군을 이끌고 행사를 주관하신 수락인대장님께 수고하셨다는 말씀과 또한 행복한 길 같이 걸어준 길벗께도 고맙다는 인사말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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