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보

괴산의 ‘산막이옛길’을 걷다

강일형(본명:신성호) 2014. 10. 23. 23:14

 

 

 

 

어제만 해도 계절이 늦가을인데 웬 가을비가 한여름의 장마 때보다 더 세차게 아침부터 밤까지 줄기차게 내렸다. 충북 미원을 갈 때까지 그 비를 다 맞고 형님 댁에 도착하니 한나절이 다 되었다.

 

점심을 먹고 마누라하고 큰형수님은 아버지 제사음식을 장만하고, 형님과 나는 멍하니 있기가 그래서 밤이라도 까놓으려고 밤을 꺼내달라고 하니 벌써 밤도 오전에 다 까놓았다고 하시면서 형님이 바둑이나 한판 두자고 하신다. 형수님과 마누라는 전을 부치고, 우리 형제는 바둑을 두었다. 원래 형님이 소시적부터 바둑을 잘 두셨는데 연세가 내년이면 80이다 보니 바둑실력이 전만 못하신지 내리 세 판을 지셨다. 두 판을 두고 세 판 채 막 돌을 몇 개 놓았는데 옆 동네에 사는 동생친구가 와서 형수님이 술상을 차리셨다. 그래서 바둑판을 그대로 놔두고 빈대떡을 안주해서 그 동생하고 같이 소주잔을 기울이다 보니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형님이 바둑알을 치우시지 않아서 그대로 연결하여 바둑을 두었다. 형님이 이번에는 대패를 당했다. 이렇게 집에 와서 생각하니 한 번은 져드려야 했는데 다 이기다 보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비가 그칠 줄 모르고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서울에 있는 장조카가 그 비가 내리는데도 할아버지 제사를 지내러 내려왔다. 종손인데다가 위로 누나들만 넷이어서 독자인데도 요즘 젊은이들 같지 않게 책임감도 강하고, 집안 대소사에 쫓아다니는 걸 보면 대견스럽다. 형님을 모시고 그 조카와 같이 아버지 제사를 지내고나서 밤늦은 시간에 조카는 올라가고, 우리내외는 하룻밤을 형님 댁에서 묵었다.

 

이튿날 아침이 되었다. 어젯밤에 그토록 세차게 내려서 좀처럼 그칠 것 같지 않던 장대비가 그치고 날이 들었다. 형님과 형수님을 모시고 바람이나 쐬어 드리려고 충북 미원에서 한 시간 정도의 거리에 있는 명소를 찾다보니 괴산의 산막이옛길이 좋다고 하여 가자고 말씀드리니 형수님이 선약이 있어서 안 된다고 하신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우리내외만 집을 나섰다.

 

 

충북 미원에서 괴산의 산막이옛길까지는 채 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비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내려서인지 산과 들은 물론이고 강과 내, 어디를 가든 물이 넘쳐흘렀다. 산막이옛길이 있는 칠성댐의 물 색깔도 푸른 것이 아니라 누런 흙탕물이었다. 우선 우리가 걸어야 할 산막이옛길에 대해서 알아보자.

 

괴산의 산막이옛길을 가려면 내비(navigation)검색창에 주소를 충북 괴산군 칠성면 산막이옛길 88(사은리 546-1)로 쳐야 고생하지 않고 주차장까지 편안하게 올 수가 있다. 이 길은 칠성면 사은리 사오랑 마을에서 시작하여 산골마을인 산막이 마을까지 총길이 십리(4km)의 옛길을, 괴산군에서 댐 우측의 산 쪽으로 산책로를 복원하여 이처럼 아름답고 걷기 좋은 길을 만들었다. 1957년에 순수한 우리의 기술로 준공된 칠성댐(괴산)은 산속의 호수로 인해 주변의 자연생태계가 훼손되지 않고 그대로 보존되어 그것만으로도 어디에다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은 가치를 갖고 있다. 특히 산막이옛길은 호수 옆으로 나있는 산책로를 따라 건강을 다지는 도보도 할 수가 있고, 2-3시간 정도의 등산도 가능하다. 또한 산책로를 따라 도보만 하고 싶다면 산막이나루터에서 처음 출발했던 사오랑마을로 되돌아오면 되고, 힘이 부친다면 산막이마을까지 걸어갔다가 산막이나루터에서 배를 타면 된다.

 

우리나라에서 아름답고 걷기 좋은 길로 제주올레길, 지리산둘레길, 그리고 괴산의 산막이옛길을 3대 트렉킹 코스라고 한다. , 그러면 산막이길을 걸어보자.

 

사람들이 많이 가는 길을 따라 언덕배기를 올라가자 커다란 산막이옛길의 안내도가 있고, 좌측으로는 괴산군수가 세워놓은 산막이길이라는 입석이 우리를 맞이한다. 소나무 길을 걸으면서 우측으로 보면 사과밭에 잘 익은 사과가 주렁주렁 아주 탐스럽게 달려있다. 그곳을 지나다가 사과밭 한가운데로 나있는 길을 안쪽으로 들여다보면 여자, 남자 형태의 돌로 만든 조각상을 만나게 되고 쉬면서 차도 한 잔 마실 수 있다. 예쁘게 잘 지어놓은 정자를 지나 약간의 오르막 산길이 시작되기 전에 좌측으로 고인돌 쉼터와 연리지가 있다. 연리지 바로 앞에는 잘 생긴 남자 거시기상이 연리지를 지켜주고 있듯 딱 버티고 있다. 백번만 연리지를 찾게 되면 이룰 수 없는 사랑도 다 이룰 수가 있다고 하니 아직 사랑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은 백번은 아니더라도 몇 번은 찾아와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좌측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가득찬 물을 보고 산쪽으로 걸어오면 그네가 있고, 바로 소나무 사이로 나있는 출렁다리를 건너서 가야 한다. 중간에 가다가 장난삼아 몇 번을 구르면 여자들은 오줌을 지릴 수도 있으니 되도록 그런 장난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조금 더 걸으면 연꽃이 있는 연화담이 나오고 괴산댐 너머로 울긋불긋 단풍이 물들어가는 옥녀봉과 아가봉을 한 눈에 볼 수가 있다. 그리고 노루샘에서는 등산객을 위한 등잔봉전망대천장봉으로 이어지는 등산코스가 시작된다. 산막이마을까지 가면 3시간 정도가 소요되고, 힘이 부쳐서 진달래능선으로 하산하게 되면 약 2시간 정도가 걸린다.

 

노루샘을 지나 잘 정비된 데크길을 따라 걷다보면 호랑이굴이 나오는데 1968년까지 호랑이가 실제로 드나들며 살았다고 한다. 지금은 호랑이와 그 새끼가 모형으로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호랑이굴에서 매바위, 옷벗은 미녀참나무를 거쳐 7-8분 걷게 되면 앉은뱅이약수가 나오고, 거기서는 여러 사람들이 약수를 마시며 쉴 수 있는 공간과 벤치가 있다.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쉬고 있었지만 우리는 거기를 지나쳐 비온 끝이라 낙엽이 떨어져 데크길을 곱게 물들여진 얼음골에 도착했다. 정말 시원한 바람이 산골짜기에서 불어왔다.

 

이렇게 산막이길은 걷는 이를 잠시도 내버려두지 않고 다음에는 뭐가 나올까 궁금하게 하면서 이 길을 걷게 한다. 이 길을 걸으면서 아무 생각 없이 빨리 걷는 사람은 어찌 보면 바보들이다. 천천히 걸으면서 산도 보고 또 물도 보면서 이곳 생태계를 둘러보고 가도 걷는 길이 어느 정도 오르막 내리막이 이어져서 늦가을인데다가 지난밤에 비가 그렇게 많이 와서 기온이 떨어졌는데도  땀이 적당히 나서 기분이 아주 좋다.

 

얼음골에서 10분 남짓 걸어 호수전망대, 괴산바위를 지나 고공전망대에서는 댐에 가득 찬 물을 배경으로 폼 한 번 잡아 보았다. 이제는 걷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사진 한 번 찍으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내 차례가 돌아왔다. 마흔고개를 지나 다래숲동굴에 도착하니 다래넝쿨은 별로 없는데도 터널은 길게 이어졌다. 거기를 지나 진달래동산 입구에 만들어 놓은 휴게소에는 많은 사람들이 둥그렇게 모여 앉아서 음식을 먹기도 하고 쉬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다들 행복해 보였다.

 

진달래동산에서 산모퉁이를 돌아가자 큼직한 물레방아가 돌아가고 있고, 그 옆으로 계곡에는 어젯밤에 비가 많이 내려서 많은 물이 요란한 소리를 내고 흐르고 있다. 물레방아가 있는 떡방앗간에 들르니 떡매로 떡을 패기도 하고 물레방아가 돌면서 떡방아를 실제로 찧기도 했다. 우리는 시원한 식혜를 떡방앗간에서 한 잔 사서 마시면서 걸으니 산막이마을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우리가 주차장을 출발하여 산막이 마을까지는 쉬엄쉬엄 이것저것 구경하면서 걸었어도 1시간 2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산막이 나루터에는 배를 타고오는 사람, 또 배를 타고 가는 사람해서 많은 사람들이 북적였다. 주말에는 만 명이 넘게 다녀간다고 하지만 평일인데도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에서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명소 중에 하나임에는 틀림없다.

 

우리는 아직 시간도 있고 또 좀 더 걷고 싶은 욕심이 생겨 물가 쪽으로 나있는 양반길로 걷지 않고, 산막이마을 우측으로 나있는 수풀 속의 비포장 신작로를 따라 걸었다. 이 길은 걷는 사람이 없어 조용했다. 이름 모를 새소리와 풀벌레 소리가 가끔 적막을 깨는 것이 전부였다. 한길 가장자리로는 옻나무 단풍이 곱게 물들어 있고, 걷다보면 보이기도 하고 안 보이기도 하는 댐 건너 산에는 단풍이 요란하지도 않게 연붉은 감색으로 군데군데 물들여져 있다. 이렇게 호젓한 산길을 30여분 걷다보니 호수가로 몇 채의 집이 나오고, 입간판에 직진표시로 송문로산막이길이라는 표시가 있다. 좀 더 올라가서 왼쪽 길로 내려가면 굴바위농원선착장이고, 송문로산막이길 방향으로 직진하게 되면 흙길로 된 신작로는 끝이 나고 꼬부랑 산길로 올라가는 포장도로가 나타난다. 우리는 여기서 한적한 임도도보를 그만 두고 온 길로 되돌아서 산막이마을로 내려왔다.

 

산막이마을에서 입구로 나오는 데는 들어갈 때보다 시간이 많이 단축되었다. 들어갈 때는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가니까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나올 때는 미쳐 보지 못하고 지나쳤던 정사목(情事木)과 사과밭 한가운데로 나있는 길가에 해학적인 모습으로 조각된 석상들을 둘러보고 나왔는데도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오늘 우리가 걸었던 산막이길과 송문로산막이길로의 연장도보까지 합하면 약 12km의 거리를 3시간 40분 정도 걸었다고 보면 된다.

 

평일인데도 주차장에는 언제 그 많은 차량이 들어왔는지 차댈 틈이 없이 꽉 차있고, 수십 대의 관광버스도 들어와 질서정연하게 주차를 해놓은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처럼 괴산 산막이옛길은 충북뿐만 아니라 전국 방방곡곡에서 알아주는 명실상부한 명품길이 되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길을 아버지 제사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걸어볼 생각을 할 수 있었겠는가. 제사 지내고 올라가는 길에 산막이길을 둘러보고 가서 더 의미가 있다고 본다.

 

산막이옛길은 사시사철 어느 때 가도 좋지만 산 여기저기에 단풍이든 가을철에 가는 것이 가장 좋지 않을까 싶다. 아직 산전체가 단풍이 들지 않았지만 단풍이 절정인 이달 말이나 다음 달 초에 가서 그 길을 걷는다면 환상적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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