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행은 1년에 한두 번 봄,가을에 있는 정기적인 처갓집과의 단합행사였다. 어느 때는 다들 같이 해외여행도 하고 이번처럼 국내여행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올 봄은 강화도에 가서 처가 식구들과 같이 그동안 나누지 못한 정도 나누고, 또 강화도의 여러 곳을 다니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내 집에서 강화도까지는 차가 밀린다고 해도 한 시간 남짓이면 가고, 차가 밀리지 않을 때는 채 50분이 안 걸린다. 출발하는 날이 토요일이라 차가 밀릴 것을 대비해서 오전 9시가 되기 전에 출발했더니 차가 밀리지 않아서 강화도 갑곶돈대까지 50분 정도 걸렸다.
갑곶돈은 고려 고종 때 강화도로 도읍을 옮기면서 중요한 요새로서 한 몫을 하기도 했다. 몽골군 장군이 강화도로 건너가지 못하고 안타까워하며 우리 군사 갑옷만 벗겨 바닷물을 메꿔도 건늘 수가 있는데 한탄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 이후 조선 인조 때 강화의 여러 진이 설치되고, 숙종 때 축조 되었다. 1866년 고종 3년에 프랑스군이 쳐들어왔던 병인양요 때 가장 중요한 관문이기도 했다. 갑곶돈대에서는 수백 년 된 탱자나무가 유명하다.
갑곶돈대를 둘러보고 강화의 풍물시장으로 자리를 옮겨 시장구경을 했다. 가는 날이 장날(2일,7일)이라 풍물시장 들어가는 입구부터 차가 밀려 주차하는데도 30여분이 걸렸다. 간신히 주차를 해놓고 시장 여기저기를 둘러보다 쑥찐빵이 눈에 띠여 오천 원어치를 샀더니 한 보따리이다. 그걸 들고 옆을 돌아보니 밴댕이 회무침이 맛이 있다고 한다. 그걸 안주로 하여 강화의 특산품인 인삼쌀막걸리 큼직한 걸로 시켜 서너 잔을 마시니 역시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우리 보고 한 말 같다.
점심식사를 예약한 집이 풍물시장에서 1.5km 떨어져 있어서 식당으로 가다 보니 강화도 시내도 여간 복잡한 것이 아니었다. 식당은 금방 찾았지만 주차공간이 없다보니 몇 바퀴를 돌아서야 주차를 해놓고 식당으로 들어갈 수가 있었다. ‘신아리랑집“은 강화도에서 꽤 유명한 식당이고, 젓갈갈비정식이 아주 유명하다고 해서 그걸로 먹었는데 갈비정식은 맛있다고는 느끼지 못했지만 반찬은 깔끔하면서도 깊은 맛이 있었다.
우리는 보문사로 이동하기 위해서 외포선착장으로 갔다. 외포선착장에는 보문사로 가려고 길게 차량들이 줄지어 있었다. 얼마 기다리지 않아서 차체를 배에 싣고 10분 정도 가니 석모도 선착장이었다. 보문사까지는 7-8km 거리이지만 차가 밀리는 곳이 아니어서 채 20분이 걸리지 않았다.
보문사는 산라 선덕여왕 때 희정대사가 금강산에서 수행하다가 여기 와서 창건을 했다고 한다. 양양 낙산사, 금산 보리암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해상 기도도량이기도 하다. 석모도 보문사에는 빼놓을 수가 없는 눈썹바위가 있다. 길게 이어지는 400여 계단을 20분 가까이 올라가게 되면 바위가 눈썹처럼 튀어 나오고 큰 바위에 부처님이 계신다. 여기서 소원을 이루어 달라고 기도를 하게 되면 소원했던 바가 이루어진다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지성을 드리고 있다. 눈썹바위 올라가는 계단은 모두 419개의 돌계단인데 전에는 418개의 계단이었다. 지금의 대통령 어머니가 이 절을 중건했다고 하여 육영수 여사의 생일이 4월 18일이어서 418 계단이었다가 그 분이 돌아가시고 나서 계단을 하나 더 만들어 419 계단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 내용이 수년 전에 여길 왔을 때는 있었는데 이번에 가보니 그 내용은 없었다.
하루 종일 부지런히 돌아다녔더니 한꺼번에 피곤이 몰려왔다. 미리 얻어 놓은 팬션으로 자리를 옮겨 하루를 마무리 했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 바다 저 너머 수평선으로 떨어지는 붉은 하늘과 둥근 해는 이 낙조마을에서만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저녁모습이었다.
처남 내외들과 저녁 식사를 하면서 강화의 특산품인 인삼 막걸리도 마시고, 소주도, 와인도 마셨다. 바다를 내려다보니 까만 밤이다. 저 멀리까지 빠져 나갔던 바닷물이 언제 다시 들어왔는지 해안 둑까지 넘실거린다. 바람을 쐬기 위해 팬션을 나갔다. 여기저기서 개구리 울음이 귀가 시끄러울 정도다. 그렇지만 이 소리를 아주 오랜만에 들어 보는 것이어서 싫지 않고 정겹게 들리었다.
강화도에서 새로운 아침을 맞았다. 어젯밤에 있었던 해무는 거치고, 바다 저 멀리까지 다 보였다. 우리 일행은 아침을 먹고는 전등사로 자리를 옮겼다. 전등사는 고구려 소수림왕 때 아도에 의해 창건 되어 진종사로 불리어졌다가 그 후 고려 충렬왕비가 옥등을 시주한데서 전등사의 유래를 찾아 볼 수가 있다. 경내는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렸지만 조용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절이 들어선 건물이 크지 않고 뛰엄뛰엄 있는데도 편안하고 아늑해 보였다. 이 전등사에도 이번이 네 번 째 오는데도 몰랐던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게 된 것이 있다. 대웅보전 처마 네 곳의 모서리에 나체여인상이 조각되어 있는데 이 절을 지었던 목수가 절을 지을 때 사랑하는 여인이 도망갔다고 해서 그 여인을 응징하기 위해 그랬다는 전설이 있다.
우리는 다시 광성보로 이동해서 널찍한 자연공원으로 이루어진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광성보는 조선 효종에 의해 설치되어 신미양요의 가장 격렬했던 격전지이기도 하고, 또 미국의 로저스가 통상을 이유로 아세아 함대를 이끌고 들어와 초지진, 덕진진을 함락시키고, 광성보에서 백병전을 치루기도 했었다. 신미양요 전투에서 어재연장군과 휘하 여러 병사들이 전사해서 어장군은 음성 대소에 잠들어 있고, 병졸들은 정상으로 올라가는 중간 지점에 영면하고 있었다.
강화도는 오래전에 직장동료들과 같이 수련회 때도 왔었고, 세월이 많이 갔지만 마누라하고도 왔는가 하면 몇 년 전엔 초등친구들과도 왔었다. 그리고 작년에는 고등학교 친구와도 다녀왔으며 불과 한 달 전에도 와서 고려산 진달래꽃을 보고 오기도 했다. 이렇듯 강화도를 여러 번 갔었지만 가도가도 싫지 않고 또 가보고 싶은 데가 강화도이기도 하다. 이번 강화도 여행은 비록 짧은 여행이기도 하지만, 처가식구들과 같이 했다는 것이 큰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이번 행사를 위해서 몸도 불편한데 물심양면으로 아낌없는 지원을 해주신 안산처남댁과 바쁘신 가운데도 이것저것 많은 준비를 해주신 하남처남댁에게도 수고하셨다는 말씀과 고맙다는 인사말을 전한다.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족들과 평창을 가다 (0) | 2014.06.17 |
---|---|
원산도를 또 가다 (0) | 2014.06.11 |
4박 5일 원산도를 가다 (0) | 2013.06.04 |
큰아들내외와 같이 경주를 가다 (0) | 2013.05.30 |
초등친구들과 같이 통일전망대를 가다 (0) | 2013.03.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