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보

안양천을 걷다

강일형(본명:신성호) 2011. 1. 31. 23:27

 

 

 

 

 

날씨가 금방이라도 비가 올 듯한 날씨다. 북쪽 하늘이 시커멓게 변해 있는 걸 보면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북서 지역은 비가 내리고 있는 듯이 보였다. 우의나 우산을 가지고 나오지 않아서 오늘 도보하는데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내심 걱정이 된다.

 

당정 역에서 만난 우리 일행은 아파트 사이에 나있는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아파트를 벗어나니 그리 크지 않은 비포장 신작로가 나오고 그 옆에서는 김장 담그는 아줌마들의 손길이 바쁘다. 그렇게 바쁘면서도 우리 보고 김장 맛 좀 보고 가시오. 한다. 그 말이 많이 고맙긴 해도 거기서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여유가 있었다면 거기서 보따리를 풀고 김장 맛을 보면서 막걸리도 한 잔 같이 했을 것이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산길로 올라서니 사람들이 다니지 않아서인지 소복이 쌓인 낙엽에 발목까지 빠졌다. 낙엽은 이슬이 아직 마르지 않고 물기가 있어 미끄러웠다.

 

 한 시간 남짓 걸으니 길 양쪽으로 굵직굵직한 소나무들이 꽉 차 있다. 떨어진 솔잎을 밟으며 고개를 올라서니 사람 한 사람이 간신히 다닐 정도의 작은 오솔길에 참나무 낙엽으로 가득 덮인 길이 나왔다. 그 길옆으로는 지난 번 곤파스 태풍으로 뿌리 채 뽑혀서 자빠져 있는 아름드리 나무들이 수를 헤아릴 수 없다. 특히 피해가 많은 수종이 참나무와 아카시아가 주로 많았고, 간혹 소나무도 눈에 띄었다.

 

 거길 지나 조금 올라가니 오봉산 정상이었다. 오봉산은 그리 높지 않고, 경사가 완만하여 그 주위에 있는 주민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듯 했다. 올라갈 때도 사람들을 보았고, 내려가면서도 올라오는 사람들을 만났다. 마을이 보이는 곳까지 내려가니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시제를 지내는 모습이 보인다. 시제를 지내고 나서는 떡도 나누어 먹고 했던 옛날 어렸을 때 생각이 났다. 마을 길에 접어드니 텃밭에 심어 놓았던 배추를 할머니가 손질하고 있다. 아직도 가을걷이를 못한 배추, 무우, 파 등이 사람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고, 마을 들어오는 입구엔 수 십 마리의 사슴들이 뛰어 노는 농장도 보였다.

 

 포장된 도로를 건너 골우물 식당 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2-30분 걸으니 왼쪽으론 의왕시청이 보이고, 오른 쪽으로는 나지막한 산들이 이어졌다. 가을이 끝나가는 계절이라 그런지 어느 길이든 낙엽으로 뒤덮여 있다. 쌓인 양에 따라 차이는 있어도 원 없이 밟아보고, 귀가 따갑도록 낙엽부서지는 소리를 들었다.

 

산 능선을 타고 얼추 다 올라와서는 점심을 먹었다. 각자가 준비한 음식을 갖고 빙 둘러 앉았다. 우선 막걸리를 한 잔씩 따라서 목을 축였다. 땀 흘리고 난 후 마시는 막걸리 맛은 여느 때 마시는 막걸리 맛과는 비교가 안 된다. 그 시원하고 달콤한 맛을 잊지 못해서 나는 오늘처럼 걷거나 산에 갈 때 늘 챙기는 버릇이 생겼다. 밥 외에 군고구마, , 밤 등 웰빙식품도 보이고 김이 나는 오뎅국도 보였다. 원래 집에서 먹는 식사보다도 이렇게 나와서 먹게 되면 맛도 있고, 평소 음식 양보다 더 먹게 마련이다. 우리 삶 중에서 여러 형태의 즐거움이 있지만, 먹는 즐거움만큼 큰 즐거움도 없다. 갖고 간 식사도 맛있게 하고, 따뜻한 커피로 속을 달랜 후 또 걸었다.

 

점심을 먹고 나선지 한결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힘이 솟는다. 부곡 가는 대로가 나오고 도로 지하를 빠져 나와 야산 입구로 접어드니 외딴집이 보이고, 주인이 낙엽을 긁어 태우고 있다. 연기 속에 메케한 낙엽 타는 냄새가 우리 코를 자극했다. 그렇지만, 그 냄새가 크게 싫지 않았다. 거길 지나 조금 더 걸으니 애기단풍나무 군락지가 나오고, 길바닥에 떨어진 애기단풍 잎은 아직도 고운 모습으로 남아 있어서 밟고 지나가기가 아까울 정도다.

 

거기서 40분 정도 걸으니 골사그네라는 마을이 나왔다. 골사그네는 수원 가는 지지대 고개 가기 전에 바로 오른 쪽에 집 수가 몇 안 되는 마을이름이다. 그 곳에서 4-500m를 수원 쪽으로 올라가면 비닐하우스가 나오고 그 옆 조그만 도랑이 있는데 거기가 안양천의 시발점이다. 그 도랑이 개울이 되고, 큰 내가 되어 한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우리는 이 안양천이 시작되는 곳부터 고천, 군포, 안양까지 천을 따라 걸을 것이다.

 

우리는 다시 골사그네 마을 입구로 내려와 경수산업도로에 있는 커다란 육교를 넘어서 식당 뒤로 이어지는 개울 옆으로 길 따라 걸었다. 그곳에는 어디서 그렇게 많이 큰 단지를 준비했는지 담 옆으로 진열을 해 놓은 장독들이 마치 보물단지처럼 보였다. 물은 많다가도 적어지기도 하며 깨끗한 물이 이어져 흘렀다. 본격적인 안양지천으로 들어오자 개천 옆으로 흙 길이 아닌 시멘트로 포장한 길이 나왔다. 고천 2교쯤 오니 공장지대가 많아지고, 약간 물이 탁해 보였다. 오후 2가 되어 광명교를 지날 때는 자전거 타는 사람이 많아졌다.

 

우리가 걷는 길 옆으로 키가 작은 대나무들이 보이더니 고천 4교쯤 오니 키가 4-5m되는 대나무들이 길 양쪽으로 숲을 이루어 5-600m를 이어진다. 줄곧 들과 산에서 누런 모습만 보다가 진한 녹색의 대나무 숲은 지친 우리에게 생기를 주었다. 개천에 이렇게 무성한 대나무 숲이 있다는 것도 신기할 뿐만 아니라 장마 철에 이 대나무가 떠내려가지 않고 어떻게 생존하는지도 궁금하다. 40분을 더 걸어서 군포교에 오니 물이 넓고 맑다. 좀더 걸으니 호금교가 보인다. 넓고 맑은 물 위에는 청둥오리 떼가 유유자적하고 있었고, 그 바로 옆으로는 백로가 계절을 잊은 채 길 떠날 채비를 않고, 여유를 부리고 있다. 군포를 지나 덕천 마을쯤 오니 물은 많아지고, 양쪽으로 무성한 호디기(버드) 나무가 냇가를 뒤덮고 있고, 공터에는 갈대와 억새들이 빈 공간을 채워주고 있다.

 

멀지 않은 곳에 안양 비산대교가 보인다. 인덕원에서 내려오는 학의천과 안양천이 합류하는 곳이다. 우리는 잠시 쉬었다가 사진 촬영을 하고 인도행을 마쳤다. 나는 안양에서 30여년을 살았는데도 오늘 이 길을 걸어보지 못했다. 한사랑님이 아니었다면 영원히 걷지 못했을 것이다. 오전 10부터 오후 3시 반이 넘는 시간까지 수고해 주신 한사랑님께 진심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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