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보

매곡에 가서 임도(林道) 22km를 걷다

강일형(본명:신성호) 2011. 1. 29. 19:35

아주 오랜만에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한다는 생각에 어제는 잠을 설쳤다. 중앙선을 타 본적은 고등학교 다닐 때 양수리에 사는 친구네 집에 가느라고 탔던 기억이 전부다. 가까운 거리라서 그런지 차를 갖고 가던지 아니면 버스를 타고 갔었다. 청량리에서 7시 10 출발하는 기차를 타려면 안양에서는 적어도 새벽 5시 반에 출발해야 간신히 출발 시간을 맞추고 한숨 돌릴 시간이 있다.

 

 새벽에 집을 나서니 이젠 제법 쌀쌀함을 피부로 느낀다. 그나마 오늘은 다소 날씨가 누그러져 요새 며칠 전 기온보다는 올라갔다고 하니 걷는 데는 아주 최적의 날씨라고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해도, 오래도록 걷다 보면 땀도 많이 흘려 옷도 젖게 되고, 몸도 지치게 된다. 체력이 떨어질 때 체온관리를 잘 해야 감기를 예방할 수가 있다고 생각되어 가방의 부피는 커졌지만, 몇 가지 옷을 더 챙겨 넣었다.

 

청량리에 도착하니 일요일 이른 아침 시간인데도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아는 사람이 없다 보니 누구한테도 말을 붙이기도 그렇고, 조용히 가다가 아침을 해결해야 할 것 같아서 5호차 앞이 비어 있길래 거기 가서 간신히 아침 식사를 때웠다.

 

무궁화호 열차로 한 시간 남짓 달렸는가 싶더니 어느새 매곡역에 도착했다. 열차에서 내리니 입에서 하얀 입김이 나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한테서 나온다. 그건 날씨가 도회지와 많이 다르다는 걸 알려주는 신호다. 그래도 숨 쉴 때 편안한 걸 느낄 수 있는 것은 도회지를 벗어나 산과 수풀이 있고, 오염이 안된 시골이다 보니 우리가 마시는 공기가 깨끗하다는 걸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이렇게 서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청정지역으로 오지가 있다는 것은 도심 속의 찌든 삶을 살아가는 도시인들한테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다. 공해, 소음, 빌딩, 사람들, 자동차 등 그 속에 파묻혀 살다가 여기 와서 깨끗한 공기와 편안한 마음으로 에너지를 재충전해 갈 수 있다는 것은 선택 받은 사람들이나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닐까? 오늘 우리는 몇 안 되는 특권을 받고 매곡에 온 것이다.

 

매곡역은 역무원이 한 명도 없는 조그맣고 보잘것없는 시골역이다. 출발하기 전 우 리는 30명이 빙 둘러서서 간단히 자기 소개를 했다. 그렇게 첫 대면을 마친 뒤 역 을 빠져 나와 조금 걸으니 마을길이 나왔고, 거길 지나고 얼마 안되어 임도가 시작   되었다. 오르막은 완만하게 시작되었고, 처음이라 그랬는지 모두 조용히 걸었다. 오 르막이라 걷기 얼마 안되어 금방 땀방울이 얼굴에 맺히고, 등에서도 흘러내렸다.

나만 그런가 하고 언덕을 올라와서 잠시 휴식을 취할 때 둘러보니 모두들 땀을 닦느라고 난리다혼자 걷는다면 이렇게 힘든 길을 못 걸을 것이다. 같이 걸어줄 사람이 있고, 걸으며 무슨 얘기든 나눌 사람이 있기에 힘든 것도 잊고 걷고 또 걸으며 행복한 마음이 드는 것이 아닌가. 오늘도 이렇게 같이 걸어준 친구들이 있어서 고맙게 생각했다.

 

그 전에 할 얘기가 있는데 안양에서 전철을 타고 가다가 보니 바로 앞에 앉아 있는 아줌마가 어린 아들을 데리고 가는 걸 유심히 보았는데 아들과 같이 간 친구를 매곡 역에서 만나게 될 줄을 어떻게 알았던가. 엄청 반갑게 꼬마를 만나 인사를 나누고, 그 친구와 사뭇 같이 임도길을 같이 걸었다.

 

빙글빙글 산길을 돌고 돌아 한참을 걸었다. 그런데 군데군데 나무를 벌목하여 보기 흉한 모습으로 우리 시야에 들어왔다. 오르막 내리막을 하면서 계속 걷다 보니 걷기 좋은 산길, 흙길도 있고, 자갈이 깔리어 걷기가 좋지 못한 길도 있다. 어떤 길은 낙엽이 쌓여서 발자국을 뗄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기도 했다. 낙엽 밟는 소리는 혼자서 들으면 그런대로 아름답고 추억을 더듬게 하지만 여럿이 걸을 땐 그렇지를 못했다. 그래도 오늘 처음 임도 길을 걸으면서 겁을 많이 먹었었는데 와보니 일반 둘레길 보다 더 편안하고 걷기가 쉬웠다. 나는 공지 사항에 평지 길을 걷던 사람은 오지 말라고 했고, 20km 상만 걸은 사람만 오기를 바란다고 했을 때 가야 되는지 아니면 여기서 가는 것 자체를 거두어 드려야 하는지 매우 고민을 했었다. 실제로 와보니 너무도 좋았다. 산속이다 보니 조용하고 경치 또한 좋다. 이렇게 산속 깊숙이 오랜 시간을 걸어 들어와 먼데를 내려다 보니 가까이, 멀리 더 멀리 산이 보인다. 이걸 보고 첩첩산중이라고 하는가 보다

 

우리는 산 속 한가운데 길 가장자리에다 길게 돗자리를 펴고 양쪽으로 둘러 앉아 정성스럽게 준비한 점심을 먹었다. 가지각색의 식사였다. 쌀밥, 잡곡밥, 김밥 등 다양한 음식이 나왔다. 그리고,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골고루 맛을 볼 수가 있었다. 아주 맛있게 점심을 먹고 후식으로 과일까지 먹고, 거기에다가 따뜻한 커피까지 마시니 어디에서 이런 풍성한 식사를 할 수 있단 말인가. 더구나 이런 첩첩산중에 와서 말이다

 

매곡 역에서 걷기 시작하여 고개를 넘고 굽이를 수도 헤아릴 수 없이 돌고 돌아 우리는산을 내려와 포장된 도로를 따라 2km 가까이 걸어서 양동초등학교까지 왔다. 거기서 한참을 기다렸다가 용문 가는 버스를 타고 올라오니 용문에서는 서울 쪽으로 올라오는 전철이 급행도 있고 완행도 있었다

 

아주 오래 전이기는 하지만, 마누라하고 용문에 있는 용문사를 간 적이 있었다. 그때만해도 용문에 전철이 들어올 줄 누가 알았던가? 그러니 아무도 앞일을 알 수가 없다.

 

다 이런 길을 걸은 것이 여연 선생께서 인도해주신 덕분이고 여연 선생의 부군께서 앞에서 그리고 뒤에서 이끌어 주신 덕택에 무사히 임도 도보여행을 마칠 수가 있었다. 지난 주에 중국 장가게를 다녀온데다가 어제는 송파 마천동에서 남한산성을 올라가 수어장대로 돌고 내려와 송파에서 뒷풀이를 하다 보니 늦은 밤까지 있었다. 집에 와서 두 시간을 자고 오늘 매곡을 갔었는데 처음 만나 서먹서먹하던 것을 풀어준 친구가 이즘님이었다. 이즘님께 오늘 많이 고마웠다는 인사말을 남기고 싶다.

 

청량리에서 너 대명이 뒤풀이를 했다. 간단히 한다는 것이 2, 3차로 이어지다 보니 많이는 아니지만 오버를 한 건 분명하다. 그러다 보니 글이 횡설수설한 것 같아 민망하다. 원래 술을 조금만 했으면 지금 쓴 글 보다는 더 나은 글을 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또 만납시다. 한 번 만날 땐 서먹서먹했지만 두 번 만나면 악수하며 반가워 할 테고, 세 번 만나면 그 땐 포옹도 할 수 있을 텐데…… 그런 날이 있기를 바라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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