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청계산둘레길을 걸었다. 지난 일요일 밤에 많은 눈이 내린데다가 어제도 적잖게 또 눈이 내려서 산과 들이 온통 백색으로 변했다. 아침을 간단히 먹고 집을 나선 시간이 9시 반이었는데 카페 도보모임 장소가 인덕원역이라서 여유가 있었고, 늑장을 부려도 약속시간인 10시까지는 충분히 갈 수가 있었다.
우리는 인덕원에서 만나서 청계산 올라가는 입구에 있는 원터마을까지는 버스로 이동을 했고, 본격적인 도보는 하우현성당을 둘러본 후였다. 하우현성당은 우리가 보고 생각했던 그런 성당이 아니고 시골에 있는 교회당처럼 작고 초라한 성당이었다. 청계산 넘어가는 길을 오래도록 숱하게 다녔으면서도 오늘처럼 이렇게 직접 성당에 들어와서 둘러보기는 처음이다. 성당입구에는 김대건신부의 초상화가 가운데 있고, 좌우로 외국인 신부초상화가 보였다. 성당 오른 쪽으로는 사제관이 있는데 본당과는 달리 한옥으로 져서 그런지 고풍스럽다. 하우현성당이 여기에 있게 된 이유는 19세기 초에 천주교도들이 박해를 피해 청계산과 광교산맥을 잇는 구릉지대로 피신했다가 1894년 목조건물로 성당을 짓고 미사를 보다가 지금의 건물은 1965년에 성당을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른다고 한다. 하우현성당은 지난 2001년에 경기도 기념물 176호로 지정되었다.
우리가 오늘 걸어야 할 코스는 약 10km 남짓 거리로서 하우현성당을 출발하여 청계골 고개를 넘어 청계계곡을 건너 다시 무재봉고개로 올라갔다가 제비울과 사기막골을 경유하여 문원체육공원으로 해서 과천역까지 가는 코스이다.
하우현성당을 빠져나와 마을길을 지나 산길로 접어드니 눈이 참, 많이도 쌓여있다. 날씨가 춥지 않아서인지 눈이 굳지 않아 발짝을 떼어놓을 때마다 그냥 발목까지 푹푹 빠졌다. 청계골 고개를 넘어서니 응달이라서 그런지 며칠 전에 내린 눈과 어제 밤에 내렸던 눈이 고스란히 쌓여 있어서 설국이 따로 없었다. 지나가는 길, 서 있는 나무, 솟아오른 바위 등 여기에 있는 어느 것하나 폭신폭신하고 소담스런 하얀 눈 이불을 덮지 않은 것은 없었다. 도시 가까운 야산에서 이런 설경을 본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데 우리에겐 대단한 행운이었다. 원래 소백산이나 태백산, 아니면 선자령이나 가서 그것도 운 때가 잘 맞아야 볼 수 있는 겨울의 진풍경을 우리는 이렇게 도회지 근처의 야산에서 보면서 감탄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청계계곡까지 내려오는 내내 즐거워하기도 하고, 눈 속에 파묻혀 황홀해 하면서 눈길을 걸어 내려왔다.
점심은 청계사 들어가는 입구에서 일부는 곤드레밥을 시켜서 먹고, 일부는 비지장을 시켜서 먹었다. 밥이 늦게 나오는 바람에 식당에서 많이 지체하기도 했지만, 점심을 먹고서 바로 출발하여 과천의왕 고속도로길 옆으로 나 있는 마을길을 따라 걷다가 얼마 안 걸어 무재봉 고갯길로 접어 들었다. 무재봉 고개는 앞서 넘었던 청계산 고갯길보다는 좀 길은 듯 했다. 초행자가 몇 명이 있다 보니 올라오는 길이 힘이 달렸는지 서너 명이 뒤쳐져 오기도 해서 고갯마루에 올라서서 휴식을 취했다. 휴식을 취하던 일행 중 몇 명은 눈의 유혹을 도저히 뿌리칠 수가 없었는지 깔판을 꺼내어 눈썰매를 타기도 하고, 또 한편에서는 쌓인 눈을 뭉쳐 눈싸움을 하기도 했다. 다들 나이가 지긋한데도 눈썰매와 눈싸움을 하면서 엄청 좋아하는걸 보면 아무리 나이가 들었어도 천진난만한 것은 사람이기에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길지 않은 산길을 내려오면서 그 짧은 시간에 자연에 대한 고마움, 특히 내린 눈이 우리들한테 얼마나 많은 즐거움과 큰 기쁨을 주었는지 새삼 느꼈다.
고갯길을 다 내려와서는 싸갖고 갔던 간식들을 다 꺼내어 같이 나누어 먹으면서 휴식을 취했는데 그 옆으로는 동네도 있고, 비닐하우스도 보였다. 바로 여기가 제비울이다. 지금까지는 산길로 이어진 눈 쌓인 길을 걸었다면 앞으로는 앞서 산에서 걸을 때 보았던 감탄할만한 설경은 기대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마을길과 언덕길을 번갈아 걷다 보니 사기막골이 나오고 포장길을 따라 한참을 걸으니 문원체육공원이 나왔다. 그리고 거기서 과천역까지는 얼마 안 되었다.
코스는 길지 않고 대체로 평이한 길이지만 워낙 많은 눈이 쌓여 있어서 시간이 평소보다 많이 걸렸다. 평생을 살면서 도회지근방에서 이런 겨울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은데, 감탄할 정도로 아름다운 설경을 운 좋게도 보게 되어 기분이 너무 좋다. 사실 지난 일요일날 집에서 샤워를 하다가 미끄러져 넘어져서 여기저기 절리고 쑤셔서 이번 도보에 올까말까를 망설였었는데 오기를 참, 잘 한 것 같다. 오늘 이렇게 좋은 길 안내를 해주신 ‘인도행’의 산시조 대장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같이 걸어준 길벗께도 고맙다는 인사말을 전하여 본다.
**오늘도 글을 쓰다가 말고 낮에 나갔다가 조금 전에 들어와서 이렇게 늦은 시간에 마무리를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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