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1박 2일 일정으로 강원도 인제에 있는 연가리골과 곰배령을 다녀왔다. 철지난 피서라기보다는 평소에 꼭 한 번은 가봐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여건이 여의치 않아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번에 산악회에서 가는 일정이 있어서 이른 새벽부터 비는 부슬부슬 내리는데 집을 나섰다.
요즘 계속되는 때늦은 장마로 집사람뿐만 아니고 주위사람들까지 걱정을 하는데도 집을 나서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토요일은 잘 참아줬고, 일요일은 아침에 가랑비가 내리다가 산에 올라갈 무렵에서는 그쳐서 비 때문에 겪은 어려움은 없었다.
강남 신사역에서 오전 7시에 출발한 버스는 경춘 고속도로를 거침없이 달려서 중간중간 쉬었다 갔는데도 인제군에 있는 기린면소재지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예정대로라면 기린면소재지를 지나서 조금 가게 되면 산고개가 너무 높아서 새들도 자고 간다는 ‘조침령’ 고개가 나오는데 조침령부터 산행을 시작하여 백두대간 길을 따라 걷다가 연가리골샘터에서 연가리골로 내려올 예정이었지만, 일행 중에 산행초보자도 더러 있었고, 몸이 불편한 동행자도 있어서인지 조침령까지 가지 않고, 쇠나드리에서 버스를 세우고, 산행준비를 했다.
우리가 인원을 점검하고, 산행준비를 마치고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 것이 채 11시가 되기 전이었다. 시멘트로 된 작은 개울의 다리를 건너 얼마 안가 잘 지은 농촌주택이 나왔다. 일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밭에 있는 고추, 들깨, 배추 등이 우리를 맞이한다. 그 집을 지나치면 계곡을 따라 산길로 이어지는데 오랫동안 내린 장마로 땅도 물러져서 길 가장자리가 무너져 내린데다가 여기저기 넘어져 있는 나무들을 이리저리 피해서 올라가야 하니 힘도 힘이지만 시간이 꽤 걸렸다. 백두대간 길로 접어드는 ‘쇠나드리삼거리’까지가 1km 안팎인데도 많은 땀을 흘려야 했다. ‘쇠나드리삼거리’는 지고가 703m나 되니 서울 근교에 있는 산에 비하면 꽤 높은 편이다. 우리는 그곳에서 한숨 돌리고 다시 걷기 시작해서 ‘황이리갈림길’을 지나 ‘나랑불이삼거리’까지 능선을 오르락내리락하며 걷고 또 걸었다.
‘나랑불이삼거리’에서 잠시 쉬고는 1061m 고지가 있는 긴 오르막의 산길로 이어졌는데 우리가 걷는 백두대간 길 중에서 가장 힘든 코스였던 것 같다. 그렇잖아도 이 길을 걷기 위해서 지난달 말부터 뒷동산으로부터 시작해서 삼성산, 천마산까지 오르내리며 다리 힘을 바짝 올려놓았는데도 올라가는데 가쁜 숨을 몰아쉬며 힘겹게 올라가야 했다. 더구나 산이 흙산이라 땅이 질척거려 더 힘들게 했는지도 모른다. 1061m 정상에서 밑으로 내려다보니 비가 오지 않았는데도 구름이 산 7부 능선에 안개 낀 것처럼 걸려 있다. 좀처럼 여느 산에서 볼 수 없는 장관이 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사진 몇 장을 찍고 모퉁이를 돌아서니 긴 오르막 산길을 넘느라고 허기졌는지 일행 중에 몇몇 사람들은 싸갖고 간 점심을 먹는 사람도 눈에 보였다. 나는 조금 더 걸어서 1005m의 ‘연내골사거리’를 막 지나 내리막길에서 우리 일행을 만나 점심을 같이 했다. 너무 많은 땀을 흘려서인지 밥맛이 좋다고는 썩 느끼지 못했는데도 싸갖고 간 ‘인제막걸리’ 한 잔은 흘린 땀을 식히고, 피로를 풀기에 충분했다. 일행과 같이 한두 잔씩 나눠 마시고 또 길을 재촉했다.
여기서부터는 완만한 내리막이다. 956m의 삼각정을 지나 805m의 연가리골샘터를 지나면 이제부터는 연가리골로 내려가는 긴 계곡길이 이어진다. 걸은 지가 4시간이 넘어서자 발짝을 떼기가 쉽지가 않다. 계곡 길은 물소리, 새소리, 매미울음소리와 이름 모를 풀벌레 울음소리가 있어서 심심하지는 않은데 걷는 길이 많이 험하다. 장마에 떠내려간 길을 이리저리 찾아서 걸어야하고, 징검다리도 없는 계곡물을 숱하게 건너가기도 해야 했다. 큰 나무들이 넘어져 길을 막고 있는 데는 나무 밑으로 간신히 빠져 나가든지 아니면 빙 둘러 가야했다. 한참을 그렇게 정신없이 내려오다 보니 꼬 끝에 짙은 향기가 닿는다. 잠시 서서 주위를 둘러보니 하얀 들꽃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여기가 아니면 어디서 저런 들꽃향기를 맡아 볼 수가 있을까. 꼭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가 한꺼번에 향기를 내뿜는 듯 했다.
내려오는 길이 약 6km 가까이 되다 보니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또 선두 그룹이어서 다소 여유가 생기기도 해서 큰계곡물이 아닌 갈래 계곡에서 우리가 걷는 길을 가로질러 흘러내리는 맑은 물에 발을 담구었다. 채 1분도 안되었는데 발이 시리도록 시원하다. 그렇게 물에 넣다말다를 반복하고 있는데 일행이 내려오면서 “신선이 따로 없네! 신선노름 한다.”면서 내 옆을 지나친다. 우리 일행이 얼추 다 내려 간듯하여 벗었던 양말과 신발을 다시 신고 부지런히 2-30분 내려오니 진동리 내린천 상류가 나왔다.
예상했던 것보다 다소 힘들고 험한 산행이었지만, 오기를 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또 다시 올 수 있을지 장담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비록 부분적이지만 백두대간을 걸으며 그동안 잊고 지내던 ‘호연지기(浩然之氣)'의 꿈도 생각할 수가 있었고, 찌든 도회지 생활에서 잠시 벗어나 건강도 챙겼다고 생각하니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숙소에 들어와서 씻고 잠시 있으니 나물부페로 된 저녁상이 나왔다. 도회지에서는 좀처럼 구경도 할 수 없는 각종 나물이 즐비하게 차려져 있다. 젊은 사람들 입맛에는 잘 맞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그 보다 더 훌륭한 밥상은 없다. 아주 모처럼만에 입에 맞고, 맛있는 식사를 했다. 더구나 저녁을 먹으면서 반주로 한두 잔 하다 보니 저녁을 다 먹고도 이어져서 몇몇 분들과 좋은 시간을 같이 했다. 이번뿐이 아니고 산에 다니다 보면 누구든 스스럼없이 금방 말벗이 되고 친구가 된다. 그만큼 격의가 없어서 좋다는 얘기이고, 오직 산에 다니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작은 행복이 아닐까 싶다.
늦은 밤이 아닌데도 달이 중천에서 밝게 빛난다. 구름이 벗어졌는지 별빛도 찬란하다. 이렇게 곰배령의 밤은 조금씩 깊어 갔다.
이튿날이다. 오늘은 7시 반에 아침식사여서 어제 내려올 때보다는 한참 여유가 있었다. 그런데 어젯밤 하늘에 별이 총총하던 것과는 달리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다. 일기예보에는 비가 온다는 얘기가 없었는데도 비가 내렸다. 내리던 비는 오래 되지 않아 그쳐서 아침을 먹고 팬션을 나설 때는 우의만 가방에 넣고 나갈 수가 있었다. 숙소에서 곰배령 들어가는 입구까지는 걸어서 5분 남짓 걸렸다.
곰배령생태공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입산허가를 받아야만 들어갈 수가 있다. 방법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인터넷으로 산림청에다가 신고를 하고 허가를 받아서 들어가든지, 아니면 이 근처에서 숙박을 하고, 숙박한 사실을 확인하여 들어가야 한다. 인터넷으로 예약을 해서 들어가기 위해서는 매달 20일 9시부터 다음 달 예약을 받는데 하루에 200명까지만 가능하기 때문에 발 빠른 대처가 필요하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얘기를 한다면 인터넷예약자든 이곳에서 숙박을 한 사람이든 주민등록증을 꼭 지참해야 번거로움을 피할 수가 있다. 참고로 입산 시간은 하절기는 오전 9시에 60명,10시에 60명,11시에 80명 3번이 입장이 되고, 동절기는 10시와 11시에 두 번의 입장이 가능하다. 그리고 매주 월요일과 화요일은 휴무라서 입산을 할 수가 없다.
우리는 길게 줄을 서서 점봉산생태관리센타 관계자의 주의사항을 듣고, 입산확인을 받아 안내자와 같이 걷기 시작했다. 좌측에 있는 계곡으로 많은 양의 계곡물이 소리내어 흐르고 있고, 올라가는 길은 우마차가 다닐 정도의 좁은 비포장 길이다. 밋밋하게 오르막으로 이어지는 곰배령 가는 길은 양쪽으로 원시림처럼 굵직굵직한 나무들이 꽉 배겨 있다. 이런 길이 강선마을을 지나 초소 전까지 이어졌다가 우마차 길은 초소 앞에서 없어지고 오가는 사람이 간신히 피할 수 있는 좁은 산길로 들어서게 된다.
올라가면서 보면 여기저기 고목이 되어 쓰러져 있는 나무들을 쉽게 볼 수가 있다. 치우지 않고 자연생태 그대로 내버려 둬서 정말 수천, 수만 년 전의 고생대 때 산 모습을 보는 기분이 들 정도이다. 이렇게 나무가 우거지고, 걷기가 좋은 산길은 입구부터 쉼터가 있는 곳까지 4km 가까이 계속되다가 약 1km 정도를 남겨 놓고는 경사가 있는 길을 올라갸야만 하늘이 뻥 뚫린 곰배령에 도달하게 된다. 노약자나 아이들이 여기를 올라갈 때 말고는 아주 편안하게 걸을 수 있다. 다만, 곰배령 정상 부분 오르막길에다가 돌을 깔아 놓아서 비가 온다든지 비온 끝에는 물기를 먹은 돌이라 미끄러지기가 쉽다. 나도 내려올 때 스틱을 집고 내려왔는데도 엉덩방아를 한 번은 찧어야 했다.
곰배령야생화단지는 유네스코 지정 자연유산에 등재될 만큼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보물이다. 이 소중한 재산을 우리의 후손들에게 고스란히 물려주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희생이 필요하다. 그래서 올라가는데도 들어가지 못하게 줄을 쳐놓고, 곰배령 정상에서도 헬기이착륙장 외에서는 휴식이나 음식물을 먹을 수가 없게 해놓았다.
땀을 흘리며 정상에 올라서니 양쪽 산 구릉지가 모두 들꽃 밭이다. 잔잔한 들꽃들이 각양각색으로 자태를 뽐내며 우리를 맞이했다. 지금은 꽃피는 제철이 아니라서 꽃이 많이 졌다고 안내자가 얘기하는데도 무수히 많은 꽃들이 피어 있었다. 참으로 대단한 들꽃들의 향연이었다. 관람로를 따라 위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니 산림남녀장군이 탁 버티고 있다. 이 남녀장승이 여기에 이렇게 버티고 있는 한 곰배령은 지구의 역사와 같이 할 것이라고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오른 쪽으로 눈을 돌려 먼 산을 바라보니 가깝게는 1424m의 점봉산 정상이 있고, 그 뒤로 보이는 산이 바로 설악산 대청봉이라고 한다. 우리는 헬기착륙장에서 가지고 간 과일과 음료를 마시며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바로 하산 길에 올랐다.
올라 갈 때는 한 번을 쉬고 갔는데 1시간 40분 정도 걸렸다. 내려올 때는 쉬지 않고 곧장 내려와서 20분 정도가 단축되었다. 평소 성인의 걸음으로 걸었을 때 곰배령까지 갔다 오는 데는 적어도 3시간은 소요된다고 본다. 거리로는 왕복 10km이다. 예상시간보다 좀 일찍 내려와 점심 식사 전후로 해서 시간이 있었다. 숙소 바로 옆이 개울이 있어서 시원한 물에다 발을 담그고 한참을 여유를 부렸다.
곰배령에서 점심을 먹고 바로 출발을 했는데도 올라오는 길은 경춘고속도로가 얼마나 밀리는지 평소보다 두 배 이상이 걸렸다. 서울까지 7시간 가까이 걸려서 신사역에 도착했지만, 피곤하고 지루하기 보다는 그 어떤 여행이나 산행에서 느낄 수 없는 기억에서 오래 남을 추억거리와 또한 즐거움이 있었기에 밀리는 고속도로가 크게 원망스럽지 않았으며, 이것도 우리가 여행 다니면서 감당할 몫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양 이틀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우리를 위해서 고생하신 산수산악회 ‘여행도령’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이틀 동안 같이 걸어준 여러 친구들께도 고맙다는 인사말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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