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은 잔뜩 찌푸려 금방이라도 비가 올듯한 날씨다. 우의나 우산을 챙기지 않아서 비가 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렇게 우중충한 날씨에 비라도 맞는다면 오늘 집을 나온 걸 많이 후회하지 않겠는가
청량리에 도착하여 회기동 쪽으로 150여m 이동하니 남양주를 걸쳐 평내 호평동 쪽으로 가는 165번 버스가 있다. 그 말고도 마석 가는 좌석 버스도 보이는 데 좌석 타는 것보다는 일반 버스를 타고 호평동에서 수진사를 걸쳐 상명대 생활관으로 올라가는 것이 가장 완만하고 걷기가 낫다고 해서 그 길을 택해서 가기로 했다. 버스로 청량리에서 호평동까지는 한 시간 남짓 걸렸다.
가을이 가고 초겨울이라 그런지 일요일인데도 산 입구 길은 한산하다. 어디서 왔는지 관광버스 한대가 등산객을 풀어놓았지만, 길 걷는데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는다. 다만,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고, 도로 포장을 하고 있어서 오히려 그런 장비와 일하는 사람들이 걷는 걸 방해할 뿐이다. 걸은 지 얼마 안되어 수진사가 좌측으로 보이고 천마산 올라가는 입구가 나왔다. 천마산은 아주 오래 전에 고등학교 다닐 때 친구들과 왔었다. 그때도 지금처럼은 아니고 이보다는 조금 빠른 11월 중순으로 기억된다. 친구 너 댓 명과 같이 천마산을 왔었는데 하룻밤을 입구에서 A텐트 하나를 치고 잔 적이 있다. 자다 보니 발이 밖으로 나오고 추워서 고생을 한 기억 밖엔 없다.
올라가는 길은 도로 포장이 되어 있다. 상명대 생활관쯤 올라오니 포장 길도 있고, 그 옆에 개울 따라 산길로 걸어 올라갈 수도 있게 해 놓았다. 올라가다 보면 산길과 포장길이 겹치기도 하고, 엇갈리기도 하며 같이 간다. 그러다가 산길과 포장길이 만나서 같이 가다가 아예 포장 길은 없어지고, 비포장 길로 접어 들게 되는 데 여기부터가 경사가 가팔라진다. 가파른 경사는 걸음을 늦추게 한다. 더구나 계단이 여름철 장마에 덮인 흙이 많이 떠내려가서 계단이 한없이 높기만 하다. 계단 옆 흙 길을 택해 보지만, 얼었다 풀렸다 해서 그런지 땅바닥이 많이 질다. 신발에 흙이 들어 붙으면 잘 떨어지지도 않고 무겁게 붙어 다닌다. 천마산이 서울에 북한산하고 비슷한 높이니 올라가는 가는걸 쉽게 허락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은 했어도 올라가는 길이 너무 험하다. 그런데다가 올라갈수록 안개가 더 끼고 바람이 세차게 불어서 힘이 배로 들었다. 쉬지 않고 부지런히 시간 반을 올라가니 큰 바위가 보이고, 바위 옆으로 깎아지른 듯한 계단이 나온다. 가뿐 숨을 몰아 쉬며 올라가 정상인가 하면 정상이 아니다. 그렇게 몇 번을 속이더니 정상이 나왔다. 정상에 올라가니 바위가 이리저리 보이고, 그 가운데 천마산 정상이라는 표시가 있고, 그 옆으로 국기가 펄럭인다.
참으로 감개무량하다. 고등학교 때 와 보았으니 무려 4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고 가까운 곳인데도 정상까지는 가지 못했다. 이번 등산은 겨울등반이라고 하지만, 12월 초다 보니 올라가는 내내 눈은 보이지 않고, 땅이 질척거린다. 천마산에 눈이 내려서 나무도 산도 온통 눈으로 덮인 모습은 어떨까? 그 때 한 번 와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하산을 서둘렀다. 가파른 경사 길을 다 내려와 평평한 곳이 나오길래 늦은 점심을 먹었다. 늘 그랬듯이 산에 와서 먹는 음식은 맛이 있다. 그렇다고 특별한 반찬도 아니고 집에서 먹던 반찬을 주섬주섬 싸왔는데도 밥맛은 그만이다. 그런데다가 반주로 막걸리 한 잔을 곁들이니 마치 개선장군이라도 된 듯 기분이 좋아진다. 이런 좋은 기분이 오래 가길 바라면서 산을 내려오니 어느새 마을 어귀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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