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침부터 지금까지 하루 종일 심란하고 꼭 죄를 짓는 것 같아서 내가 인생을 잘 못 산건지 아니면 망자가 생전에 잘 못한 건지 내 생애에 처음으로 엄청나게 번민을 한 하루였다.
아침에 동생으로부터 부고를 받았다. 부고를 받은 고인은 내 재당질이다. 재당질들이 여럿이 있었지만 다들 50대 전후에 세상을 떠났고, 이제 한 분 남은 재당질이었다. 그런데 그 재당질의 형제가 여섯 형제였는데 이제는 다 죽었지만 이번에 유명을 달리한 재당질이 제일 큰 형님이었고, 무슨 이유였는지 모르지만 동생들 다섯을 앞세우고 나서 마지막으로 가셨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얘기를 한다면 고인의 큰 아들, 막내아들도 앞세웠던 재당질이었다. 고인의 동생 다섯이 이 세상을 버릴 때도 청주로 문상을 갔었고, 그 두 아들이 죽었을 때도 청주로 가서 문상을 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내가 서운했던 것은 지난 1월에 내 작은 아이 결혼할 때 청첩을 했었는데도 오지도 않고, 부조도 없었다. 그러면 자기가 몸이 아팠다면 아들한테라도 얘기를 해서 꼭 가봐야 할 자리이니까 너라도 갔다 오거라 해야 어른으로서 할 도리가 아니겠는가? 그렇게 인생을 사신 내 재당질이지만 망자이기 때문에 참, 서운했어도 그 마음은 잠깐이어서 오늘 점심을 먹고 청주를 갈까하다가 못가고 시간이 지나서 오후에 어디를 갔다가 와서 청주 가는 버스가 있어서 급하게 씻고 막 나서려고 하니 마누라가 난리를 친다. 어머니한테 전화를 해서 바꿔주고, 충북 미원에 있는 형수한테 전화도 하고 그러면서 가지 말라고 말린다. 그래도 마지막 가는 재당질한테 잘 가시라고 인사는 해야 되는 건 아닌가.
결국은 가지 못했다. 그건 생전에 자기가 한 행실에 대한 자업자득이라고 남들은 쉽게 얘기를 하더라도 내 일가라서 그런 말은 듣는 건 싫다. 아무튼 유명을 달리한 내 재당질, 당신이 태어나고 성장했던 고향인 텃골에 영혼이 머물더라도 당신의 육체는 ‘고추골산’에서 편안하게 영면하시길 바란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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