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비가 오는데도 집을 나섰다. 재경중학교동기생들과 같이 1박2일 일정으로 충북 미원에 있는 옥화대로 가서 저녁을 같이하고 소주도 한잔씩 나눴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도 있었지만 대부분 가끔은 보는 친구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가운데 초저녁부터 비우기 시작한 소주잔이 밤이 깊었는데도 끝날 줄을 모른다. 그냥 세상 돌아가는 얘기이고, 허접스러운 얘기인데도 신이 나고 재미나서 시간가는 줄을 모르고 이어졌다. 이래서 친구가 좋은가 보다.
어젯밤 늦게 잠자리에 들었는데도 오늘 아침은 더 일찍 일어났다. 열어놓은 창문으로 얼마나 새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는지 드러누워 더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일어나 바깥을 나가니 도회지에서 맞는 아침과는 사뭇 다르다. 다리 밑으로 개울물이 가득히 흐르고 있고, 다리 너머로 보이는 산은 푸르름이 더욱 선명하다. 잠시 산과 들 그리고 냇가를 둘러보고 아침 식사를 하니 안 들어갈 것 같았는데도 한 그릇을 다 먹었다.
오늘 일정은 서울에서 내려온 우리일행과 청주 친구들이 같이 만나서 점심을 같이 하기로 했다. 그런데 시간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으니 여기에서 모임장소로 바로 가지 않고, 약 4km 되는 거리에 청천의 송시열선생 사당과 묘가 있는 곳을 들렀다가 가면 시간이 맞을 것 같아서 거길 갔다. 어젯밤 우리가 자고 먹은데서는 차로 10여분 걸렸다. 입구에는 사당이 있고, 그 옆으로는 크고 오래된 은행나무가 보인다. 바로 옆에는 지은지가 얼마 안되어 보이는 재실집이 있었다. 사당 옆으로 산길이 나있는 데 돌로 만든 계단을 따라 10여분 올라가니 송시열 선생의 유택이 나왔다. 우암선생은 1607년에 태어나 1689년, 우리 나이로 83세에 돌아가신 조선의 대표적인 유학자이고 정치가였다. 우리나라 학자 중에 "자(子)"를 붙인 유일한 인물로 역사상 가장 방대한 문집인 '송자대전'을 남겼다. 송선생의 나이 83세 때 숙의 장씨가 아들(경종)을 낳아 원자의 호칭문제로 서인이 실각하고 남인이 재집권하였는데 우암선생은 왕세자 책봉이 시기상조라며 반대하다가 제주도로 유배되었다가 다시 서울로 압송되던 중 사약을 갖고 내려오는 금부도사와 정읍에서 만나 사약을 마시고 영욕의 세월을 마감했다. 정읍에서 돌아가신 시신을 수원까지 운구하여 무봉산에 모셨다가 8년후인 1697년에 우암선생이 생전에 후학양성을 하던 화양동 옆인 청천으로 이전을 하여 지금에 이르기까지 300여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물론 당파싸움에 한가운데 있었다는 부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학자로서 갖고 있는 식견은 조선 전후기를 통틀어도 그만한 인물이 흔치 않다. 학자로서는 높이 평가해야 마땅하다.
우리의 모임은 다른 행사로 만나는 것 말고 꼭 1년에 한번 매년 이맘때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고 있는데 서울 친구들은 별도로 모임을 하고 있어도 년중여름행사 때는 미원으로 내려와 청주 친구들과 만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고향을 지키고 있는 친구들이 늘 고생이 많다. 음식장만에다가 장소도 물색해야지 때에 따라서는 햇볕 가리는 차양도 설치해야하고 어느 때는 빗물을 막을 수 있는 비닐까지 준비해야 된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그 친구들한테 신세를 많이 지고 있다. 늘 고마운 마음은 갖고 있다. 오늘도 어김없이 그 친구들이 고생을 했다. 더구나 비가 오락가락해서 여느 해 모임보다도 더 고생을 했다.
그렇게 준비하느라고 고생한 친구 덕분에 점심식사 잘하고, 보고 싶은 친구들과 얘기도 많이 나누었다. 이렇게 얘기도 하고, 또 들어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맙고 다행인지 모른다. 젊었을 때에는 다들 바쁘게 사느라고 잊고 살았던 친구지만 이제야 나이 들어 친구 소중함을 알았으니 언제든 불러주면 달려가고 찾아주면 고맙고 반갑지 않겠는가.
"고향친구 학송이, 성명이, 상섭이, 고맙네. 잘 있다가 또 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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