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풀 이야기

계절을 잊은 학의천의 들국화 얘기

강일형(본명:신성호) 2020. 11. 30. 01:36

요즘에 한낮으로는 기온이 영상으로 올랐다가 아침, 저녁으로는 영하로 뚝 떨어지기도 한다. 이처럼 가을과 겨울이 동거를 하는 계절이라 차가운 아침과 저녁시간을 피해 안양천과 학의천을 걷다 보면 아직도 노란 들국화가 둑방 위쪽으로 길게 군락을 이루고 있어 가는 사람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비산대교에서 안양천을 따라 걷다가 한화 꿈에 그린아파트 앞을 지날 때 왼쪽 언덕을 보면 요즘에 좀처럼 들꽃 구경하기가 쉽지 않은데 4백 미터 이상 노란 감국꽃이 펼쳐진다.  이 꽃길을 지나 좀 더 걸어 내려가 학의천 삼거리에서 학의천길로 가려면 두 종류의 길이 나온다. 한쪽은 포장을 하여 사람과 자전거가 같이 다닐 수 있는 길이고, 초입은 포장도로이지만 얼마 안 걸으면 비포장 흙길로 된 도보길이 있다. 이 길은 순수하게 걷는 사람을 위해서 만들어진 길이어서 '전국의 아름다운 도보길 100선'에 들기도 했다. 나도 지난여름에 더워서 산을 못 가고 저녁나절 해질 무렵에 이 길을 걸어본 이래 몇 달 만에 다시 걸어본다. 올여름에 장마가 원체 길고 많은 비가 내려서 사람들이 걷는 길 위로 냇물이 치고 나가서 풀과 나무들이 아직도 똑바로 서 있지 못하고 비스듬히 누운 듯 서있다. 길은 복구를 하긴 했어도 전에 같지 않고 울퉁불퉁한 데다가 모래가 많아 걷는데 안정감을 못주고 불편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걸으면서 보면 오른쪽으로는 다 핀 억새꽃들이, 왼편 물가로는 달뿌리풀과 갈대가 길게 이어지기도 하고 짧게 이어지기도 하면서 반복된다. 학의천길을 따라 걸어서 평촌경영고 앞을 지나 수촌교, 대한교를 통과하여 좀 더 걷다 보면 오른쪽으로는 관양벤처타운이 있고, 바로 앞으로는 동안교가 보이는데 그 다리 가기 전에 사람만이 왕래할 수 있는 야트막한 세월교를 넘어서 갔던 길을 되돌아 온다. 다리를 넘다가 냇물을 내려다보면 팔뚝 만한 물고기들이 바닥이 안 보일 정도로 몰려 있다. 한참을 물고기 구경을 한 후 자전거와 동행하는 길로 접어들어 좌측으로 길 머리를 돌리면 왼쪽으로 군데군데 물억새와 달뿌리 풀이 제철을 만난 듯 한껏 자태를 뽐내고 있다.

 

대한교에서 수촌교 방향으로 부지런히 걸은 것 같다. 물억새와 달뿌리 풀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걷다가 수촌교를 가기 전 100여 m 거리에서 우측 자전거 길 건너로 눈을 돌리니 둑방 위로 흰꽃들이 보인다. 가서 자세히 보니 이 꽃이 구절초이었다. 지금은 그리 많은 꽃이 피지 않았지만 줄기가 꽤 많이 퍼져 있어서 한 2-3년 지나면 구절초 꽃의 향연을 볼 수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구절초 언덕 너머로는 금강민물매운탕집과

교회가 있어서 그곳을 찾는 데는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또한 수촌교를 지나 4-50m 정도를 가서 오른쪽 언덕을 보면 산국이 자질구레하게 피어있다. 안양천과 학의천을 걸으며 감국은 여러 번 봤어도 산국은 아주 흔한 들국화인데도 처음 봤다. 비봉산 등산길에서 만나는 들꽃은 시든 지가 한참이 되었는데 학의천에는 아직도 들꽃이 보였다. 그래서 오늘은 들꽃 중에 들국화에 대한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들국화는 가을을 대표하는 꽃으로 국화과에 속한 여러해살이풀이다. 향기가 강하고 독특하여 멀리서도 국화향기를 느낄 수 있다. 우리나라의 산과 들에서 많이 자생하고 있고 일본, 중국북부, 몽고, 시베리아에 분포한다. 원래 들국화라는 꽃 이름을 가진 식물은 없다. 가을에 피는 산국, 감국, 구절초, 쑥부쟁이, 개미취 등을 통틀어서 들국화라고 한다. 말하자면 참나무라고 하면 신갈나무, 갈참나무, 떡갈나무,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졸참나무 등을 총칭하여 얘기하는 것과 같다. 수년 전에 전북 고창으로 11월에 가을여행을 간 적이 있다. 지금 국화 이야기를 하다 보니 미당 서정주 선생의 생가가 갑자기 생각이 난다. 미당 선생의 생가 들어가는 입구의 야산이며 들이 온통 노란 국화꽃으로 덮여 있었다. 국화가 가을이라는 계절에 맞는 꽃이라면 선생의 작품 중의 하나인 '국화 옆에서'도 요즘처럼 가을에 맞는 시가 아닐까 생각한다.

 

다시 들국화 얘기를 하자. 안양천과 비산동 학의천에서 만난 들국화 중에서 영하의 날씨에도 아직도 노랗게 피어있는 산국과 감국을 먼저 얘기를 해보면 산·감국은 산과 들의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고 추위에도 강한 식물이다. 대체로 산국은 산이나 들에서 흔히 불 수 있지만, 감국은 산에서는 찾아 볼 수가 없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바다 근처나 해안가 등에서 주로 서식하기 때문에 들이나 언덕에서는 눈여겨봐야 찾을 수 있다. 그런 데다가 산국은 꽃에 약한 독이 있어 감국과의 구별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할 일이다. 잎을 보고는 많이 비슷하여 구별하기가 쉽지가 않아 몇 가지 착안점을 얘기하니 참고했으면 한다.

 

첫째로 꽃 크기가 산국은 작고 감국이 크다.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산국꽃이 50원짜리 동전 크기(1.5cm)라면 감국꽃은 500원 동전 크기(2.5cm)이다. 또한 산국꽃은 가지 끝에 총총히 달리고 꽃잎 수가 감국보다 적은 반면, 감국꽃은 잔가지 끝에 한두 개씩 달리고 꽃잎 수가 산국보다 많다. 둘째, 줄기를 보면 산국은 녹색이고 다는 아니지만 감국은 적갈색이다. 셋째, 산국은 원줄기 중간부터 가지가 많아지고, 감국은 아래쪽에서 가지를 친다. 넷째, 잎은 모양만 봐서는 구분이 어려운데 산국은 둥근 편이고 색깔은 연녹색이며 감국보다 작다. 반면에 감국의 잎은 긴 편이며 색깔은 짙은 녹색이고 산국보다 크다. 다섯째, 형태를 보면 산국은 곧바로 서 있고 키가 1-1.5m이며, 감국은 40-80cm의 키에 비스듬히 누워 있다. 마지막으로 산국은 독이 있어 데쳐서 독을 해소한 후, 말려서 약용 또는 식용하며 약효로는 진정, 해독, 소종, 두통 및 어지럼증에 좋다고 한다. 감국은 단 성분이 있어 주로 차로 마시는 게 좋다.

 

산·감국에 이어 구절초와 쑥부쟁이에 대해서 알아보자. 구절초는 산과 들에서 야생으로 잘 자라며 청초한 흰색의 꽃이 가을정취에 맞을 뿐만 아니라 무리지어 피

어 있어서 보기도 좋고 향기 또한 좋다. 이 꽃은 오래

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얘기를 보나 실제로 한의학적인 처방에서 보나 여인과 관련된 꽃으로 불러도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어 보인다. 즉, 몸을 따뜻하게 하여 여성의 월경불순과 불임증을 치료할 뿐만 아니라 위 냉증, 소화불량도 치료해준다고 한다. 구절초는 단오절까지는 다섯 마디가 자라고, 음력으로 9월 9일 중양절에 가면 아홉 마디가 되어 약효가 가장 좋다고 하여 구절초(九節草)라고 하며 또한 아홉 마디의 구(九)와 중양절의 절(節) 또는 꺾을 절(折)을 써서 구절(節, 折) 초라고 부른다. 구절초는 꽃 피기 전에 채집을 하여 그늘에 말려 약제로 사용한다.

 

그러면 구절초와 쑥부쟁이를 구별하는 법을 알아 보자. 우선 잎을 보면 구절초는 잎 끝이 쑥처럼 크게 갈라져 있고, 갈라진 잎 가장자리에 작은 톱니가 몇 개씩 있다. 반면에 쑥부쟁이는 잎이 갈라지지 않았고 원통형이며 개망초 잎과 비슷한 타원형의 잎 가장자리로는 몇 개의 톱니가 있다. 줄기는 둘 다 곧게 자라며 구절초는 짙은 적갈색인 반면, 쑥부쟁이는 녹색 바탕에 자줏빛을 띤다. 꽃은 한 줄기에 한 송이씩 피는 것은 같고, 꽃 색깔은 구절초의 경우 처음 필 때는 연분홍색이다가 다 피면 흰색의 꽃으로 변하지만 옅은 자주색으로 있는 것도 있다. 꽃의 크기는 지름이 4-6cm 정도이다. 쑥부쟁이의 꽃은 애초 필 때부터 연한 자주색으로 피고, 지름이 2.5-3cm 정도 된다. 꽃잎 수는 구절초가 18-20 매인 반면 쑥부쟁이는 25매 내외이다.

 

내일모레이면 12월인데 오늘처럼 안양천과 학의천을 걸으며 산국, 감국, 구절초 등 들국화를 볼 수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자연에 감사할 일이고, 조경을 위해 일부러 심었다면 조경 관계자에게 고맙다는 인사말을 남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