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일본 오사카를 가다

강일형(본명:신성호) 2011. 4. 5. 11:49

 

 

오사카는 긴키지방에서 가장 넓은 오사카평야를 중심으로 동쪽으로는 나라가 있고, 북동쪽으로는 천년의 고도인 교토가, 서쪽으로는 고베가 있다. 인구는 도쿄 다음으로 많은 사람이 살고 있는데 오사카에 약 260만 명이 살고 있고, 주변 위성 도시를 합치면 약 900만 명 가까이 살고 있다. 오사카부에 거주하는 재일동포 수는 약 19만 명이 된다. 또한 오사카는 도쿄와 더불어 일본의 두 번째 상업도시이며 고베, 요코하마에 이은 3대무역항이기도 하다.


인천에서 오사카 간세이 공항까지는 1시간 반 정도 걸렸다. 우리는 간세이 공항에서 오사카로 바로 가지 않고 버스로 1시간 남짓 거리의 고베로 갔다. 시내로 들어오면서 고베를 차창 밖으로 살펴보니 도시 전체가 깨끗하고, 해양도시라서 물이 많이 보였다. 인구는 약 150만 명인 고베는 일본 3대 항구도시이고, 한신공업지대의 중심지로서 방적, 조선, 전기기기, 고무제조 등 산업이 발달되었다.


우리가 시내에 위치한 고베해상공원에 들렀던 공원 옆으로도 물이 흐르고 있었고, 4월인데도 바다가 가까워서 그런지 바람은 세게 불어서 머리와 옷깃을 흩날리게 했다. 고베 해상공원은 고베 개항 120년을 기념하기위해 만들어졌고, 해양박물관과 지진과 관련한 메모리얼파크가 있다. 고베에는 모토마치라는 오랜 역사와 전통이 있는 상가가 있다. 국제도시 항구답게 상가가 활기가 있어 보였다. 우리는 바로 옆인 차이나타운으로 이동해 난킨마치의 중국식당과 상가를 둘러보았다. 어디를 가든 중국인들의 강한 생활력과 응집력은 과소평가할 수가 없다. 한마디로 대단한 민족이다.


우리는 일식으로 저녁식사를 하고는 오사카로 이동해 호텔로 들어와 오사카에서의 첫날밤을 보내고, 오사카에서 새아침을 맞는다. 아침에 일어나 호텔에서 내려다본 오사카성 공원은 평화롭고 아름다워 보였다. 짙은 초록의 수풀 뒤쪽으로는 크고 작은 건물이 담장이 되어 오사카성 공원을 감싸 안고 있었고,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니 오사카성천수각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한 폭의 사진을 보는 듯 했다.


우리는 아침을 먹고는 오사카에서 버스를 타고 1시간 30분 거리의 교토로 이동했다. 교토는 794년 새 도읍을 정한 후 헤이안시대 국정의 중심지로 번영하다가 바쿠후시대와 에도시대를 거치면서 도쿄로 정치의 중심이 옮겨지기까지 천년을 수도로 있었던 유서 깊은 도시이다. 지금의 인구는 약 150만 명 정도 살고 있고, 고도의 명성답게 청수사, 금각사, 은각사 등 2,000여 사찰과 신사가 남아 있다고 한다. 특히 교토 남부에 있는 청수사는 깎아지른 절벽위에 절을 세워 교토시내가 시원스레 한눈에 다 내려다보였다. 청수사에 있는 폭포수의 왼쪽은 지혜를, 중간물은 사랑을, 오른쪽은 장수를 뜻한다고 하니 청수사의 절 이름에 걸맞게 성스러운 물이 아니겠는가.


그곳을 빠져나와 곧 바로 고베로 이동하여 일본에서 오래되고, 아주 유명하다는 아리마 온천으로 갔다. 온천을 간다고 하여 한국의 온천만 생각하고 갔더니 온천장이 다 작다. 다리를 건너는 곳에 여인네 동상이 하나 있었는데 오사카성의 주인인 ‘도요토미히데요시’의 정부(情婦)인 ‘네네바시’라고 한다. 거기서 좀 떨어진 유케무리광장에는 도요토미히데요시의 앉아있는 동상이 눈에 띄었다.


탕은 철과 염분으로 물의 색깔이 황갈색인 탕을 금탕이라 하고, 라듐과 탄산염을 함유하고 있고 물 색깔이 없는 무색인 탕을 은탕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은탕으로 들어가서 목욕을 했다. 탕안에 들어가니 규모도 적고 여러 사람이 들어가서 그런지 복잡했다. 그래도 이렇게 유명하다는 온천에 와서 목욕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쌓였던 피로가 절로 풀리는 듯 했다. 


아리마 온천에서 나와서 오사카로 들어오다가 때 이른 저녁을 먹고는 도톰보리로 이동했다. 이곳은 전에 물자수송을 위한 인공수로였는데 극장이 생기고 술집이 생기면서 오사카의 먹자거리로 자연적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고 한다. 번쩍번쩍하는 도로를 따라 마누라와 같이 걷다가 호텔로 들어왔다.


오사카에서 또 다른 아침을 맞았다. 오늘 여정은 오사카 성을 갔다가 나라의  동대사와 사슴공원을 보기로 했다. 오사카 성은 주변이 물로 둘러 쌓여있다. 오사카 성으로 들어가는 길가에는 온통 꽃밭으로 뒤덮여 있고, 오가는 사람들이 사진 찍느라고 난리다. 오사카 성은 도요토미 가문이 축성한 것은 이미 소실되었고, 도쿠가와 가문이 재건한 성의 배치도 다르다. 현재 볼 수 있는 건물은 에도시대의 것으로 도쿠가와 가문이 축성한 것이다.


오사카 성의 천수각은 1928년 오사카 시장인 세키하지메가 주창하여 1931년에 완공한 것이다. 복원한 외관은 옛 그림을 토대로 1층부터 4층까지는 도쿠가와 풍으로  백색인 회벽으로 하고, 5층은 도요토미 가문의 형식으로 흑색에 금박으로 호랑이와 두루미그림을 그려 넣었다. 12세기 후반부터 막부시대가 시작되어 19세기 중엽까지 이어졌는데 오사카성은 막부시대 말에 축조되었다. 그 당시 정권을 뺏기지 않고 지키기 위해 노력한 축조물인 인공 해자를 보면 알 수가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지금은 박물관으로 쓰이는 오사카 성안으로 들어가 여기저기 둘러보았다. 성안에서 성밖 공원을 내려다보니 경치가 보기 좋았다.


오사카 성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낸 후 1시간 거리의 나라로 이동을 하여  사슴 1,000여 마리가 관광객들하고 같이 놀고 있다는 사슴공원으로 이동을 했다. 가보니 정말 사슴들이 많았는데 사람들이 가도 도망도 안가고 졸졸 따라다니기도 했다. 그동안 사람들에 의해 잘 길들여진 듯 보였다.


거기서 다시 20여분 거리에 있는 화엄종의 대본산이라는 동대사에 들렀다. 동대사 들어가는 입구엔 파란 잔디가 깔려있고, 절 안으로 들어가니 높이가 15m이고, 무게가 380톤이나 되는 금동좌불상이 있다. 내가 봐도 크긴 커 보였다.


우리는 나라 외곽에 있다는 법륭사를 들러서 담징의 금당벽화를 보아야 했지만 시간이 없어서 아쉽게도 금당벽화는 보지 못하고 공식행사를 마치고 귀국길에 올라야 했다.


오래 전에 도쿄를 갔을 때는 시내에만 있다 보니 기억에 남는 것이 별로 없고, 휴일 날 후지산에 올라가면서 온천물에 새까만 계란 삶은 것 먹은 것과  하꼬네 온천 들러서 온천욕하고, 호수에서 유람선 탔던 기억이 전부다. 그 뒤 도쿄는 또 가서 일주일 내내 시내에서만 일을 보다가 돌아와야 했다. 그렇지만 이번에 오사카에 와서는 오사카는 물론 오사카 주변 도시까지 여기저기 명소를 다니면서 일본의 문화를 둘러보고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도 엿볼 수가 있었다.


지역적으로 가까우면서도 멀게만 느껴지는 일본, 그들과 친구가 되어 잘 지낼 수는 없는 걸까? 얼마 전 그들의 동북부 지역에 지진이 발생해 많은 인명피해와 재산손실이 있었고, 그 후유증으로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능누출은 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긴장하고 있는 이 시점에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할 기력이 남아 있단 말인가. 여러 가지 처한 상황은 안쓰럽고 도와줘야 한다는 마음이 들지만, 일본 국민들을 지켜야 할 위정자들의 행태를 볼 때 한심하기도 하고 참으로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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