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작은 아들 내외와 같이 경주 여행에 나섰다. 토요일 아침이라 고속도로에 차가 많이 밀릴 것으로 생각했는데 차가 밀리지 않아서 수월하게 고속도로를 달릴 수가 있었다.
경주는 내 처갓집이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같이 가는 아이한테는 외갓집이기도 하다. 지금은 아이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모두 돌아가시고 안 계시지만, 제일 큰 외삼촌이 경주에 살고 계시고 막내 외삼촌이 울산에 살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며느리를 데리고 같이 경주 여행을 간다는 걸 알고, 울산 막내처남 내외까지 저녁에 온다고 하니 여간 기분이 좋은 게 아니다.
차는 밀리지 않아서 예상보다 빨리 경주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기 전에 한 두 곳은 들러볼 수가 있었다. 그래서 경주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우측에 있는 포석정을 들렀다. 포석정은 돌로 물길을 만들어 물에다 잔을 띄워 왕과 귀족들이 술을 마시며 풍류를 즐겼던 곳이다. 경애왕이 여기서 풍류를 즐기다가 후백제 견훤에게 이곳에서 최후를 맞았다는 얘기도 있다. 지금은 많은 세월이 말해주듯 돌은 풍우에 닳아졌고, 주위에 나무들은 고목이 되어 힘겨운 듯 서있다.
우리는 포석정을 빠져 나와 삼릉 쪽으로 이동을 하다가 이 근처에서 유명하다는 칼국수 집을 들렀다. 칼국수집 앞 주차장은 자리가 없고, 앞 도로까지도 세워진 차량으로 주차하기가 쉽지가 않았다. 들어가자마자 칼국수를 시켰다. 다른 메뉴는 아예 없다. 한참 만에 나온 칼국수는 다른 집 칼국수보다 뻑뻑했다. 다들 맛있게 먹었다.
점심을 먹고는 대릉원(천마총)으로 이동을 했다. 이동하는 거리에는 어디를 가든 벚꽃이 만개했다. 송글송글 피어있는 벚꽃은 탐스럽기도 하고, 희면서도 연한 분홍색의 벚꽃은 행운과 희망을 줄 것 같은 생각도 든다. 양 도로가로 펼쳐지는 벚꽃의 향연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고, 장관이라고 아니할 수가 없다. 대릉원 가는 길은 차가 엄청나게 밀려서 그냥 걸어가는 것보다 더 느리다. 간신히 주차를 하고, 도로 쪽으로 다시 나오니 그 앞에서 보던 벚꽃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도로 가운데만 놔두고 벚꽃으로 뒤덮여있다. 그 길을 걸어 나와 대릉원 매표소 앞에 오니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대릉원은 2,000년에 유네스코지정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금광총, 서봉총, 금령총, 천마총, 황남대총 등이 있고, 신라 18대 실성왕부터 눌지왕, 자비왕, 소지왕, 22대 지증왕에 이르는 5대 120년간에 걸친 김씨 왕족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특히 천마총은 발굴 시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순백의 천마도가 출토되었고, 22대 지증왕의 묘로 추정하고 있다.
대릉원 옆에 있는 경주문화체험장을 잠간 들렀다가 도보로 20분 거리에 있는 최씨고택으로 우리는 이동했다. 최씨고택은 1700년경에 건축했는데 건축당시에 99칸이었지만 20세기 중반에 사랑채와 별당이 소실되어 지금에 이른다고 한다. 지금도 고택에서 교동법주를 생산하고 있고, 사람이 살고 있다. 경주최씨 육훈(六訓)은 요즘같이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암시하고 있었다. 우리는 간 길로 오지 않고 경주향교를 들러 내물왕 능으로 해서 계림과 첨성대를 돌아보고 주차장으로 왔다. 첨성대 앞 잔디공원에는 많은 사람들이 철 지난 연날리기를 하고 있다.
저녁때가 되었다. 수시로 전화를 해서 볼만한 곳을 얘기해주던 큰 처남이 울산에 사는 막내도 왔으니 이제 들어와서 저녁 먹고 구경하라고 한다. 서둘러 큰 처남댁으로 가니 울산 막내처남이 회를 떠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들한테 외숙내외께 인사를 올리게 한 다음 곧바로 저녁을 먹으면서 반주로 여러 잔의 소주를 마셨다. 날이 어두워지면 안압지에 가서 안압지의 밤모습을 보는 것이 경주구경 중의 백미라고 한다. 안압지에는 야간 조명시설을 해놓아서 낮에 보는 것보다 밤에 보는 것이 훨씬 아름답다.
토요일 밤이고 경주에 벚꽃이 한창이라 경주 시내 어디를 가더라도 쉽게 갈 수 있는 데는 한군데도 없다. 안압지에서 떨어진 곳에다 차를 세워두고 걸어서 안압지로 갔다. 들어가는 정문부터 시작하여 안 쪽에도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정자와 나무에 조명을 해놓은 것이 까만 밤이다 보니 못에 드리워져 두개가 된다. 어느 것이 진짜인지 모를 정도다. 형형색색 물에 잠긴 색깔도 아름답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주변 길을 비집고 못 한바퀴를 돌고나니 경주가 살아있는 도시 같았다.
우리는 다시 보문으로 이동을 해 널찍한 콘도에 여장을 풀고 운전 때문에 술을 마시지 못한 사람을 위해 다시 판을 벌려 소주를 더 했다. 그러고 나서는 네 편으로 나누어 윷을 놀았다. 나는 세 번을 했는데도 세 번 다 꼴찌를 면하지 못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지만, 아주 떠들썩하면서도 재미나게 놀았다. 오늘 같은 밤을 두고 재미있고 행복한 밤이라고 하는가 보다.
경주에 와서 새 아침을 맞는다. 오늘은 두 처남내외와 같이 감포로 이동을 했다. 감포를 가기 얼마 전에 좌측으로 들어가서 골굴사를 들렀다. 골굴사 절은 그리 크지 않지만, 산허리 석회암에 굴을 따라 길을 내어 좁은 공간에 부처를 모셔다 놓은 것이 다른 절과 다르다. 그리고 수도를 하는 스님들이 선무도를 통하여 체력을 연마하는 것도 특이했다. 또한 절 입구에는 돌로 된 개형상과 개 비석을 세워두고 죽은 개를 찬양하는 것도 여느 절에서 볼 수 없는 것들이다.
온 길을 다시 나가니 길가에서 시골장이 서고 있었다. 주로 나물, 곡식, 더덕, 호박 등 먹을거리였다. 이에 달라붙지 않는다는 엿이 있었는데 정말 먹어보니 평소에 먹던 엿보다는 덜 달라붙는 걸 느꼈다. 한 바퀴 돌고나와 감포로 가다보니 왼쪽으로 감은사지가 나오고 석탑 두개가 덩그렇게 서 있었다. 그 곳에서 조금 더 가니 바다가 나오고 문무대왕 수중묘가 해안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바다에 보였다. 자세히 보니 언제 세웠는지 비석도 있다. 나라를 걱정해 죽어서도 수호신이 되겠다는 대왕의 나라사랑을 느낄 수가 있다.
경주 시내로 다시 들어왔다. 경주톨게이트에서 5-600m의 거리에 있는 아이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산소에 들러서 인사 올리고, 무열왕 능으로 해서 김유신장군 묘쪽으로 이동을 하는데 길이 꽉 막혀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개천 둑길에는 앞에서 본 경주 시내 벚꽃보다 더 많은 벚꽃이 활짝 피어 있어서 보는 이들을 즐겁게 했다. 환상적이라고 말을 해도 될 만큼 대단한 벚꽃 길이었다. 우리는 그 옆 한정식집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고는 바로 옆인 김유신장군 묘를 들르려고 했는데 차가 너무 밀려서 바로 안강 쪽에 있는 양동마을로 이동을 했다. 양동마을은 2010년 8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하회마을과 양동마을이 민속마을로 나란히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올라가 있다. 마을은 형산강 중류에 나지막한 산자락에 자리 잡고 있고, 기와집과 초가집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서 평화로워 보인다. 길 건너편에는 떡메로 떡을 치는 여인네들이 눈에 띠었다. 나오는 길에 뜨끈뜨끈한 인절미를 사서 한 입 물어보니 맛 또한 기가 막히다.
양동마을에서 나와서 자동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옥산서원으로 갔다. 가는 길에 안강 근처에 풍산금속 앞으로 길게 피어 있는 벚꽃 또한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이 절로 나오게 했다. 그곳을 가다가 우회전하여 한참을 올라가니 옥산서원이 나왔다. 옥산서원은 1572년 경주부윤 이제민이 이언적의 덕행과 학문을 추모하기위해 건립했다. 서원 앞으로는 크지 않은 개울이 흐르고, 개울 옆으로는 큰 바위가 널찍하게 자리를 잡아 여러 사람이 쉬어가도 될 만큼 공간이 넉넉하다. 그 옆에 있는 종가 집은 후손이 살고 있는 듯 보였다.
우리는 경주 시내로 들어오다가 민물매운탕으로 저녁을 먹고는 콘도가 있는 보문으로 갔다. 콘도에 들어가서 잠시 쉬다가 보문의 밤은 어떤지 싶어서 마누라하고 같이 벚꽃이 활짝 피어 있는 밤거리를 걸었다. 보문호수의 공연장까지 걸어와서 물을 바라보며 의자에 앉아 보았다. 호수바람이 찰 것 같았는데 차지 않고 싱그럽다. 호수 위로 떠 있는 달이 둘로 쪼갠 반달이다. 이렇게 보문의 밤은 깊어갔다.
오늘이 벌써 경주에 와서 3일째를 맞는다. 새벽에 토함산을 가려고 눈을 뜨니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그래서 아이들을 깨우지 않고 또 잤다. 아침을 먹고 나니 비가 점차 개였다. 그래서 늦은 시간이지만 보문호수로 해서 물레방아 있는 곳을 거쳐 토함산으로 갔다. 토함산은 그리 높은 산이 아닌데도 벚꽃이 피려면 아직 멀어 보였다. 주차장에서 석굴암까지는 좀 걸어야 하는데 걷는 길이 참 편안하게 만들어 놓았다. 석굴암을 오래 전에 보아서 그런지 앞에 유리로 가로막아 놓은 게 어색해 보였다. 비 온 끝이라 공기도 맑고 시야가 멀리까지 다 보였다. 오고가는 길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일본 사람이 삼분의 일 정도는 되어 보였다. 경주만 해도 일본이 가까워서인지 일본 관광객이 많다.
다시 경주 시내로 들어와 처남 내외와 점심 식사를 같이 하고 아쉬운 이별을 했다. 우리는 경주 온 기념으로 황남빵을 사러 갔다.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걸까. 황남빵을 사갖고 가려면 한 시간 반을 기다려야 된다고 한다. 난감했지만 기다리는 동안에 우리가 못 가본 데가 김유신 장군묘를 가다가 차가 밀려서 지나쳤으니 거길 가자고 했다. 거길 가서 장군의 정기를 받고 내려오니 시간적으로 맞았다. 이렇게 경주에서의 2박3일의 공식행사는 마쳤다.
오늘 이 여행은 마누라가 주선한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아이들이 시간을 낼 수가 없었으면 오지 못했을 텐데 다행이도 시간이 되어서 이렇게 같이 경주 여행을 하게 된 것이다. 그것도 아이들 결혼해서 외가에 갔다 오면 잘산다는 허무맹랑한 얘기를 듣고서 경주를 갔지만 그래도 잘 왔다는 생각이 든다. 직장 다니는 아이들 내외가 휴가를 내서 온다는 것도 쉽지 않을 텐데 이번에 용케도 기회를 잘 맞춘 것 같다. 나도 장가가서 경주를 일년에 한두 번은 내려왔어도 이렇게 이번처럼 세세하게 다녀보지 못했다. 물론 큰 처남이 이틀 동안 길 안내를 잘 해주신 덕분이기도 하지만, 아들 내외가 복을 받고 행운이 따라줘서 이렇게 쉽게 기회가 된 게 아닌가 생각한다.
체력이 약해서 많이 힘드셨을 텐데도 생질 내외를 위해 끝까지 경주 여기저기를 데리고 다닌 큰 처남의 노고에 다시 한번 감사드리고, 작은 아들 내외 덕분에 너의 엄마하고 나도 덩달아 좋은 구경하고 여행 잘 했다. 고맙다, 내 아들아!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향에 가다 (0) | 2011.05.15 |
---|---|
봄에 가본 원산도 (0) | 2011.04.24 |
일본 오사카를 가다 (0) | 2011.04.05 |
젊은 날에 갔던 제주도 (0) | 2011.03.30 |
대만을 가보다 (0) | 2011.03.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