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내 고향 미원을 갔다 오다 진천 농다리를 들르다

강일형(본명:신성호) 2018. 11. 18. 10:15




며칠 전 충북 미원으로 가서 윗대 조 시제도 지내고, 마침 시제 이튿날이 32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 기일이어서 모처럼 마음먹고 내려가서 형님과 같이 아버지 제사도 지냈다. 그래도 고향에는 연로하신 큰형님이 고향을 지키고 계셔서 아무 때나 내려가도 편안하게 며칠 묵다가 올 수 있어서 좋다. 다만 큰형수께서 건강이 안 좋아서 걱정인데 저렇게 몸도 돌보지도 않으시고 닥치는 대로 일을 하셔서 그것이 안타깝다.


내 고향은 충북 청주에서 차로 불과 3-40분 거리인데도 사람들이 귀하다. 이집 저집 할 것 없이 안 노인네 한 분이 살든지, 아니면 빈집이다. 젊은 사람이라고 해야 70이 가까운 사람이 젊은 축에 낀다. 유일하게 형님내외분만 나이 드신 분 중에서 두 분이 함께 사시는 것을 보면 축복이지 않겠는가 싶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이 동네 저 동네 많은 사람들이 살았는데 불과 반세기도 되지 않아 이렇게 농촌사회가 삭막하게 변해가고 있다. 앞으로가 더 큰문제이다. 지금 고향을 지키고 있는 분들이 연세가 많으신데 한 분, 두 분 돌아가시면 그 때는 어떻게 변해갈지 상상하는 것조차 싫다. 고향에 내려와 옛날 생각이 나서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논밭둑길을 걸어 보았다. 어렸을 때 우리 논과 밭이 있어서 주로 많이 걷던 길을 찾아 걸었지만, 전에는 사람 두 사람이 피해 가기가 힘들 정도로 좁은 논밭두렁길이었는데 지금은 경운기가 다니고, 작은 트럭도 다닐 정도로 넓어졌다. 가을걷이가 얼추 끝났는데도 들에서 할 일들이 많은지 우리 동네에서 유일하게 고향을 지키는 친구 집을 몇 번 찾았지만 집에 없었는데 이렇게 들길을 걷다보니 삼밭에서 일하는 친구를 만났다. “자네하고 소주 한 잔 하려고 몇 번을 자네 집에 갔었는데 여기 있었군. 잘 있었나? 반갑네. 친구!” 그 친구도 일하던 기계를 세워놓고 나를 반겨주었다. “그려, 반가워. 어쩐 일로 내려왔어?” 그렇게 밭둑에서 얘기를 나누다가 내가 친구의 바쁜 시간을 너무 뺏는 것 같아서 “일 하시게”하고는 텃골을 거쳐 구녕고개로 접어들어 새판드기로 넘어갔다. 우리가 경작하던 밭을 가려면 이리로 가는 것이 지름길이었다. 그런데 농지 정리를 해놔서 어디가 우리 밭이 있던 곳인지를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가다보니 맑은 시냇물이 돌돌거리고 흐르는 소란마을 앞 시냇가까지 가서 개울을 따라 무주리마을 앞으로 내려가니 전에는 보이지 않던 깨끗한 흰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가 종암리에 있는 펜션단지이다. 여기에는 ‘마린블루펜션’과 ‘블루스토리펜션’이 들어와 있는데 모든 시설이 초현대식으로 고급자재를 써서 건축하여 내방객들한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하는데 가 보지는 않았다. 그 앞에서 벌말로 들어오는 길을 걷다가 오래도록 공직에 있다가 정년퇴직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전원생활을 하고 있는 어릴 적 초·중학교를 같이 다녔던 소란 사는 친구를 길가에서 만났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모임에서 가끔은 봤지만, 이렇게 길에서 만나니 더 반가웠다. 인사가 끝나기 무섭게 우리 집에 가서 차나 한 잔 하자며 일하다말고 자기 차에 나를 태워서 그리 멀지 않은 자기 집으로 데려갔다. 집에 가보니 옛날 자기가 어렸을 때 살던 집에 안채와 사랑채를 분리하여 집을 잘 지어놓았다.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일어나자 텃밭에 사과나무를 심었는데 올해 첫 수확을 했다면서 맛보라고 한 봉지 싸주었다. 이처럼 고향에 와서 생각지도 못했던 오랜 친구를 두 명이나 봤다는 것은 내게 커다란 행운이 따라준 덕택이다.


전날 밤에 아버지 제사를 지내고 아침식사를 느지감치 먹고서는 형님 집을 나섰다. 이티재를 넘어서 초정까지는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초정약수를 떠가려고 물통을 가져왔지만 물 받는 사람들이 꽤 모여 있어서 그냥 가려다가 갖고 온 물통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한참을 기다리고 나서야 초정약수를 20ℓ통에 가득 채워갈 수가 있었다.



이제는 진천에 농다리 얘기를 해보자. 진천 농다리는 중부고속도로를 다닐 때마다 수도 없이 많이 봤다. 증평 톨게이트로 들어가 진천 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터널 빠져나가 얼마 안가서 우측 개천에 있다. 하절기에는 산에서 내려오는 시원한 인공폭포가 유유히 흐르는 세금천의 돌다리와 조화를 이루어 구색을 잘 맞춰주기도 한다. 이렇게 오며가며 멀리서 보던 돌다리를 오늘은 직접 가보기로 했다. 증평에서 지방도를 따라 오다가 초평저수지 쪽으로 들어가면 금방일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내비에서 가르쳐주는 대로 따라가다 보니 차가 더 이상 진입할 수 없어서 되돌아 나와야 했다. 그래서 진천 시내를 얼추 다갔다가 다시 농다리 방향으로 들머리를 잡아 한참을 내려와야 농다리가 나왔다. 그렇다면 증평에서 지방도를 따라 진천 쪽으로 가고 있다면 초평저수지 청소년수련원 쪽으로 들어와 차를 세워놓고 도보로 하늘다리를 건너 저수지 가에 설치된 데크길을 따라 농다리까지 갔다가 되돌아온다고 해도 3.2km 거리여서 1시간 남짓이면 충분하다.


진천에 있는 농다리는 행정구역상으로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굴티마을 앞을 흐르는 세금천에 놓여 있다. 고려 초 임 장군이 다리를 놓았다고 한다. 1976년 12월 21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제 28호로 지정되었으며, 건설교통부의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뽑혔고,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모래시계’등의 드라마 촬영지이기도 하다. 길이는 93.6m에다 폭이 3.6m이고, 높이가 1.2m이다. 석회를 섞지 않고 돌로만 쌓은 돌다리인데도 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징검다리로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 축조기술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여기를 가서 단순하게 농다리만 보고 온다면 다소 여행의 즐거움을 떨어지게 할 수 있다. 고개를 넘어 가서 초평저수지 주위로 나있는 데크길을 걸어도 좋고, 아니면 하늘다리를 건너서 수련원 쪽으로 갔다가 되돌아 나오기만 해도 농다리만 보고 오는 것보다 여행의 즐거움이 배가 증가한다. 


오며가며 멀리서 보는 것보다는 실제로 가보니 잘 왔다는 생각이 들고, 시간을 넉넉히 갖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와서 돌다리를 건너 야트막한 고개 너머에 초평저수지 주변으로 잘 놓아진 데크길을 걷고 나서, 초정으로 이동해 탄산온천욕을 하고 나오는 길에 '김기창 화백의 운보의 집'까지 둘러보고 온다면 1일여행으로 아주 꽉 찬 훌륭한 여행이 되지 않겠는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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