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으로 한동안 시끄럽던 우리 사회가 조금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야당의 사분오열 되는 소동으로 제1야당이 내홍에 휩싸이게 되자 이때가 기회이다 싶은지 박대통령은 야당이 법을 만드는데 협조해주지 않아서 원활한 국정을 수행할 수 없다면서 모든 걸 야당 탓으로 돌리더니 급기야 지난 18일 상공회의소, 무역협회,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38개 단체에서 주관하는 ‘민생구하기 입법촉구 천만인서명’장으로 직접 찾아가 서명하며 대통령답지 않게 길거리 정치를 시작했다. 더구나 대통령이 서명하자 국무총리 및 각부 장관들까지 우르르 몰려나와 서명하는 모습을 과연 우리 국민들은 어떻게 봐야하는가.
그러면 이 법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대통령이 길거리를 나서면서까지 입법을 촉구하는 서명을 해야 했는지 알아보자. 박대통령이 국회를 비판하고 국회의장을 압박하면서까지 관철하려고 하는 민생구하기 입법의 내용을 살펴보면 경제활성화법과 노동입법 등이다. 그런데 이 법을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면 하나같이 온통 논란거리다. 일일이 열거하지 않더라도 몇 가지만 눈여겨보면 경제 살리기와 거리가 멀고 부작용이 뒤따른다는 것을 금방 알 수가 있다. 그 중에는 영리병원의 도입, 귀족국제학교설립, 재벌의 문어발 확장지원, 부동산투기조장 및 근로자 해고용이 등이 들어있는가 하면 특히 파견법을 바꿔 파견을 더 쉽게 하고 확대할 수 있게 한다고 하니 그렇잖아도 한국이 세계에서 비정규직이 최고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데 이건 민생구하기가 아니라 경제활성화라는 탈을 쓰고 서민의 삶을 더 핍박하게 하고 도탄에 빠트릴 수 있는 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런데도 이 법을 국회에서 통과 시켜주지 않아서 국가경제가 어려운데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하는가하면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을 하지 않는다고 이제는 대놓고 겁박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나라는 강력한 대통령중심제 국가라고 해도 엄연히 삼권이 분립된 민주국가임에도 행정수반이 입법부를 마치 본인이 관장하고 있는 한 개의 부서로 보는 것 같은 그런 모습은 정말로 좋은 모습이 아니다. 그 법을 국회에서 통과시켜주지 않는다고 해서 국회의원들을 야속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박대통령 자신이 천천히 자기를 한 번 돌아보면 금세 마음에 느끼는 것이 있을 걸로 본다. 민생을 살리고 경제를 활성화하는 법이 정말로 화급을 다투고, 급박하게 돌아가는 경제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법이었다면 아무리 야당다운 야당이 없다고 하더라도 야당의 대표도 만나서 같이 밥을 먹든 칼국수를 먹든 뭐라도 먹으면서 의논도 하고 협조를 부탁하면서 필요하다면 사정도 해봐야 했다. 그런 노력도 없이 시급한 법을 통과시켜 주지 않는다고 남의 탓만 하는 것은 누워서 침 뱉는 것과 뭐가 다르겠는가. 그리고 그렇게 나라 경제가 어렵다면 선거가 다가온다고 해서 의원 겸직인 경제부총리를 바꾼 거도 그렇거니와 어려운 경제를 타개하기 위해 야당과 협상을 해서 법을 만들어야 할 중요한 시기에 여당의 원내대표를 남미까지 대통령 특사로 내보내는 것을 볼 때, 그 법이 그렇게 국회를 압박하고 국회의장이 법을 어겨가면서까지 ‘직권상정’ 할 정도의 급박한 법이 아닌데도 대통령이 호들갑을 떠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여당인 새누리당의 국회의원 의석이 과반을 넘으면서도 의정활동에 제약받는 이유는 ‘국회선진화법’이 있기 때문이다. 이 법은 이명박정부시절 국회에서 날치기 통과가 하도 많이 있어서 민심이 안 좋아져 박대통령이 2012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있을 때 주도하여 통과시킨 법이다. 그런데도 그 법을 다시 개정을 위해 새누리당에서 편법으로 처리하려고 국회의장에게 직권상정을 요구하고 있으니 참으로 낯 두껍고 파렴치한 정치행태가 아닐 수 없다.
지난 1월 13일 박대통령은 대국민담화에서 우리나라가 현재 안보와 경제가 위기라며 ‘국민이 나서달라’고 했다. 대통령이 보기에 국가안보나 경제가 그토록 어렵다면 국민보고 나서달라는 것보다는 헌법이 보장한 권한 즉, 긴급조치나 긴급명령권을 통해 필요한 재정·경제적 처분 또는 효력이 있는 명령을 하여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이 있는데도 국민을 길거리로 나서달라며 국민을 상대로 선동정치를 하는 모양새가 그리 온당해 보이지는 않는다. 서명은 어디까지나 약자들이 힘 있는 강자들을 상대로 주위를 환기시키고, 요구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했는데, 이처럼 현직 대통령이 국회에서 법을 만들어 주지 않는다고 일반 국민을 상대로 하는 서명운동에 직접 참여하고 독려하는 것은 마치 국회를 보고 “뭐하고 있느냐?”며 생떼를 부리며 시위를 하는 것처럼 비쳐질 수가 있다. 더구나 대통령이 “국회가 국민으로부터 아예 외면당하는 절박한 상황까지 가지 않길 바란다.”고 협박조로 말하는 것은 현직 대통령이 국회를 보고 할 소리는 아닌 것으로 본다.
이제 20대 국회의원 선거가 채 80일도 남지 않았다. 19대 국회가 정말 민생을 외면하고 잘 못한 것이 많다면 대통령이 나서지 않더라도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들이 알아서 심판해줄 것으로 믿는다. 대통령이 나서서 ‘서명정국’으로 4·13총선에 개입한다는 괜한 오해까지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일은 이제 자제해 주었으면 좋지 않겠는가 싶다. 더는 길거리 정치를 통하여 국민을 혼란하게 하는 것보다는 상식이 통하는 정치로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정치를 박대통령께 바란다면 그게 너무 무리한 기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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