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꼭 나를 두고 한 말 같다. 가을이 저만치 가는 것이 아쉬워서 이틀 전 전북 정읍에 있는 내장산으로 단풍구경을 갔는데 지금 한창이어야 할 단풍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아직 애기단풍은 시퍼런 채로 있고, 가끔 올 단풍만 단풍이 들어 그나마 서운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래주었다.
오늘 집에서 아파트 밑을 내려다보니 단풍나무가 아주 곱게 물들었다. 그래서 물 한 병을 챙겨들고 집을 나섰다. 뒷동산을 다녀온 지도 보름이 다 되어서 단풍이 들었다가 졌는지 알 수가 없었던 터라 반신반의하면서 등산로를 따라 천천히 올라가다 보니 지금이 단풍이 한창이었다. 등산로 옆으로 떡갈나무들이 얼마나 곱게 단풍이 들었는지 마치 단풍나무로 착각을 할 정도로 붉고 곱게 물들어 나를 불러 세운다. 원래 참나무나 떡갈나무 단풍이 누렇게 드는데 이 떡갈나무들은 붉은 색이 더 강하게 들어있다.
중간 정도 올라가니 날씨가 푹해서 그런지 등줄기에는 땀이 나고 이마에는 어느새 땀이 흘렀다. 의자에 앉아서 잠시 쉬면서 땀을 닦고, 밑을 내려다보니 마치 황색의 물감을 산 중간 중간에 뿌려놓은 것 마냥 정말 단풍이 아름답게 물 들어있다. 단풍이 절정이라는 말은 산 정상은 단풍이 지고, 산 밑에는 덜 들었다고 하더라도 산 전체의 80%가 물 들었을 때를 절정이라고 하는데 우리 집 뒷동산이 지금이 절정이었다. 하마터면 이렇게 곱게 물 들은 단풍을 보지 못할 뻔 했다.
내장산에 가서 보지 못한 단풍을 우리 집 뒷동산을 올라가서 보았다. 단풍은 가을이 깊어가는 신호이기도 하다. 가을이 더 깊어져 단풍이 낙엽 되어 떨어지기 전에 여기저기 나지막한 뒷동산, 옆동산. 앞동산으로 부지런히 단풍구경을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참 만에 뒷동산에 올라 곱게 물든 단풍도 보았고, 길 위로 떨어져 쌓인 낙엽을 밟으며 가을이 가는 소리도 들었다. 이렇게 우리 동네 뒷동산의 가을은 점점 깊어만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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