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해는 짧다고 한다. 그런데도 오늘 하루는 아주 긴 하루였다. 그것은 우성회 회원들이 내장산으로 단풍구경을 가면서 도중에 있는 동아일보와 고려대학교를 설립한 김성수선생 생가를 들렀고, 비록 그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았긴 해도 미당 서정주시인의 생가를 들렀는가 하면 동백꽃으로 유명한 선운사를 들렀다. 그런데다가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듯이 선운사 입구의 삼거리에 있는 ‘신덕식당’에 가서 장어구이에다가 복분자주를 반주로 하여 격식을 갖춰 근사한 점심식사를 했다. 그리고는 고창에서 정읍으로 이동하여 내장산으로 가서 단풍구경을 했으니 이만하면 늦가을의 하루해가 짧다고 어떻게 말할 수가 있단 말인가.
우성회는 동아쏘시오그룹의 임원출신 OB모임으로서 오랜 역사와 전통이 있는 친목단체이다. 회원은 60명 가까이 되며 모사로부터 별도의 지원 없이 순수하게 회비로 운영하고 있어도 운영자금이 넉넉할 정도로 재정도 탄탄하다. 그러고 보니 우성회 일원이 된지가 벌써 5년이 다 되었다. 그래서 오늘은 우성회의 여러 선배들과 같이 내장산으로 단풍구경을 갔다 온 얘기를 해볼까 한다.
요즘은 지방을 가도 도로는 잘 닦아놓아서 시내만 벗어나면 시원스레 달릴 수 있다. 아래 지방으로 내려갈수록 군데군데 안개가 낀 지역이 있어도 거의 정해진 속도를 다 달릴 수가 있었다. 줄포톨게이트를 빠져나가 면소재지의 길을 포장공사 하느라고 차가 좀 지체되긴 했어도 김성수선생 생가에 도착하니 오전 11시를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김성수선생하면 고창에서 태어나 한국의 근대사에 상당히 영향력이 있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기도 하다. 해방이 되기 전 2-3년 동안 학병제와 징병제를 찬양하는 글을 수십 편 써서 일제치하를 정당화하기도 해서 부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한국의 근현대사에 있어서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등 여러 부문에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족적을 남겨서 긍정적인 측면이 더 많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오늘은 김선생이 태어나서 자란 곳이기도 한 생가를 찾아서 선생의 유소년기를 보낸 집과 방을 둘러보았다. 여러 채의 집들이 질서정연하게 있는데 가장 눈여겨 볼 것은 각 집 뒤에 있는 굴뚝이었다. 원래 여느 집들은 집 뒤편에 본집과 붙여서 굴뚝이 있는데 김선생 생가에는 굴뚝이 뒷마당에 나지막하게 있었다. 그 이유는 그 때만해도 못 살고 배곯았던 시절이라 굴뚝이 높아서 연기가 올라가면 일반 서민들이 끼니가 없어 밥을 짓지 못하는데 배가 더 고프지 않겠는가싶어 굴뚝을 뒷마당에 낮게 하여 주위사람들을 배려하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고 한다. 지금은 집을 지키고 관리하는 사람이 없다보니 여기저기 무너지고 노후화 되고 있어 그냥 보기에 안타깝다.
다시 그 곳을 빠져나와 10분 정도 차로 움직였나 싶다. 야트막한 산에 노란 국화꽃이 산 전체를 덮은 데가 나오고, 조그만 마을 앞에 차를 대놓고 내리니 그윽한 국화향기가 코에 닿는다. 여기저기 국화꽃이 만발하여 제일 먼저 우리를 맞이했다. 미당선생의 문학관 앞에는 문화제 행사를 하는 것 같은데 사람들은 많이 보이지 않고, 은은한 음악소리가 잔치 집인 것을 알려주고 있다. 미당 선생생가로 들어가는 초입에는 동네 아줌마들이 집에서 키운 특산물들을 내놓고 파는 모습이 보이고, 조금 걸어 들어가면 바로 초가집이 나오는데 여기가 미당선생의 생가이다.
미당선생은 시인으로서 학자로서 우리나라 문학계에 대단한 업적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일제말기에 태평양전쟁을 찬양하고, 조선인의 전쟁참여를 독려하는 시와 글을 써서 전쟁터로 내보내는데 열을 올렸는가하면 일본이 패망하자 “일본이 그렇게 쉽게 질지 몰랐다.”는 말도 서슴없이 할 정도로 친일 반민족행위자이기도 하다. 또한 한국 문학계에서 독보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였으나 일제 강점기뿐만 아니라, 군부 독재와 유신독재 치하에서의 처신 등으로 시인으로서의 자질과 문학적 명성과는 별도로 그 역사적 평가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다시 차를 타고 15-6분을 달리니 선운사 입구가 나오고 차도 많고 사람들도 북적거렸다. 평일인데도 어디서 그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는지 걷는 길이 꽉 차서 걸어야 했다. 단풍은 단풍나무만 단풍이 들고, 아직 산에 있는 나무들은 퍼렇게 그냥 있었다. 선운사는 자주는 아니더라도 몇 번 왔었다. 그런데도 온 지가 한참이 돼서 들어가는 입구가 생소했다. 초입에서 절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선운사는 신라 진흥왕이 창건했다는 얘기가 있는가하면 백제 위덕왕 때 고승 검단이 창건했다는 말도 있다. 도솔산 자락에 자리를 잡은 선운사는 경내가 여느 절에 비해 널찍하면서도 편안해 보였다. 뒤로는 동백나무 숲이 단지를 이루고 있어 동백꽃이 필 때는 사찰과 잘 어우러져 선운사를 찾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즐거움을 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내려오는 길은 개천을 따라 데크길로 되어 있어 걷기도 편하고 천천히 걸어 내려오다 보면 단풍도 볼 수 있어 기분도 좋다.
선운사를 한 바퀴 돌아내려오다 보니 시장도 할 때가 되었고,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는데 먹고 구경을 하기위해 삼거리에 있는 ‘신덕식당’으로 장어를 먹으러 갔다. 며칠 전에 예약을 할 때는 맛이 있을까 걱정을 했는데 실제로 와서 먹어보니 담백하면서도 깊은 맛이 있었다. 더구나 고창에서 직접 담은 복분자 술로 반주를 하니 뭐하나 부러울 것이 없다. 그래서 여행을 가거나 놀러갈 때는 날씨 좋은 것이 반은 성공한 거고, 그 다음이 눈으로 보는 즐거움도 있지만, 성공적인 여행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먹는 즐거움을 빼놓고는 좋은 평가를 받을 수가 없다. 이런 좋은 음식점을 소개해주시고, 더구나 복분자 술까지 챙겨주신 윤재준사장님께 고마운 마음이 절로 들었다.
고창 선운사에서 정읍까지는 거의 한 시간 가까이 온 것 같다. 오전이 아니고 오후 시간이라서 통행이 좀 나지지 않을까 싶었는데 차에 치고 사람에 치여서 다니기가 쉽지 않았다. 내장산에도 산 위쪽으로는 그런대로 단풍을 볼 수가 있지만, 밑으로는 아직 단풍이 제대로 들지 않아서 곱게 물 들은 단풍은 이달 중순에나 되어야 제대로 보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택시를 타고 산으로 올라가면서 내장산의 가을 정취를 느껴볼 욕심으로 계속 올라가니까 택시가 갈 수 있는 종점에 가서야 그나마 단풍을 군데군데 볼 수가 있었다. 그리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벼락 맞은 대추나무조각품과 나무뿌리로 만든 조각품, 한지로 만든 여인상, 병풍 등을 보는 것으로 단풍을 대신하였다.
이렇게 서울을 떠나 한 버스를 타고 여행을 같이 한다는 것이 쉽지가 않은데, 이번 우성회의 가을여행은 전북 고창과 정읍에 와서 깊어가는 가을의 정취를 흠뻑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느끼고 가게 되어 올 가을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지 않을까 싶다.
“회원님들, 모두가 좀 더 건강하셔서 자주는 아니더라도 이처럼 가끔은 한 번씩 나들이 하면서 세상 돌아가는 얘기도 하고 또 듣기도 하면서 소통하는 것도 우리가 나이 들어 살아가는 방법이지 않겠소? 여기저기 따라 다니느라고 고생하셨소.”
우리의 즐거운 여행을 위하여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안전운전을 하시느라고 고생하신 서일관광의 장사장님께 고맙다는 인사말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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