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동유럽 7개국을 가다

강일형(본명:신성호) 2015. 4. 11. 17:17

 

 

우리나라의 노래 가사에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라는 말이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가사에 숨겨져 있는 말뜻을 알려고도 꼭 알아야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었다. 그냥 청춘시절에 놀러 다니지 못한 어른들이 한이 되어 입버릇처럼 읊는 소리로만 들리었는데 실제로 내가 나이 들어 여행을 한다고 왕복 30시간 가까이 비행기를 타보니 그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불과 3년 전에 그리스, 터키를 갈 때만해도 이런 노래 구절이 떠오르지도, 생각나지도 않았는데 3년이라는 세월은 여행을 오가며 몸에서 받아들이는 고단함을 먼저 걱정해야할 만큼 몸의 빠른 변화에서 새삼 세월의 무게를 느낀다. 

 

밤새껏 하늘을 날라 독일의 남부도시인 뮌헨에 도착하여 내리자마자 버스로 환승하여 독일의 아웃토반 고속도로를 달리었다. 끝없이 펼쳐지는 초록들판이 이어졌다가 끊어지고를 반복했다. 좀처럼 산은 보이지 않고 허허벌판을 네댓 시간을 달려서 도착한 곳이 독일의 서쪽과 프랑스의 동쪽이 만나는 국경지대인 알자스지방이다. 여기서는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했을 때 알퐁스 도데의 소설 마지막 수업으로 잘 알려진 지역이기도 하다.

 

 

알자스지방에서 가 볼만한 곳으로는 전쟁을 겪으면서도 비교적 9세기 때 건물부터 현재의 건물까지 병존하며 조화를 잘 이루고 있는 콜마루를 얘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인구 6-7만의 작은 도시지만 고풍스러운 집과 창문, 돌로 포장된 거리, 집 사이로 흐르는 수로가 하나같이 예쁘다 못해 잘 그려진 그림을 보는 듯하다. 또한 라인강 서쪽 연안에 리크위르라는 마을을 찾았는데 언덕과 들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은 포도밭을 볼 수가 있다. 마을은 크지 않으나 오래도록 전통을 이어 받아 살았는지 현대식 건물과는 확연히 차이가 있을 정도로 구분된다. 이 리크위르지역에서 생산되는 포도는 백포도주 원료로서 그 명성이 높다고 한다. 리크위르에서 나오다 보니 들어갈 때는 보지 못한 황새마을이 있었다. 버드나무 위에 10여 마리의 황새가 자태를 뽐내며 우리의 일행을 환송해줬다.

 

 

우리는 다시 약 1시간을 이동하여 강으로 둘러싸여 아름답기로 소문난 스트라스부르 도시로 이동했다. 이 도시는 프랑스와 독일의 국경지대에 위치하고 있고, 인구가 약 27만 명으로 우리나라의 도시에 비하면 작은 도시이지만, 로마 직속의 주교관할지역이어서 알자스지방의 경제, 문화 중심지로 번영을 누려왔다. 또한 옛 시가지는 노틀담성당과 중세의 옛 모습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어 1988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스트라스부르의 서쪽으로 있는 쁘띠프랑스는 중세의 모습이 잘 보존된 지역이다. 어부, 가죽생산자, 물방앗간 주인 등이 살던 곳으로 알자스 전통목조가옥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강 주변으로 중세풍의 아름다운 집들이 늘어서있는 골목길을 오랜 세월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고 밟고 지나가서 반들반들한 돌길을 편안하게 걸어볼 수가 있다. 9년 전에 독일, 프랑스 등을 여행할 때는 큰 도시 위주로 여행을 했는데 이번에는 이렇게 작고 아름다운 도시로 여행하는 것도 또한 괜찮았다.

 

 

또 다른 아침을 맞는다. 여태까지의 프랑스여행이 덤으로 했다면 앞으로는 본격적인 동유럽을 여행하게 되는데 그 첫 번째로 인구가 만 오천명으로 체코의 작고 아름다운 도시 체스키크롬로프에 대해 얘기를 해볼까 한다. 체스키크롬로프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정도로 중세풍의 아름다움이 도시 구석구석에 배어 있다. 체스키크롬로프 성에서 블타바강변으로 내려다보이는 붉은 지붕과 둥근 탑이 잘 어우러져 동화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강물색이 푸르지 않고 시커먼 색깔이 나는 것은 철이 많이 녹아 있어 강바닥이 변해서 그렇게 보인다. 우리는 망토다리를 지나 성 한가운데를 통과해 우측으로 빠져나와 이발사다리를 걸어서 건너 시내로 들어와 미로처럼 얽혀있는 골목길을 걷다보면 수공예점을 자주 볼 수가 있다. 우리는 거기서 점심을 먹으면서 친구내외와 같이 레드와인을 한 잔씩 마시면서 동화마을에 온 것을 자축했다.

 

 

체스키크롬로프에서 약 2시간을 달려 천년 역사를 지닌 백탑의 도시 프라하로 이동을 했다. 우선 체코에 대해 알아보자. 체코의 인구는 약 1,060만 명이며 수도는 프라하이고, 프라하에는 약 130만 명이 살고 있다. 체코의 면적은 우리 남한보다 약간 작다. 프라하 도심을 보고 느낀 것은 건물의 양식이다.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 등 다양한 건축양식을 프라하 구시가지에서 볼 수가 있다. 벨기에 건축물이 선이 작은 아기자기한 고딕과 바로크의 혼합물이라면 프라하의 건축물은 건물규모가 5-6층의 높지 않은데도 선이 굵고 탄탄한 감이 들 정도로 고풍스러움이 건물에 배어 있다

 

동유럽을 가면 도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전차인데 여기서도 전차는 자주 눈에 띄었다. 프라하에서는 직접 전차를 타고 네댓 정거장을 가서 내려서 시내를 거쳐 블타바강변길을 따라 걸어서 까를교로 올라가 보면 멀리로는 프라하성과 성 비투스 대성당이 강 건너로 보이고, 가까운 곳의 난간 대에는 30개의 카돌릭 성인의 석상과 장식물로 가득하다. 특히 네모무크 동상 밑에  있는 십자가에 손을 얹어 소원을 빌면 들어준다는 얘기가 있어서인지 조각상 앞에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다리 중간에 세워진 고딕양식의 두 개의 탑은 14세기의 건축물로 통행세를 받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 다리는 프라하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일 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중세시대의 다리로 손꼽힌다. 1357년에 착공하여 45년 후인 1402년에 완공하여 지금에 이르니 600년이 넘은 다리이다. 차가 다니지 않고 사람만 다니는 다리여서 사고걱정은 없어도 볼거리가 많아 잠시도 한눈을 팔수가 없다. 비가 오고 바람도 세차게 부는 데도 많은 관광객들이 그 다리를 걷고 있었다.

 

다음으로 프라하에서 볼 것은 체코의 상징물인 흐라차드니 언덕에 세워진 프라하 성을 빼놓을 수가 없다. 이 성은 길이가 570m이고 폭이 128m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고성 중의 하나이다. 9세기부터 짓기 시작하여 14세기에 이르러 지금의 모습이 갖추어져 18세기까지 다양한 건축양식이 가미되어 세련된 모습이 되었다. 성안에 건축물로서는 10세기 완공된 성당을 천년에 거쳐 고딕양식으로 증개축을 하여 지금에 이르는 체코에서 가장 큰 규모의 성 비투스 대성당이 있고, 또한 체코에서 가장 오래된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 이르지 성당이 있으며 연금술사가 살았다는 황금소로와 12세기에 지은 구왕궁이 있다.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구시가지에서 유명한 건축물로는 틴성당을 빼놓을 수가 없으며 프라하 성과 구시가를 연결해주는 시간여행의 통로인 까롤교도 눈여겨봐야 한다. 특히 프라하의 야경은 체코의 여행에 백미이다.

   

 

 

 

 

 

 

 

 

 

동유럽의 국가는 전에 공산국가였다가 1989년 이후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분리독립을 해서 적게는 두 나라, 많게는 네댓 나라로 나누어지기도 해서 때로는 생소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나라가 있다. 오늘은 보헤미안의 풍류가 서린 슬로바키아의 수도인 브라티슬라바에 약 5시간을 걸쳐 달려왔다. 버스로 이동한 것 중에는 가장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슬로바키아의 인구는 약 550만 명이고, 남한의 절반 크기이며 수도인 브라티슬라바에는 약 50만 명이 살고 있다. 슬로바키아의 수도 브라티슬라바는 도나우 강을 끼고 있어서 평화로울 뿐만 아니라 동유럽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서 고풍스럽고 정감이 있다. 특히 시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브라티슬라바 성과 14세기에 세워져 구 시가지의 기점이 되는 미카엘스 탑과 성프란시스코 교회가 명물이다. 세인트 게이트에서 왕의길을 걷다 보면 땅바닥에 나침반모양의 세계 주요도시의 방향이 표시가 있고, 서울은 8,138km로 나와 있는 것을 보고 참으로 멀다는 생각이 들었다.

 

 

 

 

 

 

 

슬로바키아의 수도인 브라티슬라바에서 2시간 30여분을 달려서 다뉴브 강의 진주라고 불리는 헝가리의 수도인 부다페스트에 도착했다. 헝가리는 우리나라 면적보다는 작고, 인구는 약 1,000만 명이며 부다페스트에는 180만 명이 살고 있다. 부다페스트는 다뉴브 강을 중심으로 서쪽을 부다라고 하고, 동편을 페스트라고 하는데 두 개의 지역을 합쳐서 부다페스트라고 한다. 부다에는 18세기에 어부들이 성벽에서 적군을 방어했다는 어부요새가 있고, 다뉴브 강이 내려다보이는 겔레르트 언덕, 역대 헝가리 왕들의 대관식이 있었던 마챠시사원 및 부다왕궁이 명물이다. 페스트에는 건국의 아버지라 불리는 성 이슈트반 대왕을 기리기 위한 성이슈트반 사원과 헝거리 정착 천년을 기념해 세워진 기념비가 있는 영웅광장이 관광객이라면 누구나 한 번씩은 들렀다 가는 곳이기도 하다. 부다페스트는 14세기경부터 헝가리의 수도가 되었고, 1872년 부다와 페스트가 합병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시내의 건축물은 동유럽의 정취를 잘 나타내주고 있어 해마다 많은 관광객들이 헝가리를 찾고 있다. 부다페스트에서도 비는 오락가락하더니 관광선을 타고 다뉴브강을 관광할 때 바람은 세차게 불고, 빗방울이 심하게 날리어 제대로 사진도 못 찍었다가 그나마 돌아올 때 간신히 몇 장을 찍어서 부다페스트의 아름다운 밤 모습을 핸드폰에 담아봤다. 헝가리는 포도주의 대표적인 명산지이기도 하다. 그래서 낮에도 백포도주로 목을 축였는데 저녁에는 래드와인으로 헝가리 수도인 부다페스트에 온 기분을 돋구었다.

 

 

 

 

 

유럽에 와서 새로운 아침을 또 맞는다. 오늘은 부다페스트에서 약 3시간 반을 달려서 크로티아의 수도인 자그레브로 이동을 했다. 동유럽 국가들은 다들 근방에 있어서 이동하는 시간이 그렇게 많이 걸리지 않는다. 3년 전 터키를 갔을 때는 적게는 한 나절에서 많게는 8-9시간도 버스투어를 해야 했는데 그 에 비하면 동유럽은 그나마 양반이다. 크로아티아의 면적은 우리나라의 절반 크기이며 인구는 약 450만 명이다. 수도는 자그레브로 인구는 약 80만 명이 살고 있다. 자그레브는 과거 중세적 느낌과 동유럽 고유의 분위기를 간직하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의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세련미가 넘치는 아름다운 도시이다. 과거 헝가리와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아서 구시가지 광장에는 다양한 양식의 건물이 여전히 남아있고, 동유럽의 주요도시인 비엔나, 부다페스트, 류블리나, 뮌헨, 베네치아 등 많은 도시들을 연결해 주는 허브역할을 하고 있다. 자그레브에서 명물인 자그레브 대성당은 약 900년 된 건물로서 두 개의 청탑은 최고 높이 105m이다. 또한 가장 오래된 성당으로서 빨강, 흰색, 파란색 타일로 만든 지붕이 유명한 성 마르트 성당이 있다.

 

 

 

자그레브에서 버스를 타고 약 1시간 반 정도 이동하여 폭포와 물로 둘러싸인 라스토케에 도착했다. 그동안 동유럽의 도시로 다니면서 중세건물과 오래된 성당을 보았다면 이번에는 도회지를 벗어나 마을을 가로질러 언덕배기에서 개울로 시원스럽게 떨어지는 폭포수를 관람했다. 동네어귀를 돌아나가 뒷동산 쪽으로 올라가니 깊은 산도 아닌데 어디서 그 많은 물들이 흘러들어왔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우리는 라스토케에서 다시 1시간 가까이 버스로 이동하여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에 도착을 했다. 16개의 크고 작은 호수가 있고,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목포수가 있어서 크로아티아의 국립공원 중에서 가장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타고 온 버스에서 내리니 정상으로 올라가는 데까지는 여러 칸이 달려 있는 관광열차가 우리를 태우고 20여분 올라갔다. 열차에서 내리니 작고 가냘픈 폭포수가 여러 갈래가 쏟아져 호수를 이루기도 하고 또 내려가면 산 위에서 언덕 밑으로 수십 개의 큰 폭포가 물보라를 치며 떨어져 개울을 이루기도 한다. 이렇게 거의 한 시간 넘게 폭포와 호수를 번갈아가며 보면서 내려오면 커다란 호수와 만나게 되어 배를 타고 건너게 된다. 이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은 실제로 가보지 않고는 가본 사람이 아무리 설명을 잘 해도 상상하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다. 유네스코에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은 수도 자그레브에서 2시간 반이 걸리고, 자다르에서 3시간이 걸린다. 크로아티아를 여행한다면 여기를 그냥 지나치지 말고 꼭 한 번 와서 보고 가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다시 2시간을 달려 크로아티아 해안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인 두브르브니크로 이동을 했다. 아드리해의 진주로 불리는 아름다운 해안 도시의 두브르브니크는 9세기부터 발칸과 이탈리아의 무역 중심지로서 막강한 부를 축적했으며 11-13세기에는 금과 은의 수출항으로 번영을 누렸다. 17세기 중반에 큰 지진으로 도시의 많은 부분이 파괴되었다가 나폴레옹 전쟁 때 옛날의 번영을 누렸다. 1994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1999년부터 도시 복원작업이 진행되어 성채, 왕궁, 수도원, 교회 등 역사적 기념물들을 복원하여 옛 명성을 되찾을 정도로 아름다운 도시로 변모하고 있다. 우리는 케이블카도 있지만 케이블카를 타지 않고, 작은 승합차에 나누어 타고 산 정상으로 올라가 바다와 빨간 지붕이 내려다보이는 해안도시를 꿈에나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장면을 실제로 이렇게 보고 있는 것이다. 파란 바다와 해안가로 이어지는 빨간 지붕만 보이는 집들이 아주 잘 그려진 한 폭의 그림 같다. 우리는 산에서 다시 시내로 내려와 해안가로 쌓아올린 성벽을 따라 40분 정도 도보관광을 했다. 어느 종편TV에서 꽃할매로 방영을 하여 각광을 받은 곳이 바로 여기라고 한다. 그만큼 여기가 아름답다는 얘기이다.

 

 

 

 

 

 

크로티아에서 벌써 4일째를 맞는다. 오늘은 달마시안의 황홀한 꽃이라 불리우는 스플리트로 이동하여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인 아드리아해 연안최대의 로만유적으로 유럽에서 보존상태가 가장 양호한 디오클레티안 궁전을 둘러보았다. 이 궁전은 BC 295년 로마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은퇴 후 머물기 위해 지었다고 한다. 궁전 뒤로 빠져나가서 얼마 걷지 않으면 엄지발가락을 만지기만 해도 행운이 온다는 그레고리우스 동상에 가서 많은 사람들이 만지고 지나가서 반들반들해진 발가락을 실제로 만져 보았다. 성안을 둘러볼 때 길거리 악사들의 연주는 그냥 지나치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훌륭한 연주였다. 시장은 우리 시장처럼 여러 가지 물건과 농산품이 풍성하고 장을 보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 시장을 빠져 나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자다르로 이동을 하여 바닷가로 가보니 넓고 푸른 아드리아 해가 펼쳐진다. 해안가를 걷다보면 바람이 불 때 빈병을 대고 부는 것처럼 휘파람소리가 들리는데 이것을 '바다오르간'이라고 부른다. 바다 쪽으로 나있는 계단에 구멍이 있어 이 소리는 바람이 불어 파도가 밀려오고 빠져나갈 때 자연스럽게 들을 수가 있다. 영문을 모르는 사람들은 상당히 의아하게 생각할 것 같아서 얘기했다. 스플리트는 수도 자그레브에서 항공기, 열차, 버스로도 여행이 가능하고,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해안도시인 두브로브니크와 인접해 있어 함께 여행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로 가는 정기페리가 있어 가기도 하고 오기도 하는데 시간적으로 대여섯 시간 걸린다고 하는걸 봐서는 바다 건너가 이탈리아로 보인다.

 

 

 

 

 

 

 

 

 

 

 

버스로 5시간을 넘게 달려서 세계에서 두 번째이고 슬로베니아에서 가장 긴 동굴이 있는 포스토이나로 이동을 했다. 이 동굴은 총길이가 20km라고 하는데 관광객들한테는 약 5.2km만 개방을 하고 있다. 중국 장가계에 있는 황룡동굴에 가서는 배를 타고 한 2-30분 정도 관광을 했는데 여기서는 꼬마열차를 타고 한참을 들어가서 동굴 안을 구경했다. 석순이 1cm 크는데 100년이 걸린다고 하는 걸 봐서는 고드름처럼 쭉쭉 내려와 있는 것들은 수천, 수만 년이 흘렀을 것으로 짐작할 수가 있다. 대문호 헨리무어가 가장 경이적인 자연미술관이라고 칭송할 정도로 형형색색의 신비롭고 아름다움이 동굴 안 구석구석에 숨어 있다.

 

 

 

 

 

점심을 먹고서는 알프스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블래드 성으로 이동했다. 이 성은 100m의 언덕에 세워져 있는 요새이다. 전면은 호수로 둘러싸여 있고, 멀리로는 마을이 아름답게 눈에 들어온다. 성을 한 바퀴 돌아보고 내려가서 한 번에 10여명의 승객을 태우고 뱃사공이 직접 노를 저어 가는 배를 타고서 호수 가운데 보이는 성당으로 이동했다. 성당은 크지 않지만 섬 언덕에 자리 잡고 있어서인지 오래된 성당처럼 격조가 있어 보였다. 성당 안에 있는 종을 울리면 행운이 온다고 하여 마누라하고 같이 힘껏 당겨 보았다. 종소리가 본인은 잘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은은하게 울렸다. 이렇게 알프스 자락에 있는 섬 한가운데 성당에 들어와 타종까지 하고 있으니 여기 동유럽에 온 것을 감사하게 느낄 따름이다. 동유럽을 다녀보면 사람 사는 모습이 여유가 있고 평화롭게 보인다. 도심에서나 농촌에서나 우리처럼 무엇에 쫒기는 것마냥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가 없다. 특히 농촌에서는 우리나라처럼 봄이 되어 진달래도 피고 밭일도 해야 하는데 집이나 밭에서나 통 사람 구경을 할 수가 없다. 블래드 성은 호수와 섬 안에 교회, 호수가로 작은 마을이 이어져 정말, 이상적인 농촌의 아름다움을 나타내주고 있다.

 

 

 

 

 

 

 

 

블래드 성에서 2시간 반을 달려 골목 모퉁이마다 모차르트의 아리아가 흘러나오고, 뮤지컬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는 짤츠부르크로 이동을 했다. 짤츠부르크는 오스트리아 주도로써 소금도시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수도인 비엔나에서 약 300km 정도 떨어져 있고, 잘츠카머구트라는 아름다운 호수가 동쪽으로 있으며 할슈타트로 가는 여행객이 잠시 쉬었다가는 곳이기도 하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은 고등학교 다닐 때 대한극장에서 단체로 본 기억이 있으니 50년 가까이 되지 않았나 싶다. 여주인공 마리아가 아이들과 같이 도레미송을 부르던 미라벨정원에도 가보았고, ‘음악의 신동이라 불리는 모차르트의 생가와 살던 곳 그리고 외갓집까지도 지나는 길이라 둘러보았다.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이어주는 다리에는 자물통이 수천 개 달려 있는데 사랑의 언약의 증거라고 한다. 구시가지에 들어오니 건물마다 가게의 특징을 철에다 표현한 예술적인 수공간판들이 많이 달려 있어 독특하고 아름다운 분위기를 살려내고 있다. 중세시대 때 문맹인이 많아서 무슨 가게인지를 알리려고 하는데서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200년 이상 된 것도 있다고 하니 가히 전통이 있는 도시가 아닐까 싶다. 이 도시에서 기네스북에 올라간 2층집이 가장 작은 방이 있는데 2평이라고 한다. 여기는 모차르트 쿠겔른 초콜릿이 유명한데 1890년 페스트라제과의 요리사인 폴푸르스트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현재 50개국에 수출한다고 하는데 초콜릿이 많이 비싸다.

 

 

 

 

 

 

 

동유럽에 온지가 벌써 열흘이 넘어섰다. 사람들이 지친 데다가 한 사람이 감기가 들어 기침을 하니 여기저기서 감기가 걸려 다들 난리이다. 같이 간 친구 내외도 감기 때문에 고생하더니 이제는 마누라까지 쿨룩쿨룩 거린다. 그래도 여행은 계속될 뿐이다.

 

오늘은 짤츠캄머굿의 진주라 불리는 할슈타트로 관광을 나섰다. 크로아티아에서는 그나마 날씨가 좀 나았는데 오스트리아로 들어오니 완전히 한겨울이다. 산에는 눈이 하얗게 쌓여 있고, 가는데도 쉬지 않고 눈이 내렸다. 그 눈을 다 맞고 와 보니 산은 깎아 세운 듯 경사가 심하고, 호수가로는 경사가 있는데도 집을 세워 사람들이 살고 있다. 물가와 산 아래 낮은 부분만 눈이 없고 산 전체가 눈이 쌓여 새하얗다. 호수가를 걸어가서 배를 탔다. 걸어가는 동안도 건물 하나하나를 보고 감탄을 했지만, 배를 타고 호수를 한 바퀴 돌 때는 호수와 눈 쌓인 산, 그리고 마을이 한꺼번에 어우러져 딴 세상에 온 듯이 황홀할 정도이다. , 좋은 곳의 풍경을 보고 마음에 담아 간다. 다시 온 길로 40분 정도 되돌아 나와 케이블카를 타고 1,500고지를 올라가서 알프스의 정기를 온몸에 받으며 설경을 마음껏 구경했다.

 

 

 

 

 

 

 

할슈타트에서 약 3시간을 달려 베토벤, 모차르트, 브람스 등 수많은 음악가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음악의 도시인 오스트리아 수도 비엔나에 도착했다. 오스트리아의 면적은 우리나라보다는 약간 작고, 인구는 830만 명이며 수도인 비엔나에는 약 180만 명이 살고 있다. 오스트리아 수도인 비엔나에는 수세기에 걸쳐 합스부르크 왕가의 수도로 정치, 문화, 교통의 중심지였다. 그래서 비엔나에서는 뭐니뭐니해도 쉔부른 궁전을 손꼽지 않을 수 없다. 쉔부른 궁전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름 별궁으로 황제의 수렵용 궁전이었던 자리에 지었고, 궁전에는 약 1,400개의 방이 있으며 궁전내부는 화려하고 우아한 로코코 양식으로 되어 있다. 궁전 통로나 바닥은 나무를 잘라 장식한 것도 다른 데 비해 독특하다. 시내의 건물을 보면 동유럽 국가들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건물 형태이기는 하나 건물마다 독특하게 장식한 것이 다르다. 그만큼 예술의 도시라서 그런지 세세한 것까지도 신경을 써서 건축한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본다. 특히 게른트너 거리의 건물은 아름답기도 하거니와 서구적인 건축물을 대표할 만큼 고풍스럽다.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고딕양식의 건축물로는 모차르트의 결혼식과 장례식이 거행된 성 슈테판 대성당1147년에 본당이 지어졌으니 약 868년이 된 셈이다. 또한 그리스 신전을 모델로 하여 1883년에 세워진 국회의사당도 빼놓을 수 없는 명물이라고 하겠다. 오스트리아의 수도인 비엔나에서의 점심은 나폴레옹이 먹었던 식당에서 격식을 갖추어 먹었다. 이 식사가 동유럽에서 먹는 마지막 식사가 되었다.

 

 

 

 

 

 

 

 

 

 

 

 

 

 

이번 동유럽 여행을 통하여 느낀 것은 어느 나라에 가든 시내 건물이 높지 않으면서도 품위가 있고, 탄탄해 보이며 예술성을 살려서 건축을 했다는 것이다. 향후 수백 년을 내다보고 짓는 것도 우리와 다르지 않나 싶다. 또한 농어촌의 집들도 대충 지은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유지하면서 주위건물과 조화를 이루도록 건축을 해서 마을이 지저분하지 않고 너무도 깨끗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이번 여행은 고등학교 친구 내외하고 같이 갔는데 내 평생에 잊지 못할 여행이었다. 친구가 몸살이 나서 고생을 하는 것이 안타까웠는데 몸이 어떤지 안부나 물어봐야겠다. 우리일행과 여행을 같이한 원주와 대전 여자 분들과 그 외 여러 동반자들에게 고맙다는 말씀을 전하며, 몸이 불편한데도 12일을 한결같이 우리를 위해서 고생하신 가이드 이승한 선생께 고맙다는 인사말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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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날자는 수정하지 않아서 잘 못 표기된 것이며 3/26~4/7까지 다녀온 사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