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산에 단풍은 들지 않았지만 계절은 가을의 한가운데 있다. 이런 좋은 계절에 건강한 사람이 집에 있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그래서 마누라한테 먹던 과일 챙기고 물 한 병 들고서 나가자고 했다. 가면서 김밥 두 줄 사서 어디를 가든 요기를 하면 되니까 움직이기가 쉬웠다.
갈 곳을 딱히 정해 놓은 데는 없었다. 마누라가 등산을 싫어해서 임도나 걷는 길을 생각하다 보니 먼저 번에 의왕에 있는 백운호수를 지나 백운동산에서 백운산 방향으로 등산을 할 때 ‘산들길’이라는 안내판을 본 기억이 나서 무턱대고 그 길을 가기 위해 인덕원 가는 버스를 탔다. 인덕원역에 내려 백운호수를 가는 마을버스로 환승을 해야 하는데 마을버스5번을 타는 것이 날까, 아니면 6번을 타도되는지 고민을 하다가 그냥 빨리 오는 6번 마을버스를 탔다.
마을버스에서 내린 곳이 의왕의 백운호수 주변로 우측으로 있는 ‘백운로삼거리’였다. 내려서 삼거리 길을 쳐다보면 2-30m떨어진 곳에 우마차나 경운기가 다닐 정도의 좁은 포장도로가 보이는데 거기가 백운호수에서 시작하는 ’산들길’의 입구이다. 여기에서 의왕하늘쉼터나 오메기마을까지 갔다 오면 약 6km는 족히 될 것 같아서 그 길을 기분 좋게 걷기 시작했다.
도심에서 2-30분밖에 걸리지 않는데도 길옆으로 여기저기를 둘러보면 들깨를 베어 말리는 것도 보이고, 붉은 고추밭, 싱싱한 고구마덩굴, 배추밭, 과수원 등 그동안 잊고 지내던 시골의 정취를 쉽게 느껴볼 수 있다. 가다보면 밭에서 일하는 농부도 만나고, 길옆으로 있는 교회를 지나 수풀 속에 숨어있는 듯한 식당을 지나면 마을과 논밭은 자취를 감추고 4-50년생의 미끈미끈한 소나무밭이 나온다. 그 길을 걸을 때 땅바닥을 잘 보면 밤알이 작지만 붉고 반들반들한 알밤을 주어 맛보기도 한다. 알밤나무 길은 산마루에 올라설 때까지 계속되었다. 고갯마루에 올라서서 오른쪽으로 가면 모락산이고, 좌측으로 올라가면 백운산이라고 마누라한테 얘기했더니 등산을 좋아하지 않으면서 갑자기 백운산을 가자고 한다. 그래서 산들길은 여기까지만 걷고 백운산 등산으로 변경했다.
수도권남쪽에 사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백운산과 그 옆에 있는 광교산은 저지난달에도 갔다가 왔고, 작년에도 갔다 온 적이 있다. 봄과 여름에 갔다 왔으니 가을에 가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풍이 들었으면 금상첨화겠지만 아직 단풍이 들지 않았어도 가을 산은 등산하기에 참 좋다.
백운산 등산로를 접어드니 등산로에 떨어진 도토리가 얼마나 많은지 발에 밟혀서 부서지기도 했다. 정상으로 올라가는 등산로는 오전동공원묘지를 지나면 가팔라져서 숨소리가 빨라지고 속도가 나지 않는다. 가파른 오르막을 힘들게 올라오면 쉬었다 갈 수 있게끔 벤치가 꼭 기다리고 있다. 백운산도 그렇지만 모락산도 가파른 오르막에는 벤치를 설치해 놓아 등산객들을 잘 배려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 이 모두가 의왕시에서 많은 관심을 갖고 공을 들였기에 이처럼 편안하게 쉬었다 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고마운 일이다.
백운산을 올라가다 보면 굵직굵직한 금강송을 자주 만나게 된다. 7-8부 능선 쯤 올라가서는 아주 잘 생긴 금강송도 군락을 이루고 있어 등산객들의 마음을 기분 좋게 하여 무거운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금강솔밭을 지나 얼마 안가 백운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긴 계단이 나오는데 여기가 가장 힘든 코스라고 본다. 한참을 헐떡거리고 숨을 쉬어야 백운산 정상에 올라설 수 있다. 우리가 백운호수를 출발해서 정상까지는 꼭 2시간이 걸렸다.
마누라와 같이 늦은 점심을 김밥과 토스토로 때우고, 커피 한 잔을 마시니 이제는 새로운 힘이 생겼는지 원래는 여기까지만 왔다가 내려가려고 생각했었는데 광교산까지 가자고 한다. 백운산정상에서 광교산까지는 왕복 3.6km이지만 비교적 평지이어서 1시간 20분 정도 걸렸다. 이렇게 예정에도 없던 백운산과 광교산 정상을 또 밟아 본 것이다.
백운산 정상에서 바라산을 가는 길은 고분재에서 바라산까지 약 700m의 오르막 길을 빼놓고는 계단이 다소 있어도 비교적 평이하게 내려가는 길이어서 2.2km 거리의 산길인데도 시간은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바라산전망대에서 백운호수를 바라보면 아주 평화롭게 보이고, 가깝게는 관악산이, 멀리로는 북한산까지 볼 수가 있는데 오늘은 연무가 있어서 제대로 조망할 수가 없었다. 바라산에서 하오재 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24절기를 표시한 365계단이 가파른 절벽에 나타난다. 동지, 대설, 소설, 입동... 등 다음 절기를 생각하며 내려오다 보니 어느새 365계단을 다 내려 왔다. 바라산에서 백운호수 방향으로 내려오다 보면 의왕시에서 만들어 놓은 ‘바라산산림욕장’을 만나게 된다. 야영장, 펜션, 산책, 등산 등 다양하게 시설을 이용할 수가 있다. 도회지 가까운 곳에 이런 여가시설이 있어 바쁜 일상을 사는 사람들도 편리한 시간에 짬을 내어 쉽게 이용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아 보였다.
가을 해는 짧아서 금방 해가 저물어 어둠이 찾아왔다. 오늘은 얼떨결에 백운산(567m), 광교산(582m), 바라산(428m) 등 3개의 산을 한꺼번에 다녀왔다. 그것도 한나절 만에 다녀왔으니 그런대로 건강은 잘 유지하는 거 같아서 기분이 좋다. 그러고 보면 오늘도 고마운 하루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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