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바우길은 1구간부터 17구간까지가 있는 데 오늘 우리가 걸은 바우길은 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다는 9구간인 ‘헌화로 산책길’이다. 정동진역에서 정동진해변과 모래시계공원을 시작으로 정동진 마을 뒷산을 올라갔다가 심곡항, 헌화로, 금진항, 옥계해수욕장을 걸쳐 옥계시장에서 끝나는 약 14km의 그리 짧지 않은 코스이다.
우리를 태운 버스가 정동진역에 도착할 때가 오전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역 광장 공터에서 걷기 전에 준비운동을 하고 역 앞의 백사장 길을 걷기 시작하여 세계에서 가장 큰 모래시계가 있는 모래공원으로 이동했다. 정동진은 지난달에도 왔다가 갔고 그 전에도 몇 번을 와 보았지만, 싫증이 나지 않고 또 오고 싶은 곳이 여기이기도 하다. 지난달에 왔을 때는 바다열차도 타보기도 했었다.
모래공원을 둘러본 후 정동진 마을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뒷동산 길로 접어드니 소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많이 가파른 길도 아닌데도 날씨가 푹한데다가 옷을 두껍게 입어서 그런지 오르막을 걷기 시작하고 얼마 안 되어 이마에 금새 땀방울이 맺히었다. 소나무 숲길이 끝나고 잔잔한 갈참나무 숲이 나오는 가파른 산길을 올라서자 동해바다가 멀리까지 다 보인다. 여기서 바다를 내려다보며 한참 산길을 걸어 내려오다 보면 포장도로를 만나게 되고, 심곡리라는 입석이 나온다. 그 주위가 온통 배추밭인데 수확을 좋은 것만 하고 덜 성장한 것은 빼놓았던지 추위를 견디다 못해 시들었지만 아직도 푸르름을 유지하고 있다. 이곳을 지나 10여분 걸어 내려가니 양쪽 산 계곡으로 어촌이 나온다. 여기가 바로 심곡항이다. 우리는 여기서 ‘망치매운탕‘으로 점심식사를 하면서 반주로 소주도 한잔 곁들였다.
점심 식사 후에 심곡항 전망대를 오르기 위해 산책로를 따라 20여분 올라가니 소나무 사이로 펼쳐지는 바다와 바위 그리고 도로가 함께 어우러져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이 보였다. 정동진을 그렇게 많이 왔으면서도 실제로 차로 지나가면서 슬쩍 보는 것 하고 오늘처럼 이렇게 전망대에 올라와서 내려다보는 것은 천지 차이였다. 오늘 와서 다른 것 하나 보지 않고 이것 하나만 보고 가도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 참, 오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해안로를 따라 걸었는데 여기저기 눈에 띄는 괴이한 바위들이 가는 길을 멈추게 한다. 바로 여기가 헌화로이다. 이 길을 걷다 보면 군데군데 방파제 너머로 우리가 걷는 도로까지 파도가 밀려왔던 흔적도 쉽게 볼 수가 있고, 파도가 밀려왔다가 나갈 때 몽돌들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따르륵따르륵’ 귀를 간지럽히듯이 잘 들어야 들릴만큼 작게 들린다. 내 평생 이 소리는 여기에 와서 처음 들어봤다. 사람도 걷고, 차도 다니는 도로를 얼마를 걸으면 금진항이 나온다. 여기서 우리가 잠깐 휴식을 취했는데 도루목을 한 다라씩 사갖고 가는 사람이 있어서 값을 물어보니 한 다라에 2만원 한다고 한다. 도무목이 제철인 듯 했다.
금진항을 뒤로하자 바로 옥계해수욕장이 길게 이어졌다. 초입에는 고운 은모래가 우리를 맞이했다. 고운 모래에 반했는지 불혹을 넘어 지천명의 나이들인데도 등산화를 벗고 모랫길을 걷다가 찬 바닷물에 발을 담그기도 했다. 바다, 모래가 그 친구들을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게 한 듯하다. 발도 시리지 않은지 그 긴 모래사장을 맨발로 꽤 많은 친구들이 걸으면서 좋아한다.
백사장 길이 끝나고 소나무 숲길이 나왔는데 숲길 사이로 보면 크고 작은 무덤들이 많다. 공동묘지 같았다. 그 길을 걸으면서 생각해 보니 이 길은 ‘산자와 죽은자가 같이 걷는 길이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죽은 사람도 그곳에서 영원히 쉬려고 갔을 테고, 또 우리 같이 걷는 사람들도 이 길을 걷고 있지 않은가. 사이사이로 굵직굵직한 소나무들이 지나간 세월을 말해주는 듯했다.
그길을 빠져나와 조금 더 걸으니 한국여성수련원이 나왔다. 여성수련원 앞 솔밭길을 벗어나서 우리는 공식적인 도보행사를 모두 마쳤다. 오늘 이렇게 아름다운 길 걷게 해준 ‘마음길따라 도보여행’의 라오대장님께 감사의 말씀을 올리고, 같이 걸어준 카페회원들께도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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