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보

대공원 산림욕장길을 가다

강일형(본명:신성호) 2011. 1. 25. 11:26

 

  처음에는 이 길을 가도 되는지, 또 나하고 누가 같이 걸어줄 사람이 있을까 망설임에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고민을 했었다. 큰 마음 먹고 가기로 하고, 집을 나섰다. 그런데 이렇게 반신반의하면서 갔는데 끝나고 보니 가길 아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가지 않았으면 크게 후회할 뻔 했다.

 

 

그러면 과천 대공원 산림욕장으로 가보자.

 

우리가 전철 4호선 대공원 2번 출구에서 만나기로 한 시간이 오후 2인데 정한 시간보다 먼저 나가서 기다리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 안양 비산동에서 대공원까지는 2-30분이면 충분이 갈 수 있는 시간인 데도 12시 반에 출발했으니 얼마나 빨리 도착했는지는 얘기를 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너무 일찍 나간 탓으로 등산복만 입은 사람들만 보면 부지런히 따라가서 보면 아니고를 몇 번을 하고 나서는 그냥 2번 출구에 가서 기다리기로 했다. 얼마를 지나서 일행의 깃발이 보였다. 많이 반가웠다.

 

오늘은 토요일이지만 명절 끝난 지가 바로라서 이렇게 붐빌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아이들과 젊은 엄마 아빠들, 나이가 어느 정도 드신 어르신과 손자 손녀들,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코와 키가 큰 젊은 남녀들, 얼굴이 까맣고 곱슬머리인 사람들과 아주 백색은 아니지만 우리네 얼굴보다는 훨씬 하얀 사람들, 우리 일행은 이렇게 복잡한 대공원 들어가는 입구를 그들과 섞여 걸었다. 그들과 같이 한참을 걷다 옆길로 접어들었는데 그 길은 사람들은 그리 많지는 않았는데 많은 차들이 밀리는 차도에 늘어서 있다 보니 약간은 짜증이 날려고 했다. 금방 마음을 고쳐먹고 즐겁게 걷자, 그래야 건강을 지키고 여기 온 보람을 느끼는 거가 아닌가? 스스로 마음을 달래며 얼마를 걷다 보니 대공원 뒷산이 나오고, 그리 높지 않은 나지막한 오르막 언덕길이 나왔다. 조금 빨라지는 숨소리를 앞에 가는 사람, 뒤에 따라오는 사람한테서 들으니 아, 그래도 도회지가 아닌 산은 산인가 보다.

 

내리막 오르막을 얼마를 걸었는데 이제는 한숨 돌리고 가야 되는지 여기저기 흩어진  등받이가 없는 벤치에 선두 일행이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도 그 옆에 살그머니 가서 앉았다. 그제서야 앞뒤 좌우를 살펴보니 진초록의 무성한 나뭇잎, 위를 올려보니 나뭇가지 사이로 초가을 하늘에 두둥실 떠있는 흰구름을 뚫고 몇 가닥의 강렬한 햇살이 우리를 비치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숨소리를 줄여보니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흐르는 도랑물 소리가 그런대로 듣기 좋을 만큼 들렸다. , 좋다! 이런 걸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서 아주 멀리 몇 시간씩 차를 타고 나가야만 느끼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가까운 곳에도 있는걸 왜 몰랐을까? 지난 주 일요일, 지리산 둘레길을 갔었는데 가고 오는 데만 무려 7시간 이상이 걸렸다면 바보라고 하지 않을까?

 

, 그러면 또 걸어보자. 비탈길 산길을 따라 오르막내리막을 몇 구비를 돌았다. 아직 낙엽은 없었지만, 떡잎이 되어 떨어진 참나무길, 봄에 걸으면 아카시아향기가 가득할 것 같은 아카시아 숲 길, 은근하고도 끈끈하게 코끝을 자극하는 소나무 향기로 이어지는 소나무군락지, 다 좋았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지난 번 태풍 곤파스 때문에 여기저기 자빠져 있는 소나무, 참나무, 아카시아 나무 등이 걷는 우리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발길을 무겁게 했다. 그래서 나는 부지런히 걷다가 잠시 발길을 멈추고 큰 아름드리 나무가 자빠져 있는 계곡의 흐르는 물에 손을 담그고 있노라니 그들에게 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는 산등성이가 됐든 구릉지가 됐든, 간간이 쉬어가면서 도보여행을 계속했는데 뭐니뭐니해도 잊을 수 없는 건 쉬어갈 때마다 먹는 간식이었다. 어떤 친구는 고구마, 또 다른 친구는 복분자, 많은 친구들이 과일을 준비해서 쉴 때 같이 나누어 먹는 것이 참 좋았다. 이건 내 자랑이 아니고  초정약수를 조금 준비했었다. 맛은 그저 그런데 옛날 세종, 세조대왕이 초정약수로 눈병과 피부병을 고쳤다는 고증이 있을 만큼 유명한 약수다. 이번에는 몇 안 되는 친구들한테 맛을 보였지만 다음에는 더 많은 행()님들이 맛을 볼 수 있게끔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걸어보자. 대공원 뒷산을 돌아 내려와 일부는 동물원에 가서 호랑이 보는 조와 남은 도보여행을 더할 조로 나뉘어졌고, 나는 도보여행을 더하기로 했다. 우리는 현대 미술관을 돌아서 대공원 입구에 있는 호수 길로 접어들었다. 호수 초입에서 참가자 기념촬영이 있었다. 전체가 같이 찍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래도 뿔뿔이 흩어져 그리 많지 않은 참가자들이 찍은 것이지만,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사진이 아닌가 싶다. 사진을 찍고 호수 뚝 방 길을 걸을 때 서쪽 하늘에는 구름 사이로 붉은 석양이 깃들어 있고, 저녁을 알리는지 이름 모를 풀벌레 소리가 귓전에 들려왔다.

 

우리는 토요일 오후에 처음 만나 불과 너 댓 시간을 같이 했는데도, 아주 오래 전에 만났던 친구처럼 멀지 않게 느껴졌다. 오늘 이런 자리를 마련해 주신 다원선생께 이렇게 글을 통해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또한 여러 회원들과 같이 한 시간이 행복했었다고 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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